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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대통령 뜻이라며 ‘드라마 중단’ 앞장선 부역자들 누구인가”

등록 2018-06-07 18:07

1983년 6월 ‘야망의 25시’ 녹화 직전
이웅희 사장 ‘엄지척’ 세우며 “끝내라”
제작부장 “그냥 잘 마무리해” 전화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 “×××!”

김기팔 작가에게 ‘마무리 장면’ 요구
‘다시 쓴 마지막 원고 5장’ 받고 눈물
돌연한 종료 녹화장에 100여명 운집

쫑파티·음주도 하지 못하게 ‘금지령’
로비 바닥에 앉아 사이다 놓고 ‘침통’
‘도중하차’ 빌미 둘러싸고 의견분분
“새로 등장한 ‘명성’과 영부인 관련설”

6월14일 22회 ‘종방’에 절망의 통곡
밤새 투신의 유혹 떨치고 “살아남자”
1983년 3월 첫 기업드라마로 야심차게 출발했던 문화방송의 <야망의 25시>는 6월 22회만에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하루아침에 ‘강제 종료’의 비운을 맞는다. 직전 19~20회 때 당시 대통령 부인 이순자의 친정쪽과 유착설이 나돌던 명성그룹 김철호(오지명·앞줄 맨오른쪽)의 등장이 빌미가 됐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다. 6월11일 마지막 녹화를 끝낸 스튜디오에서 출연진과 제작진이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급히 수정된 ‘권선징악’ 마무리 대본에 따라, 주인공 길용우(앞줄 오른쪽 세째) 등은 죄수복 차림이다. 사진 필자 제공
1983년 3월 첫 기업드라마로 야심차게 출발했던 문화방송의 <야망의 25시>는 6월 22회만에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하루아침에 ‘강제 종료’의 비운을 맞는다. 직전 19~20회 때 당시 대통령 부인 이순자의 친정쪽과 유착설이 나돌던 명성그룹 김철호(오지명·앞줄 맨오른쪽)의 등장이 빌미가 됐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다. 6월11일 마지막 녹화를 끝낸 스튜디오에서 출연진과 제작진이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급히 수정된 ‘권선징악’ 마무리 대본에 따라, 주인공 길용우(앞줄 오른쪽 세째) 등은 죄수복 차림이다. 사진 필자 제공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21회) ‘야망의 25시-내부자들’

▶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첨병’은 나침반에 다름 아니다. 지형에 밝아야 한다. 동물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일개부대가 첨병의 발자욱 하나에 목숨 걸고 따라간다. 미지의 졍글을 뚫고 나가는 첨병에겐 담력도, 용기도, 지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어야 한다. 1983년 문화방송 <야망의 25시>는 한국 티브이 드라마의 첨병을 맡았다.

<야망의 25시>는 ‘시민의 힘’이 박차가 되어 달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3주차 결방 이후 ‘시민의 힘’을 온몸에 안고, ‘광장의 언어’ ‘시장의 언어’로 쓰고 그리고 있다. 이 골목을 박차고 나가면 저기에 경제민주화가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이란 확신 속에 매진하고 있다. 일주일에 60분물 2편을 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일주일이 10일쯤이면 좋으련만….지난 밤에도 콘티작업으로 꼬박 밤을 새우고 오전 10시 정각 드라이 리허설에 들어갔다.

<야망의 25시>는 22회부터 길용우의 여성편력을 본격 묘사할 예정이었다. 극중 ‘오성그룹’(럭키금성)의 딸’로 등장한 이은정은 1981년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이다.
<야망의 25시>는 22회부터 길용우의 여성편력을 본격 묘사할 예정이었다. 극중 ‘오성그룹’(럭키금성)의 딸’로 등장한 이은정은 1981년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이다.

