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저녁 피아니스트 조성진(왼쪽 서 있는 이)과 지휘자 정명훈(피아노 뒤 서 있는 이)이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의 개관 1돌 기념연주회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협연을 펼쳤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피아니스트가 악기 앞에서 본능적일 수 있는 건 그 음악이 온전히 자기화가 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지난 18일 롯데콘서트홀 개관 1돌 기념 연주회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그야말로 자유롭게 만끽했다. 지휘자 정명훈, 그리고 그의 리더십 아래 모인 84명의 프로젝트성 오케스트라인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가 함께했다.
공연은 조성진이 고국에서 약 1년 만에 펼치는 협연 무대였다. 지난해 2월 바르샤바 필하모닉(지휘 야체크 카습시크)에 이어 7월 서울시향(지휘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과 각각 쇼팽 협주곡 1번을 연주했고, 올 1월에는 독주회로 관객과 만났다. 조성진이 정명훈과 국내에서 협연하는 것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처음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황제’는 조성진과 정명훈의 단골 레퍼토리다. 정명훈은 조성진이 열다섯살 소년이었을 때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연주회에 협연자로 자주 초청해 이 곡을 연주했다. 지난해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명예 음악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도 연주 곡목 중 하나로 조성진과 함께하는 ‘황제’를 선보였다. 이번 연주를 앞두고 정명훈은 “조성진이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황제’는 베토벤의 원숙기를 대표하는 장엄하고 화려한 작품이지만, 이번 무대에서 조성진이 들려준 ‘황제’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강했다. 밝은 음색에 낙천성과 자유로움이 깃든 연주였다. 그럼에도 단단한 손끝에는 밀도가 담겨 있었는데, 이는 열손가락의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연주자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성진과 정명훈이 파이팅의 의미로 가벼운 포옹을 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무엇보다 조성진의 협연자로서의 성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호흡하며 흐름을 같이하는 여유로운 면모에, 3년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지휘 유리 테미르카노프) 내한공연 당시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협연하며 독주자로서 거침없는 역동성을 보여주던 모습이 겹쳤다. 음악적 성장을 증명한 조성진은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2000여석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에게 화답했다.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단체로 존재하는 악단과는 달리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만 모이는 프로젝트성 그룹으로, 이번 무대를 통해 출범을 알렸다.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합동 연주를 이끄는 등 남북의 음악적 교류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온 정명훈은 이 단체를 통해 오랜 염원을 이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무대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는데, 국내외 관현악단의 전·현직 단원과 실내악 단원, 솔리스트 등 다양한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모인 만큼 각 파트의 색채가 도드라졌다.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을 비롯한 현악기 파트도 안정적이었지만, 무엇보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 등이 들려주는 관악기 파트의 호연이 귀를 즐겁게 했다. 소리를 감싸며 울림을 만드는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은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의 조금은 아쉬운 앙상블을 보완했다.
한편, 개관 1주년을 맞은 롯데콘서트홀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후 28년 만에 생긴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으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 1년간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합창단,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등 국외 유명 오케스트라는 물론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내실있는 단체들을 초청하는 등 관객 수준을 높이고, 대중적인 기획공연을 마련하며 클래식 음악 시장을 균형있게 확장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호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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