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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모든 관습들의 대안을 찾아서

등록 2017-06-02 20:36수정 2017-06-02 20:4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산의 톰씨>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 반려묘 찡찡이의 사진이 큰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은 늘 그래 왔다는 듯 익숙한 자세로 찡찡이 화장실을 치우고 있고, 찡찡이는 그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카메라를 주시하는 사진이다. 단순히 찡찡이를 귀여워하는 모습이었다면 이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상을 나누는 평범한 ‘가족’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일정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국내 최초로 퍼스트캣, 퍼스트도그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의 상징적 의미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진이 또 있을까.

반려동물 수가 아동 인구를 앞지를 정도인 일본에서는 동물도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대중문화에서도 반려동물 가족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최근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을 꼽으라면 단연 <산의 톰씨>를 들 수 있다. 2015년 <와우와우>(WOWOW) 채널 연말특집극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단지 반려동물 소재를 넘어 1인가구, 공동주거, 슬로 라이프 등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정립되는 가족의 초상을 이야기한다. 슬로 라이프의 아이콘과도 같은 제작진과 배우들이 뭉쳐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각본가는 소설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 주연은 영화 <카모메 식당> 고바야시 사토미다.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에서 고바야시 사토미와 공연한 이치카와 미카코, 미쓰이시 겐, 모타이 마사코도 또다시 뭉쳤다

드라마 제목의 ‘톰’은 고양이의 이름이다. 톰은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작가 하나(고바야시 사토미), 그녀의 친구 토키(이치카와 미카코), 토키의 딸 토시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집에 ‘쥐 소탕’이라는 원대한 사명을 띠고 새 가족으로 합류했다. 작품의 내용은 잔잔한 시골의 일상처럼 단순하기 그지없으나, 반려동물과 가족을 그리는 시각은 비범하다. 하나가 도쿄 생활을 접고 귀농을 하게 된 계기와 같이 인물들의 자세한 사연을 풀어내는 대신, 그들의 일상을 그저 담담하게 들여다보는 태도 안에서 흥미로운 마법이 일어난다. ‘천장에서 대운동회를 벌이며’ 잠을 설치게 하는 쥐들의 횡포 외에는 뚜렷한 갈등 없이 물처럼 흘러가는 일상을 조용히 따라가다가 어느새 가족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김선영
김선영
예컨대 노년을 향해가는 나이에도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하나, 그녀와 모녀지간처럼 보이는 공동주거인 토키, 아빠가 없는 토시 등 소위 ‘결손가정’이라는 편견이 씌워진 가족형태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어느 틈에 그들 옆에 고양이 톰, 그의 친구 치비, 염소 메이와 시리 등 또 다른 일원들이 가족이 되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가부장주의, 이성애 결혼제도, 인간중심주의 등 숱한 관습을 뛰어넘는 대안적 풍경이 거기에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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