<야망의 25시>에서 길용우의 미국 유학시절 애인으로 등장한 ‘재미동포 혼혈아’ 크리스티나는 주한 외국인 앤이 맡았다.
<야망의 25시>에서 길용우의 미국 유학시절 애인으로 등장한 ‘재미동포 혼혈아’ 크리스티나는 주한 외국인 앤이 맡았다.
<야망의 25시>에서 길용우가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알부자 대만 동포’ 조한려는 실제로 화교 출신 탤런트였다.
<야망의 25시>에서 길용우가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알부자 대만 동포’ 조한려는 실제로 화교 출신 탤런트였다.
‘21화’, 김유장(박규채), 아들 수민(길용우), 아내(엄유신)은 가정교사(심양홍)을 맞아 ‘채근담’의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대목을 놓고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그런 사이 툭툭 튀어나오는 “당신 미인이야요” “나 돈 없시유”. 정주영(최불암), 이병철(정욱), 김우중(조경환)과 구인회(김호영) 등의 활약상이 빛난다. 그리고 최근 등장한 ‘명성’(오지명)의 십자가밑 기도 다음, 협잡. ‘22회’, 수민의 여성 편력이 펼쳐진다. 럭키금성의 공주같은 딸 이은정(미스코리아 진), ‘미국 동포 혼혈아’ 크리스티나, ‘알부자 대만 동포’ 조한려, 오늘은 조한려를 미행하여 산꼭대기 판자촌까지 따르다가 들켜 스톱모션되는 순간이 마지막 장면이다.

두 시간을 쉼없이 내달려 12시에 리허설을 마치고 2층 부조정실로 조명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 10여명, 그뒤로 기술파트 5~6명이 기다리고 있다. 웬일인가? 사장은 연출자만 데리고 부조정실 밖으로 나가 텅빈 복도에서 “아무말 묻지 말고, 오늘 녹화로 끝내시오.” 서로 놀란 눈을 마주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고, 등을 두세 번 다둑이더니, 부조정실 문을 열고 중역들에게 가자 한다. 간부들과 직원들은 우루루 몰려나간다. 이때 사장은 이웅희다.

1983년 <야망의 25시>를 중단시킨 문화방송 사장 이웅희(맨왼쪽)가 84년 2월 전임 사장으로 문화공보부 장관이 된 이진희(오른쪽 둘째)를 방문했다. 이웅희는 86년 문화부 장관직도 물려받아 언론탄압에 나섰고 13·14·15대 3선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3년 <야망의 25시>를 중단시킨 문화방송 사장 이웅희(맨왼쪽)가 84년 2월 전임 사장으로 문화공보부 장관이 된 이진희(오른쪽 둘째)를 방문했다. 이웅희는 86년 문화부 장관직도 물려받아 언론탄압에 나섰고 13·14·15대 3선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텅 빈 부조정실. 아무 생각없이 머리 속이 하얗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 점심시간이라 모두 나가고 없다. 10분, 30분, 한시간쯤 되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받았더니 드라마 제작부장이다. 앞도 뒤도 없이 “난데… 그냥 잘 끝내, 엔딩을 잘 마무리해서… 잘 끝내…”. 그 순간 부장에게 “×××××××!” 나도 모르게 최악의 욕설이 튀어 나왔다. 이렇게 심한 직설적인 욕설이 튀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전화는 내던져졌고, 지금까지 하얗던 머리는 분노로 터질 듯하다. 그 부장은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 같은 부역자다. 정보기관과 내통설이 꾸준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터운 얼굴을 지닌, 모든 일을 술먹기 경쟁하듯 뻔뻔하게 해치우는, 전무후무한 파렴치한이다. 사장의 의지를 눈치 챈 제작 본부장이 발빠르게 전략을 내비치자, 부장이 불이나케 나선 것이다. 그날의, 그들의 전략은 방송을 한다는 사람으로는 있을 수 없는 비윤리적이다. 사장의 사인 ‘엄지손가락’으로 보아 대통령의 지시 같은데, 더밉고 용서되지 않는 것은 본부장, 부장 같은 내부의 부역자들이다. 부장의 갑질 횡포가 극단으로 치달은 것은, 김기팔 작가에게 전화해 ‘완결성 마지막 장면’을 새롭게 써오라는 ‘정식오더’다. 본부장의 이상한 취향이 다시 발동하는 것이다. 전체 진행과 상관없이 마지막 장면의 형식만 갖추면 끝이 되는, 논리 아닌 논리다. 눈가리고 아웅식 논리다. 그는 문화부 공무원 출신인데, 공무원 출신이면 모두 이런 사고방식인가.

