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많은 여성 3대
삶을 위협하는 남성들 넘어
더욱 견고해지는 여성의 연대
삶을 위협하는 남성들 넘어
더욱 견고해지는 여성의 연대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스)는 놈팽이 같은 남편과 사춘기 딸 파울라(요아나 코보)를 건사하며 마드리드에서 고단하게 살아간다. 라이문다가 일 때문에 늦은 밤, 파울라는 자신을 추행하려던 의붓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죽인다. 라이문다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때 동생 솔레(롤라 두에냐스)로부터 전화가 온다. 고향 라 만차에서 홀로 살던 이모가 돌아가신 것. 솔레는 바쁜 라이문다 대신 상주를 맡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이따금 이모를 돌봐주던 아우구스티나(블랑카 포르티요)로부터 라이문다 자매의 죽은 어머니인 이레네(카르멘 마우라)가 이모를 보살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놀란다. 장례를 마친 뒤 마드리드로 돌아온 솔레. 그는 자동차 트렁크 안에 숨어 자신을 쫓아온 이레네를 보고 기절초풍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귀향〉은 이레네와, 그의 여동생과 두 딸, 딸의 딸, 딸의 여자친구 등 ‘여성’들이 만들어가는, 나선형 고리와도 같은 ‘연대’를 다룬 영화다. 남편 또는 아버지로 등장하는 ‘남성’들은 여성들의 연대를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존재일 뿐이다. 이레네의 죽은 남편은 이레네와 아우구스티나의 죽은 어머니를 원수로 만들었고, 이레네 라이문다 사이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라이문다의 남편도 이레네의 남편과 다를 것이 없는 ‘남성’이어서, 라이문다와 파울라를 위협했다. 하지만 무너질 것 같은 이들의 연대는 부러졌다 다시 붙은 뼈가 더 단단하듯, 더욱 공고해진다.
이 단단한 연대의 핵심은 보살핌을 실천하는 위대한 모성본능이다. 이레네는 라이문다를 위해 유령이(혹은 유령처럼) 됐다. 이레네의 동생은 이레네 대신 상처받은 라이문다를 보듬어 키운다. 아우구스티나는 병들어 혼자 사는 이레네의 동생을 정성껏 돌봤고, 라이문다는 어머니가 자신한테 그랬듯 파울라에게 강인한 모성을 실천한다.
〈귀향〉에서 어머니 이레네의 존재는 ‘미스터리’다. ‘이레네는 죽은 것인가? 죽은 그가 어떻게 혹은 왜 사라지지 않고 나타난 것인가? 죽지 않았다면 주변사람들은 왜 그가 죽었다고 믿게 되었는가?’ 의문은 꼬리를 물지만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런 의문이 심각함을 유발하기 전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들이민다. 그러고는 마법 같은 눈속임으로 이레네의 존재를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 위에 슬쩍 얹어 놓는다. 하지만 이레네가 유령인가, 아닌가 자체는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연대의 구성원들이 ‘아레네가 죽었다고 믿었다’는 것, 또 ‘이레네가 돌아왔다고 믿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며, 돌아온 이레네가 꿋꿋한 연대의 아름다운 결말을 완성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딸들과 손녀, 딸의 친구로부터 ‘돌아왔다’고 받아들여진 그는, 원수였던 여자의 딸임에도 암에 걸린 아우구스티나를 보살피는 것으로 〈귀향〉을 마무리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등을 연출했던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영화로 올 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으며, 여배우들도 여우주연상을 함께 받았다. 21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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