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 묻혀가며 여기수에 ‘감정이입’
“뻔한 감동드라마라고 단정 마세요”
“뻔한 감동드라마라고 단정 마세요”
임수정은, 얼핏 보면 그저 뽀얗고 말갛지만 속을 들여다볼라 치면 그 끝이 잘 안 보인다. 유약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독기를 발산하고, 서늘해 보이다가도 이내 봄날 햇볕처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조막만할 것 같았던 그의 키는 실제로 167㎝이고, 기껏해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의 나이는 이제 스물일곱이다.
10일 개봉하는 〈각설탕〉(감독 이환경)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다루는 전형적인 감동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에게 영화 〈장화, 홍련〉이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처럼 단순치 않은 캐릭터의 연기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의외이거나 실망스럽게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사회 뒤로, 이 영화는 다시금 임수정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부추기고 있다.
“처음 〈각설탕〉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사실 ‘뻔하다’는 생각은 저도 했죠. 선악구도가 분명하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였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최초로 경마를 소재로 만든 영화였고 말과 사람의 멜로, 여주인공 시은이 기수가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더라구요. 특히 경주 장면이나 사고 장면 등은 ‘이걸 어떻게 찍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신기함과 매력이 느껴졌어요. 아주 잘 되거나, 아주 망하거나 가능성은 극단적인 두 경우였지만요.”
그는 식상한 것에서 독특함을 발견하고 과감히 도전했지만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 녹록지 않았다. 도무지 말(言)이 통하지 않는 말(馬) 앞에서, 감독과 스태프는 물론 현장에서 어지간하면 여왕 대접을 받기 마련인 국내 톱클래스 여배우 임수정조차도 속수무책이었다.
“말이 말을 들어야 말이죠.(웃음) 사람이랑 연기를 하면 서로 대화를 통해 맞춰줄 건 맞춰주고 받아줄 건 받아주잖아요. 근데 천둥이(말)는 그게 안 되잖아요. 제가 무조건 그 친구한테 모든 걸 다 맞춰줘야 했어요. 제가 100% 준비된 상태가 아니어도 천둥이가 준비되면 촬영을 시작해야 했고, 제 컨디션이 최상이어도 천둥이가 안 하면 못 찍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임수정은 〈각설탕〉을 통해 “연기수업을 제대로 받은 느낌이고, 순발력과 유연성을 키우게 된 것 같다”는 자평을 내렸다. “이전 작품에서는 제가 몰입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됐을 때 촬영에 들어가달라는 주문을 많이 했는데, 이제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설사 준비가 좀 덜 됐어도 순간순간 최선의 것을 쏟아붓고 뽑아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데뷔 이래 처음으로 단독 주연으로 한 영화를 끌고가면서 책임감도 늘었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 보니 고생 많이 했지만 노력도 많이 했어요. 말타는 법을 배우다 낙마도 몇번 했고, 좀더 자연스럽게 목장 소녀 시은이를 표현하기 위해 말똥도 묻히고, 손톱 밑에 때도 묻혀가며 말과 뒹굴었죠. 그랬더니 감독님이 ‘우리 영화, 여배우 하나 앉혀 놓고 가는 건데 예뻐 보이는 걸 싫어하면 어쩌냐’시며 한걱정하셨어요.(웃음)”
영화와 임수정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평이 대부분이지만, 임수정은 지인들로부터 “감정이입이 안 되는 부분이 좀 있고, 연기톤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간혹 있다”는 따끔한 지적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기 연기에 대한 지적은 받아들이겠지만, 말의 연기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보아달라고 주문했다. “감정과잉처럼 연기가 부족했던 점은 제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에요. 하지만 동물 연기는 콘티처럼 안 나올 때가 많아서 디테일을 살리는 데 중요한 부분도 못 찍거나 삭제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는 게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어요.”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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