<야망의 25시> 마지막 11회 급조된 마무리 장면에서 사채업자 김유장(박규채)은 중병이 든 환자로 등장한다. 드라마는 강제종료됐지만 그의 대사 “당신 미인이야요”, “나 돈 없시요”는 세태풍자 유행어로 남았다. 사진 문화방송제공
<야망의 25시> 마지막 11회 급조된 마무리 장면에서 사채업자 김유장(박규채)은 중병이 든 환자로 등장한다. 드라마는 강제종료됐지만 그의 대사 “당신 미인이야요”, “나 돈 없시요”는 세태풍자 유행어로 남았다. 사진 문화방송제공
침통한 분위기에서 녹화는 진행되었다. 거의 끝나갈 즈음, 그 문제의 마무리 원고를 들고 김기팔 작가는 부조에서 녹화하고 있는 연출자 뒤에 넋나간 사람처럼 서있었다. 그 원고뭉치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기개 넘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가, 저 원고를 쓰며 얼마나 심난했을까’ 고개 숙여 원고를 받았다. 다섯쪽 원고를 받아 빨리 읽어보고 조연출을 불러, 적당히 복사하여 해당 연기자와 스에게 나눠줘라 했다.

김기팔 작가의 ‘의심의 철학’이 발동되었다.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감내하기조차 힘들다는 무력감에 빠져들수록 의문은 더욱 더 커져간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왜 이래야만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퍼센트 부자가 나머지 99퍼센트의 사람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야 하는가?”

문제의 ‘추가 마무리 장면’ 녹화가 진행되었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과 사내의 뜻있는 동료들 100여명이 스튜디오 김유장(박규채)의 거실 세트 앞에 운집하였다. 카메라가 움직일 길이 없이 꽉 찼다.

S#거실. 길용우와 심양홍이 무겁게 기다리고 있는 중에, 자막 “10년 후” 나가고 그뒤로 늙은 박규채가 등장한다. 그는 반신불수가 되어 엄유신의 부축을 받고 있다. 카메라쪽으로 다가와 ‘포샷’이 되면 박규채가 뒤틀린 입으로 “당신 미인이야요.”

주시하고 있던 백여명의 구경꾼(?) 들은 반은 웃고, 반은 침통하다. 지극히 형식적인 권선징악형 “마무리장면” 녹화가 끝나고 셋트장 한쪽에서 종료기념촬영을 했다. 평소에 사진 찍길 싫어하는 스들 까지 같이 찍고, 꼭 기억하고 싶어했다. 김기팔작가 고석만연출도 구석에 끼어 찍었다.

쫑파티, 통상 연속극 형태의 시리즈물이 끝나면 성공 여부에 약간의 차등은 있지만, 회사에서 공식적인 회식 비용이 나온다. 조연출의 전언에 의하면, 제작부장의 명령으로 쫑파티도 금지다. 모두가 어이없어 하는데, 누군가 스튜디오 앞 탤런트실 로비에서 그냥하자는 것이다. 소파가 모자라 맨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그때 또 제작부장의 명령이라며, 회사 안 음주 금지령이 떨어졌다. 귤 몇개, 사이다와 콜라. 그렇게 차려놓고 아무말 없이 앉아 있다. 시간이 지나자 ‘도중하차’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1982년 ‘큰손 장영자 사건’에 이어 83년 7월 터진 ‘명성그룹 탈세사건’은 뒤이은 ‘영동개발 사건’과 더불어 5공화국 3대 금융스캔들로 꼽힌다. <야망의 25시>에서 ‘명성’을암시한 내용이 등장한 직후 드라마가 강제종료되면서 세간에 대통령 처가쪽 관련설이 확산되자,  정권은 김철호 회장을 구속시키기에 이른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2년 ‘큰손 장영자 사건’에 이어 83년 7월 터진 ‘명성그룹 탈세사건’은 뒤이은 ‘영동개발 사건’과 더불어 5공화국 3대 금융스캔들로 꼽힌다. <야망의 25시>에서 ‘명성’을암시한 내용이 등장한 직후 드라마가 강제종료되면서 세간에 대통령 처가쪽 관련설이 확산되자, 정권은 김철호 회장을 구속시키기에 이른다. <한겨레> 자료사진

