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피디 이재익ㅣ3편의 소설
분노,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담아
빅 픽처, 살인 저지른 변호사의 삶
키스의 여왕, 숨은 권력자들 얘기
분노,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담아
빅 픽처, 살인 저지른 변호사의 삶
키스의 여왕, 숨은 권력자들 얘기
연휴만 되면 티브이에서 틀어주던 특선영화를 기다리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 같은데, 지금 우리는 재밋거리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영화, 게임, 웹툰, 음악, 티브이 다시보기 등등 터치 한 번에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것들이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득하게 앉아 책장을 넘기는 맛을 포기하지 않는 분도 적지 않다. 이런 분들에게 권해드리는 스릴러 소설 세 권.
먼저 <악인>, <퍼레이드> 등으로 무척 많은 국내팬을 거느리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의 2015년 작, <분노>(1, 2권)이다. 재일동포인 이상일 감독에 의해 작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전형적인 범죄스릴러의 외피를 갖고 있지만, 막상 소설을 읽어보면 편견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살인사건이 1년 동안 미궁에 빠진 뒤 세 명의 용의자가 드러나는데, 셋 각자의 구구절절한 삶의 궤적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절묘하게 엮여 플롯을 만들어낸다. 읽다보면 용의자 세 명 중 누구도 범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데, 이런 경험은 수많은 스릴러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처음이었다.
특히 설 명절에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스릴러 장르에 담기 어려운 주제가 너무나도 잘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들 실감하지 않나. 그저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무조건 가족일 수도 없고,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이루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그런 시대가 왔다.
누군가 나에게 소설의 흡입력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답으로 이 책을 건네겠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 그야말로 쏙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벤은 사실 내면적으로는 피폐해 있는 변호사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발적으로 아내의 내연남을 살해하면서 벤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다. 상상도 하지 못한 궤적을 따라가는 그의 삶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두툼한 책이 모두 끝나 있다.
이 소설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이 매번 등장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마치 시시포스의 숙명처럼, 우린 삶을 바꿔보려고 애쓰지만 정신 차려보면 늘 같은 자리에 와 있다. 선명한 주제 의식도 정말 마음에 들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흡입력이 다이슨 청소기 뺨치는 소설임을 다시 한 번 보증한다.
뻔뻔하게도 내가 쓴 소설을 리스트의 마지막 자리에 올려놓는다. <키스의 여왕>. 아시아 최고의 여배우 손유리가 신혼 첫날밤에 남편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한 범인으로 몰리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종·살인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수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법정소설이기도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을 연상케 하는, 숨어 있는 진짜 권력자들이 벌이는 게임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하겠다.
종이책을 들고 읽을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으로 읽을 수 있는 웹소설이기에 더욱 추천한다고 말한다면, 뻔뻔함이 지나치려나?
이재익/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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