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장남과 분방한 차남
한 여자의 죽음 계기로
확인하게 된 오해와 진실
한 여자의 죽음 계기로
확인하게 된 오해와 진실
영화 ‘유레루’
처한 조건이나 상황만으로 예측 가능한 성격이 있다. 책임감 있는 장남과 자유분방한 차남. 순박하고 공동체의 가치에 충실한 시골 사람과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도시 사람. 조건은 성격을 만들기도 하지만 본성을 억압한다. 조건에 가려진 인간의 본성은 전혀 다른 두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드러나지 않게 경쟁하게 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열등감을 빚기도 한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유레루〉는 시골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장남과 도시에서 성공한 차남 간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영화다. 한 여자의 죽음을 두고 미묘하게 틀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진심을 보여주는 화면과 대사가 마치 치명적인 화학약품을 다루는 연구자의 자세처럼 정교하고 치밀해 젊은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오키나와 시골에서 도쿄로 나와 사진작가로 성공한 다케루(오다기리 조)는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간다. 오자마자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는 다케루를 수습하는 형 미노루(가가와 데루유키)는 시골 작은 주유소를 물려받아 아버지를 부양하며 손님들의 온갖 행패도 묵묵히 받아내며 사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던 주유소 직원 마키와 함께 계곡에 놀러 간다. 다케루가 사진 찍으러 간 사이 마키는 미노루와 함께 올라갔던 위태로운 다리에서 추락하고 다케루는 숲에서 이 순간을 본다.
〈유레루〉는 일본어로 ‘흔들리다’는 뜻의 말이다. 흔들리는 다리에서 떨어진 마키의 죽음으로 인해 미노루와 다케루의 상황도 마음도 흔들린다. 미노루가 살인 혐의를 받자 늘 미노루의 도움만 받던 다케루는 형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 형을 구하기 위해 다케루는 헌신적인 노력을 하지만 결코 형에게 꺼내지 못했던 진실이 그를 괴롭힌다. 계곡에 가기 전날 그는 형이 마음에 두고 있는 마키와 하룻밤을 보내고 계곡에서 마키가 매달리는 걸 뿌리친다. 그런 마키는 미노루를 벌레 보듯이 피하다가 사고인지, 타살인지 다케루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추락사에 이른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한 개인적 욕망이 몰고 온 파국에 대한 죄책감과 순박하고 자족하는 줄 알았던 형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겪는 혼란스러움은 그를 점점 더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간다. 반면 환멸에 가득 찬 얼굴로 ‘즐기며’ 사는 동생과 달리 늘 웃는 얼굴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혐오하며 살아온 미노루는 이 파국의 상황에서 오히려 심리적 해방감을 느낀다. 그의 해방은 동생을 옥죄고 동생의 숨막힘은 다시 형의 삶을 더욱 옥죄는 식으로 열패감은 순환의 꼬리를 만든다. 웃으며 동생의 뻔한 거짓말을 듣는 형과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을 막기 위해 형을 감싸는 동생에게서 보이지 않는 진실 또는 진심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유레루〉에는 다케루가 예상 밖의 증언을 하는 클라이맥스부터 영화는 기우뚱하며 앞부분과 잘 이어지지 않는 결말로 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 부분까지 미스터리극의 긴장감과 두 남자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밀도만으로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오다기리 조와 쌍을 이룬 가가와 데루유키(〈귀신이 온다〉)의 드러내지 않는 심리 연기도 놀랍다.
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올해 서른둘의 여성 감독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10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시네콰논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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