<야망의 25시> 기획안의 기획 의도를 다시 들여다 보자. 이 기획안은 방송사 간부와 사장, 방송위, 문화부, 정보기관, 청와대까지 보고된 문서다. 언론도 주지한 핵심은 ‘현존하는 재벌 총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재계의 현주소를 해부한다’.

‘도중하차’가 오늘 아침 대통령의 명령이란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누가 대통령을 움직였느냐로 추측 영역이 좁혀졌다. <야망의 25시> 화제가 확산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는 재계인사들. 온갖 인사들이 다 등장하는 중에, 근거없이 대우가 많이 회자되고 삼성도, 럭키도, 명성도, 한진도 떠올랐다. 그중에 최근 등장한 명성이 영부인과 관련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다. 방송사 내부자의 정보기관 내통도 큰 몫 했을 거라 한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누구의 보고를 받고, 어떤 판단에서, 일개 드라마의 “도중하차” 명령까지 내렸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의 정국을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첫째 지도자(사표·롤모델)가 없는 사회, 둘째 가치의 중심(공감)이 없는 사회, 셋째 미래의 지향점(목표·비젼)을 갖지 못하는 사회가 겪어야 하는 필연적 귀결이라 볼 수 있다.

1983년 6월14일 22회 마지막 방송이 나갔다. 방송 끝에 시청자들에게 엎드려 사죄하는 마음으로 “고맙습니다”를 화면 가득 채우고 페이드아웃 되었다.

다음날 아침, <한국일보>(김훈 기자) 12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칭찬과 비판이 균형적이라 생각되어 길지만 전재한다.

“문화방송의 인기 드라마 <야망의 25시>가 14일 방영을 끝으로 도중하차 되는 것은 티브이 드라마가 주는 사회적 충격과, 이 충격에 대한 사회의 수용력에 관해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한다. 이드라마는 재벌들의 세계를 극의 상황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극중인물이 실존인물과 확연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등에서 인기와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장사건, 아파트투기붐등을 겪으며형성된 부의향배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 이드라마에 인기를 모아 주었던 사회심리적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인기가 인기 그 자체만으로도 보존되어야할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많은 대중사회의 특성이겠지만 이 드라마의 인기는 이미자, 조용필의 노래가 갖는 인기와는 달리 사회적 충격을 동반한 인기였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 드라마가 갖는 충격과 인기의 내용을 분석해 본다.

