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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논쟁 삼기엔 너무 투박한 ‘괴물’

등록 2006-08-13 18:09

저공비행
입소문 요란한 영화들은 개봉 이후 반드시 바람을 빼는 과정을 거친다. 그 시기와 바람이 빠지는 정도는 영화마다 다르고 종종 그 과정 역시 입소문만큼 과장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타이타닉〉이 그렇게까지 놀림거리가 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괴물〉 개봉 이후 관객들이 보여준 다양한 반응은 비교적 건강하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좋게 보는 쪽이긴 하지만 평론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이 영화에 준 일방적인 호평은 의무감과 분위기에 휩쓸린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정직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갔던 기자시사회에서 그들의 반응은 비교적 얌전했다. 그 분위기에선 좀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만했다. 지금 그 다양한 의견들은 관객들이 제공하고 있지만.

요샌 좀더 몸뚱이가 큰 매체에서 다른 종류의 글들도 올라온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는 독립영화 감독 최공재가 쓴 ‘초유의 싹쓸이… 〈괴물〉의 만행에 돌을 던져라’라는 칼럼이 실렸다. 그 대척점에 선 글은 〈씨네21〉에 실린 정성일의 장문 비평이다. 글의 내용만 본다면 후자가 당연히 나은데, 둘 다 글쓴이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과 정치적 입장에 휘말려 있다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읽기는 최공재의 칼럼이 훨씬 더 재미있다. 일단 짧아서 읽기가 쉽고 몇몇 변명을 통해 숨기려고 하는 의도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빤하게 보이기도해 유쾌하기 그지없다. 몇몇 뒤틀린 논리도 멋지다. 궁금하다면 필자가 주인공 가족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몰아붙이는 과정을 보라.

이 반응은 당연하다. 봉준호는 비정치적인 사람이 아니고 〈괴물〉도 비정치적인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만듦새와는 무관하게 정치적 입장만을 물고 늘어지는 반응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게 과연 얼마나 생산적이냐는 것이지만.

최공재의 글은 재미있다. 하지만 과연 그로 이어진 토론 자체가 생산적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여기에서 의미 있는 토론은 거의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은 최공재에게 있는가? 아니, 나는 그 일차 책임이 봉준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괴물〉에는 흥미로운 정치적 토론을 끌어낼 만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주장과 주제가 너무나 명확하다. ‘거칠고 투박하다’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조선일보〉와 봉준호가 한 인터뷰에서도 이 표현은 등장한다. 봉준호는 ‘투박하고 거친 풍자가 이 장르에 활력을 주고 드라마와도 잘 엮인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동의하냐고? 절반 정도만 그렇다. 비슷하게 투박한 메시지를 담은 괴물 영화로 고든 더글러스의 1954년작 〈그들 (Them!)〉을 예로 들어볼까? 이 영화의 투박한 메시지는 ‘핵실험은 위험해!’다. 그 이유는? 핵실험의 방사능이 거대한 괴물 개미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핵실험이 거대 곤충을 만들어내는 건 할리우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 투박한 환경론적인 논리는 관객들에게 성공적인 하나의 우화로 먹힌다. 〈그들〉의 투박한 논리엔 빠진 게 없다.

하지만 〈괴물〉에서는 그 단순함이 먹히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제는 ‘포르말린을 한강에 풀면 식인 괴물이 생겨!’가 아니다. 환경론은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궁지에 빠진 개인을 돕지 않거나 못하는 시스템의 무능과 불공정한 국가 관계다. 그렇다면 영화는 아무리 투박함을 유지해도 그 메커니즘을 다 건드리긴 해야 한다. 〈괴물〉에는 그것들이 상당 부분 빠져 있다. 많은 관객들이 지적하는 극적인 심심함도 사실은 이 때문이다. 훨씬 다채롭고 드라마틱할 수 있었던 각본은 이 일방적 태도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기를 날려버린다. 이 나라가 썩어빠진 곳이라는 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과연 이 나라가 〈괴물〉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심심한 곳이었나? 더 걱정되는 것은 일방적 선언과 비웃음만이 존재하는 지금 이 나라의 분위기에서 이 영화도 그렇게까지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내가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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