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배우 민진웅과 보이그룹 비원에이포(B1A4)의 진영.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올 한해 드라마계의 발견이라는 점이다. 민진웅은 <혼술남녀>에서 성대모사를 잘하는 공무원 시험 학원 강사 ‘민진웅’으로, 진영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영의정 ‘김훤’(천호진)의 손자 꽃선비 ‘김윤성’으로 존재감을 빛냈다. 둘 다 절제된 연기로 복잡한 내면을 잘 드러냈고, 많은 이야기를 품은 듯한 눈빛 연기가 특히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른 듯 닮은 둘을 차례로 만났다.
민진웅은 자꾸 기대하게 만든다. <한겨레>를 찾은 그날도 그랬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공무원 시험 합격은 ○○○”라고 리듬을 타며 걸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기대의 8할은 <혼술남녀>에서 그가 성대모사를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내부자들> 이병헌, <태양의 후예> 송중기에 김래원까지 매회 다양한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성대모사에 재능이 없었다”는데, 짧게는 3일, 길게는 1주일 연습으로 달인이 됐다. “100명 중 90명은 따라할 수 있는 보급형 성대모사를 만들자는 목표로 포인트를 살리려고 했습니다.” 자칫 ‘감초’에 머물 수도 있던 역할을 내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며 사람 냄새 나는 인물로 만들었다. 밝은 미소 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픈 사연 등을 적절한 톤으로 연기했다. “슬픔을 절제해 보여주려고 했어요. ‘민진웅’이 꿋꿋하게 잡초처럼 열심히 사니까 시청자들이 좋아해준 것 같아요.”
최규식 피디는 “고시원 3인방 중 한명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잘할 것 같은 기대감에 ‘민진웅’ 역할을 맡겼다”고 했다. 그 기대감은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온다. 특히 발성이 좋다. 음색이 좋고 또렷한 발음에 다양한 감정이 실린다. <혼술남녀>에서 성대모사의 효과가 극대화 된 것도 그런 이유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오래전부터 부단히 노력했단다. “발음은 늘 숙제라고 생각해 고치려고 많이 노력해요. 턱과 혀가 잘 안 움직여서 발음이 뭉개지고 조금 안 좋아요. 더 많이 움직여야 발음이 잘되는데 일부러 하면 부자연스러우니까 노력을 많이 해요. 화술에 더 신경쓰고, 발음이 안 되는 단어가 있으면 반복연습해요. 제 소리를 녹음해서 많이 들어요.”
표정의 디테일을 살려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도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혼술남녀>에서 장례식장 장면의 소리 없이 오열하는 연기는 붉어진 눈시울과 입술의 떨림만으로 깊은 슬픔을 표현해냈다. 연극 등으로 쌓은 기본기에서 비롯됐다. 개성이 너무 강하지 않아 어떤 색을 입혀도 흡수되는 편안한 외모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외모가 처음에는 고민이었단다. “제 외모가 장점은 아닌 것 같아요. 캐릭터 있게 생긴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어디든 한명 있을 법한 얼굴이잖아요. 드라마 오디션을 보면서 외모 질타도 받았어요.” 그러나 이런 생각 역시 노력으로 떨쳐버렸다. “제가 연기로 표현하고 싶은 것도 평범한 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에 관한 거예요. 그래서 이젠 이 외모도 괜찮아요. 거울 보면 가끔 화는 나지만.(웃음)”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인터뷰 내내 “나는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배우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법대에 수시입학한 뒤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6주 만에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었다. “장학금도 받았어요.” 연기에 관심도 없었다는데, 입학 전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며 엄마가 권해준 게 연기학원이었단다. “화내고 소리 지르고 울고 하는데, 뭔가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집중하는 에너지가 나한테 쑥 들어오는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멍석 깔아 주면 아무 것도 못하던 애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연기하는 게 신기했고요.” 졸업 연극에서 지금의 소속사인 화이브라더스 관계자 눈에 띄어 계약했고, 2013년 영화 <보이콧 선언>을 시작으로, <패션왕> <검은 사제들> <성난 변호사>와 드라마 <용팔이> 등에 출연했다.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부터 쭉 오름세인 셈인데, 뜻밖에 “좀 더 고생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난 너무 평범한 인생이라 삶의 무게가 없다는 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저를 극한으로 밀면서 산 적도 있어요. 전역하고 미국에 있는 동안 집의 원조를 받지 않고 제 힘으로 사는 등 뭐든 한계치까지 가보려고 했어요.”
한달에 15일 이상 꾸준히 일하는게 목표였던 그는 <혼술남녀>로 여기저기 찾는 곳이 많아졌다. 요즘도 집 앞 편의점에서 ‘혼술’을 즐긴다는 그는 스타에 대한 욕구보다는 좋은 작품에 많이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허세나 가식 없이 담백한 진국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가끔씩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정 욕구를 자제하며 산다는 그가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내비친 욕심은 이렇다. “노희경 작가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아 이런 말 하면 작가님이 부담스러워하시려나.”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