1983년 6월11일 강제로 마지막 촬영을 끝낸 <야망의 25시> 제작진과 출연진은 방송사 간부들이 ‘쫑파티·음주’까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탤런트실 로비에서 다과만 놓고 울분을 달래고 있다.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1983년 6월11일 강제로 마지막 촬영을 끝낸 <야망의 25시> 제작진과 출연진은 방송사 간부들이 ‘쫑파티·음주’까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탤런트실 로비에서 다과만 놓고 울분을 달래고 있다.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극중 인물이 실존인물과 ‘확연하게’ 일치한다는 점은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평소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던 재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드라마 속에서나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또 돈 많은 사채업자(박규채)가 그 유니크한 발성법으로 이따금씩 툭툭 던지는 대사 “나 돈 없시유”가 유행어가 되어버린 것은 돈이 많은 상태를 돈이 없다고 표현해내는 돈 많은 사람들의 아이러니를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재벌들의 성격 묘사, 아침운동 장면, 파티석상, 도박 장면 등...몇몇 화면이 보여준 박진감과 재미는 과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돈의 윤리나 기업의 정신을 극으로써 구현치 못한 채 충격적인 재미만 보여주고 끝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돈 뭉치를 놓고 노름을 벌이는 장면이나, 포커판의 형태로써 기업의 행동원리를 해석해 보려고 덤비는 2세의 태도 등은 돈에 대한 사회의 윤리를 해치는 일이었다. 또 드라마 자체의 문제로서, 이드라마는 ‘경제드라마’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이나 그 주변 의인들의 사적세계 묘사에만 주로 치중, 경제라는 큰 흐름, 기업이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움직임 등 ‘경제’ 자체를 드라마화 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보여준 작품상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세인의 인기와 관심을 일단 집중시켰다는 것은, 티브이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소재의 새로움과 연출기법의 박진성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인 것이다. 이 재미있는 드라마가 올바른 방향을 잡아서 무언가 보여주기 이전에 막을 내린다는 것은 어쨌든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TV드라마가 주는 사회적 충격이 어떠한 것들을 내용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이 드라마의 종결이 방송국의 자의냐 아니냐, 또는 박규채의 실존 모델이 누구인가를 가리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1883년 6월11일 <야망의 25시>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김기팔(오른쪽) 작가와 고석만(왼쪽) 연출의 표정이 침울하다. 급히 수정된 마무리 쪽대본을 주고 받으며 두 사람 모두 분노의 눈물을 감추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1883년 6월11일 <야망의 25시>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김기팔(오른쪽) 작가와 고석만(왼쪽) 연출의 표정이 침울하다. 급히 수정된 마무리 쪽대본을 주고 받으며 두 사람 모두 분노의 눈물을 감추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연출 책임을 맡은 나는 어떤 매도 다 맞겠다는 심정이다.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여기저기에서 위로의 전화, 격분의 전화들이 많이 왔다. 늦은 밤 카메라맨 명콤비 김명균형이 전화를 했다. 웬만해선 전화할 사람이 아닌데…, 아쉬움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잇지 못하는데 눈물이 났다. 울음 때문에 전화를 끊고 소리내어 통곡을 했다.

이것은, 자기 시대에 절망한 사람이 기록한 ‘절망의 기록’이다. 삶을 향한 갈망을 무너뜨릴 만한 그런 절망, 이 절망감을 통곡으로 쏟아내고, 그 울음 끝에 생각했다. “당신의 빛을 비추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어느 선각자의 말. 문화방송 10층 옥상에서 뛰어내리자. 그리하여 <야망의25시>가 계속 될 수 있다면, 이 한 목숨 내던질 각오가 생긴다. 이것은 명예욕인가? 사건인가? 이름 석자 남기고 난, 그 다음은? 회사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 다음은 회사 앞에서 노제를 지내줄 것이다. 연기자들은 모두 나와 울 것이고, 여기저기 뉴스가 한토막씩 나올 것이다.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야망의 25시>는 절대 계속되지 않을 것이고, 첨병이 닦아놓은 길은 비 몇 번에 뭉개질 것이다. 시간과 함께 자취도 못 찾을 것이다. 승리자의 펜으로 지워질 것이다.

새벽이 왔다. 긴 밤을 지새우며 생각에 빠졌다가 떠올랐다. “분노하자! 항의하자! 기억하자! 그러기 위해 살아남자!” 3주차 결방 때 시민들과 한 ‘무언의 약속’ 을 잊었는가? 그날의 ‘시민이 힘’ 그날의 ‘시민의 기대’, 저~기 광장의 함성, 시장의 노래가 들려온다. 기로였다. 기로에서 나의 일생을 찬찬히 돌아봐야겠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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