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영화 ‘뚝방전설’, 아! 18 대 1의 추억이여!

등록 2006-09-06 20:18

5년만에 뭉친 중랑천 세 싸움꾼
냉혹한 현실 알아가는 성장담
청춘들의 심리변화 잘 잡아내
소년기를 지나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성장담을 그린 〈뚝방전설〉은 ‘뚝방에서 18 대 1로 싸우던 그 시절’의 허황하지만 낭만적인 추억과 1 대 1로도 좀처럼 대적이 안될 정도로 왜소해져버린 현실을 대비시킨다. 주먹으로 동네를 평정했던 소년이 주먹세계의 대처로 나가 약육강식의 잔인한 논리를 배우게 되는 모습에서 〈친구〉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무도 비장하게 스러지지 않는다. 일당백으로 싸워 이겼다는 전설이 아니라 배달 물건 핀잔 주는 아줌마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지금 사는 모습에 더 속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중랑천 주변에서 몰려다니며 싸움질을 일삼았던 정권(박건형)과 성현(이천희), 경로(엠씨 몽) 일행은 졸업 후 맥없이 흩어진다. 제법 센 주먹이지만 싸움에도, 다른 일에도 시큰둥한 성현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방사선과 기사가 됐고, 주먹보다 ‘이빨’의 위력이 더 셌던 경로는 동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교실 강사로 생업에 나섰다.

하루가 천년처럼 지루한 이들 앞에 진짜 건달이 되겠다고 5년 전 떠났던 정권이 나타난다. 정권의 등장으로 성현, 경로를 비롯해 이들과 어울리던 친구들은 다시 활기를 찾지만 정권이 잠시 들어갔던 조직의 중간보스였던 치수(유지태)가 재개발 사업을 따기 위해 이 동네에 들어오면서 예기치 못한 긴장은 훨씬 더 크게 번져간다.

〈뚝방전설〉의 가로축을 이끌어가는 세명의 인물이 정권과 성현, 경로라면 세로축을 세우는 세 인물은 정권과 치수, 그리고 몰락한 조직 보스 나상춘(오달수)이다. 단순화하면 10대의 정권은 순박하게 주먹만으로 세상을 평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지나간 시절이고 추억이고 전설이다. 의리가 아니라 이권을 위해 피를 보는 치수는 주먹이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계산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현실적 존재다. 정권은 이 냉혹한 현실에서 밀려났고 설사 밀려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나중의 모습이 텅 빈 카바레 하나 덩그러니 남은 채 목숨 보존에 연연하는 상춘일 것이다.

영화는 이 세 인물이 만드는 서로 다른 정서와 욕망의 삼각구도를 통해 완성된다. 정권과 친구들의 세계가 촌스러운 낭만으로 채워진다면 치수의 세계는 섬뜩한 피비린내를 보여주고 이빠진 보스 상춘에게 와서는 허허로운 웃음을 던진다. 이 질감 다른 세계가 때로는 너무 강한 기를 내뿜는다. 이를테면 사시미 칼이 날아다니는 잔인한 조폭들의 싸움이 질펀하게 이어지다가 “우리 이제 확률로 살자, 응?” 하며 뚱하고 느리게 말하는 상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웃기에는 너무 숨이 가쁜 것이다.

이것저것 꽉꽉 채워 담으려는 젊은 감독의 욕심이 가끔 과부하를 낳긴 하지만 다른 층위의 사건과 인물을 엮어내는 연출력은 탄탄하다. 특히 과도한 폼 없이 어릴 적 꿈이 사그라져 가고 현실 앞에서 말수가 적어지는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잡아내는 솜씨는 무리없이 유연하다.

〈뚝방전설〉로 충무로에 데뷔한 조범구 감독은 주목받았던 독립장편 〈양아치 어조〉에 이어 다시 청춘을 이야기하고 이 영화와 비슷한 마무리 장면을 보여준다. “옛날이 더 즐거웠지만 지금이 꼭 나쁜 건 아냐”라고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감독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7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싸이더스에프앤에이치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