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이 멕에게 테슬라 코일을 선보이다>
짐 자무시 감독 17년 단편연작 허름한 커피집의 소소한 대화로
‘느림 미학’ 흑백영상에 담아 로베르토 베니니·빌 머레이 출연
‘느림 미학’ 흑백영상에 담아 로베르토 베니니·빌 머레이 출연
요즘 대세인 비흡연자들과 건강주의자들에게 ‘커피와 담배’는 실패자의 상징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된 노동과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커피자판기를 찾고 담배를 꺼낸다. 이들에게 ‘커피와 담배’는 인스턴트 오아시스인 셈이다.
짐 자무시 감독이 17년에 걸쳐 완성한 단편 연작 〈커피와 담배〉 역시 ‘커피 한 잔의 여유’같은 영화다. 영화를 구성하는 11편의 흑백영화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 등장인물들이 허름한 동네 커피집에 앉아 나누는 사적이고 소소한 대화를 보여준다. 그 대화는 때로 실없는 농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 두 인물 사이를 묘하게 흐르는 긴장이기도 하다. 마치 옆자리에서 슬쩍 엿듣는 것 같은 그들의 대화는 가볍고 부질없지만, 이 영화에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영화들이 줄 수 없는 느리고 게으르며 시시껄렁함의 미학이 있다.
이 영화에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며 자기자신을 연기한다. 이들은 짐 자무시의 친구들이며 작업 동료들이다. 짐 자무시는 본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묘하게 비튼다.
세번째 에피소드 ‘캘리포니아 어딘가’에는 세속적 욕망에서 초탈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웃사이더들의 ‘큰 형님’인 뮤지션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만난다. 둘은 평범한 안부인사를 하는 것같으면서도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이기 팝이 “자네 노래가 주크박스에 없던데”라고 말하자 맘이 상한 톰 웨이츠는 좋은 드러머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이기 팝의 말에 “내 음악의 드럼이 후지다는 건가?” 발칵한다. 썰렁해진 분위기 탓에 이기 팝이 먼저 가자 주크박스를 꼼꼼히 확인하며 “자기 노래도 없는 주제에…”라고 쫀쫀하게 ‘큰 형님’의 면모를 구긴다.
역시 ‘쿨’한 이미지로 만만치 않은 영국 배우 스티브 쿠건은 ‘사촌 맞아?’편에서 자기보다 잘 못나가는 배우 알프레드 몰리나를 만나 속없이 옷자랑을 한다. 두 사람이 사촌인 것같다는 몰리나의 말에 몹시 귀찮아 하지만 몰리나가 잘 나가는 스파이크 존스 감독과 격의없는 통화를 하는 걸 보면서 얼굴이 확 바뀐다.
케이트 블란쳇이 1인2역을 연기한 ‘사촌’편은 지금의 블란쳇, 즉 잘 나가는 여배우와 그와 똑같이 생겼지만 히피적인 삶을 사는 사촌간의 대화로 진행된다. 사촌은 쇼비즈니스계를 비웃는 것 같으면서도 블란쳇에 대한 질투를 숨기지 못하고 블란쳇 역시 우월감으로 가득차 있는 자상함과 겸손함을 보여준다. 커피와 담배 앞에서 이따금씩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대화가 신랄하고, 그들의 말투나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잡아채는 카메라에는 재치가 넘친다.
〈커피와 담배〉는 1985년 자무시가 미국의 쇼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주문을 받아 프로그램에 삽입되는 콩트를 만드는 것으로 처음 시작했다.
쇼를 위한 작품이 하나 둘 늘어나 쌓이자 그걸 묶으면서, ‘커피와 담배’를 즐기듯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일부를 새로 찍어 추가했다. 이 친구들 가운데는 로베르토 베니니, 빌 머레이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스크린 스타들을 꽤나 많이 만날 수 있다. 27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위부터 <르네> <흥분> <자네 여기 웬일인가>
쇼를 위한 작품이 하나 둘 늘어나 쌓이자 그걸 묶으면서, ‘커피와 담배’를 즐기듯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일부를 새로 찍어 추가했다. 이 친구들 가운데는 로베르토 베니니, 빌 머레이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스크린 스타들을 꽤나 많이 만날 수 있다. 27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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