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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 <음란서생>으로 보는 ‘성과 권력’ 관계

등록 2006-09-21 16:45수정 2006-09-21 17:30

조선시대 명문가 자제로 조정에서 관료로 봉직하는 윤서(한석규)는 당대 최고의 필력을 자랑한다. 어느날 조정의 업무와 관련하여 방문한 저잣거리의 유기상에서 "난잡한 것(음서)"을 읽고 충격을 받는다. 윤서는 글을 쓰는 사람답게 자신도 "난잡한 것"을 한 번 써보려고 꿈을 꾼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정빈(김민정)과 말벌을 매개로 인연이 생긴다. 뭔가에 홀린 듯 정빈은 윤서와의 합방을 갈구한다.한편, "난잡한 것"을 쓰게된 윤서는 정빈에게서 음서의 모티프를 찾아가게 된다.

"진맛"과 포르노그래피

<음란서생>의 초반부 유기상주인(그의 진짜 직업은 음서를 판매하는 음란물판매총책이다)은 참으로 "난잡한 것"은 어떤 것인가 윤서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진맛이 나는 것"이란다. 그럼, 진맛이란 무엇인가? "꿈에서나 맛 볼수 있을 것"이란다. 그 많고 많은 음서들 중에서도 정말 최고의 것은 그런 "진맛"이 난단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음서는 포르노다. 포르노 곧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는 그리스어의 pornographos를 어원으로 하는데,'창녀(porno)'에 관하여 쓰여진 것(graphos)'을 뜻한다. 그것이 의미가 발전하여 영어에서 말하는 'obscence', 즉 외설적인 문학을 지칭하게 되었고, 시대추세에 따라 문자텍스트를 넘어서 도안(icon), 그림, 사진, 필름, 비디오, 무대극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음란서생>에서 음서중의 극치는 "진맛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실웃음이 난다. 성행위에서 진맛(오르가즘)을 느낀다고하면 모를까 겨우 책(음서)보면서 진맛을 느낀다니.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다. 영화에서 음서의 독자층이 조선조 규방의 아녀자들로 설정된 것을 감안하면 혹시 그런가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이따금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는 부녀자들이 연상된다.

영화의 극단적 성표현들


<음란서생>의 중반에서 윤서와 삽화를 담당하는 광헌(이범수)의 창작회의에서 삽화에 가미될 체위를 의논한다. 윤서가 광헌에게 설명을 하는데 그 체위는 묘기에 가깝다. 여자를 돌돌말고 그 위에 남자가 올라타서 피스톤운동을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화면에 재현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는 츄리닝을 입은 시범조교들이 나와서 구분동작을 하는 미니화면으로 처리가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아마 이 장면이 재현되었다면 <음란서생>은 개봉도 못할 처지였을 것이다. 음지에서 성표현의 자유나 주장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표현은 특히, 성표현은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논란도 많이 되고, 기준의 모호함에 대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며칠전 제7회 서울영화제에서 타이완 차이밍량 감독의 <흔들리는 구름>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극심한 가뭄에 포르노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영화였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심장한 씬이 등장한다. 오프닝 시퀸스였는데 남녀의 정사장면이다. 여자의 두 다리 사이에 수박이 놓여있고(수박아래로 여자성기 일부노출)남자는 포르노의 장면을 암시하면서 마치 여자의 성기같은 수박을 손가락으로 정신없이 쑤신다. 직접 성기가 클로즈업된 것은 아니지만 묘사는 오히려 더 난잡하고 외설적이다. 극장상영용 제도권 영화와 포르노그래피 사이의 간극을 암시하고 있다. <흔들리는 구름>은 2005년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작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2005년작 <몽상가들>이 지금 시중에 DVD로 출시되어 있다(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마지막 황제(1987)>로 유명한 거장중의 거장이다). <몽상가들>을 보면 국내상영 영화의 성표현과 노출수위의 한계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남성의 자위장면 및 성기노출이 허용되고, 여성의 음모나 성기도 노출이 된다. 물론 카메라 앵글이나 거리, 지지시간 등의 조작이 있다.

