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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시간’, 내가 사랑하는 너 너를 사랑하는 난 누굴까

등록 2006-08-23 21:15

남자의 사랑 의심해 이별
성형수술 하고 나타난 여자
사랑의 정체성 혼돈스런 남자
좀더 친숙해진 김기덕식 우화
김기덕 감독은 늘 이야기 소재를 몇가지씩 지니고 다닌다. 그 중 하나를 고르면 시나리오도 빨리 쓰고 영화도 후딱 찍는다. 이야기꾼 같은 면모가 다른 어떤 감독보다도 눈에 띈다. 그래서일까. 갈수록 그의 이야기엔 우화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아진다.

김기덕의 13번째 영화 〈시간〉도 일종의 우화다. 전작 〈빈집〉이 예쁜 우화였다면 〈시간〉은 그로테스크한 우화다. 단순하게 말하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서 마침내 자기를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의 이야기다.

여자와 남자가 연애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가 여자 대하는 열정이 처음 같지 않다. 그래 봤자 오래 만나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데, 여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지겨워?’ ‘내 얼굴이 지켜워?’ 하는 식으로 자꾸 따져묻더니, 남자 곁을 떠난다. 성형수술을 해서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꾼다. 이름도 바꾸고 다른 여자로 행세하면서 남자 옆에 다시 나타난다. 둘이 다시 잘 될 것 같은데, 남자가 이전 여자(성형하기 전 여자)를 못 잊어한다.

“실은 내가 그 여자야”라고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한다. 그럼 이전 사랑, 지금의 사랑 모두 한 몸에 담은 여자이니, 남자는 무척 좋지 않을까. 좋아하기는커녕, 사랑의 정체성, 사랑하는 주체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자에게 전염되는데, 그 강도가 여자보다 훨씬 세다.

이쯤을 전후해 〈시간〉은 우화의 길을 걸어간다. 신경질적이고 질투심이 병적으로 많은 여자 캐릭터의 특징, 감각이 예민한 것 같은데도 사람이 순해서 여자에게 끌려다니는 남자 캐릭터의 특징 같은 건 영화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 ‘지우’와 여자 ‘세희’가 아니라, 정체성을 의심하는 행위, 자기 존재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행위 자체가 된다. 그게 이 영화에선 얼굴을 바꾸는 성형수술로 나타난다. 영화는 이 행위가 증폭되고 전염되고 악순환하면서 파국을 맞는 과정을 우화처럼 그린다.

김기덕 영화에선 이처럼 개념, 관념이 주어로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간〉에선 그게 캐릭터의 몸 밖으로 나와서 독자적인 주인공이 된다. 우화로 보면 이해가 되지만, 영화가 관념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직유는 과장되고, 은유는 의도가 쉽게 드러나고, 이미지는 과잉처럼 다가온다.

〈시간〉은 이전 김기덕 영화와 몇가지 다른 점을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 인물들이 정상적·보편적이다. 대사가 줄어들던 최근 김기덕 영화의 흐름과 달리 〈시간〉은 대사도 많다. 영화 전반부의 몇몇 장면에선, 마치 홍상수 영화처럼 도시인들의 일상 언어를 문어체로 옮기면서 그걸 의도적으로 우습고 생경하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는 김기덕 감독의 에너지는 변함없는 것 같다. 24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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