대략 성표현을 기준으로 극장상영 영화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 컷의 묘사나 카메라 앵글의 처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발기된 성기, 사정장면, 여성성기의 익스트림 클로즈엎 정도부터는 X등급 전용관이 없는 한국에서는 불법포르노나 인터넷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간혹, 가위손(검열)을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의아스럽게도, 2000년 어느 영화제의 <뱅뱅(bang bang)>이라는 영화에서는 남성 동성애자간의 항문섹스가 몇 분간 직접 노출되고, 독일영화 <네크로만틱(necromantic:屍姦)>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내장이 쏟아지는 시체와 시체애호자(necrophile)는 성행위를 한다. 물론 두편 다 극장상영용 필름이고 <네크로만틱>의 경우는 독일에서 극장상영되었고 메이킹필름은 비디오판매 되었다고 한다.

음란외설과 검열, 성과 권력의 관계

<음란서생>에서 윤서는 음서를 만들어 배포했지만 음서배포 때문이 아니라 음서에 암시적으로 등장하는 정빈의 모함으로 황제의 노여움을 받아 처벌을 받는다. 현대에도 가위손들의 의한 성표현수위의 조절은 어떤 사회적인 합의나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법률조항도 굉장히 애매하거나 포괄적이다. 소수의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검열관들의 자의와 판단에 많긴다. 간혹 윤서처럼 권력의 미움을 사는 경우도 있다.

일전에 강연을 들은 영화전공 강사의 진술에 의하면 영상물 등급위원회는 검열할 영화만 틀어놓고 검열관들은 졸거나 외출하기 일쑤란다. 영화제작자 측에서도 알아서 미리미리 수위를 적당히 조절하여 편집한 필름을 제출한다고 한다. 워낙 등급매길 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처형장에 조금 진보적인 인사가 들어오면 거의 그대로 통과시키고, 좀 보수적인 인물이 검열관으로 들어오면 꼬장꼬장 따지기도 한다고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삽입설>, <사정설>이라는 것이 있다. 검찰이 강간피의자를 기소할 때 피의자가 피해자의 질에 성기를 삽입만 했는지, 사정까지 했는지에 따라서 강간의 여부와 형량의 강도 등을 따지는 학설이란다. 상식적인 생각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판단방식이다. 현실이 사라지고 성에 대한 즉자적 관념만 남아있는 태도이다.

이런 내용까지 기사에 첨가한 이유는, 금기시되는 영역(성)과 권력의 힘이 작동하는 영역(법)에서는 소수의 전문가(검열관,검사)만이 독점적으로 그 기준(외설여부,강간여부)을 결정하고 대다수는 그 결정에 순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엄밀히 말하면 무슨 기준이 적용되는지도 대다수는 알지 못한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따르기만 한다. 상영되면 보고 아니면 못 보고, 유죄선고 내리면 구속되고 아니면 울고불고 난리나고...

<음란서생>의 결말 그리고, 외설물의 권력관계

<음란서생>의 엔딩에서 윤서는 섬으로 유배되고, 광헌과 유기상주인(음서업자)가 찾아간다. 처벌로써 이마에 "음란(淫亂)"이라고 새김을 당한 윤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음서의 섀도매죠히즘(SM) 구상을 밝힌다.... 이 장면은 사회라는 구성체에서 권력과 대다수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시키는 대로 안하면 채찍질(폭력행사)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말을 고분고분 들으면 당근(쾌락)을 줄 것이다.' 권력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 대중은 윤서처럼 연하게 길이들고 기껏해야 불평이나 하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과 대중의 작용하는 방식이고 그 사이에서 외설물(=영화=당근=쾌락=보상)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영화 안내>

제목: 음란서생 (淫亂書生, 2006) 감독: 김대우 출연: 한석규, 이범수, 김민정, 오달수, 김뢰하 기타: 2006-02-23 개봉 / 139분 / 멜로,애정,로맨스,코미디,드라마 현재 비디오 출시중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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