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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18살 소녀 80살 치매노인 우리 사랑해도 될까요?

등록 2006-09-27 19:43

집안일 도와주는 소녀와
그를 첫사랑으로 착각하는 노인
현실-환상 오가며 사랑의미 탐색
이누도 감독의 ‘경계 3부작’ 첫편
영화 ‘금발의 초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 한국에서 잔잔하지만 깊고 넓은 파문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둔 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와이 ??지 감독마저 제치고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28일 개봉하는 〈금발의 초원〉은 제작 연도가 먼저 개봉한 두 영화보다 앞선다. 2000년 만들어져 그 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됐고, 유바리 판타스틱 국제영화제에서는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조제’역을 맡았던 이케와키 지즈루의 모습도 〈조제…〉에서보다 훨씬 소녀스럽다.

18살 가사도우미 나리스(이케와키 지즈루)는 피가 섞이지 않은 의붓동생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누나로만 여겨 불행하다. 나리스는 어느 날 80살 닛포리(이세야 유스케)의 가사일을 돕게 된다. 닛포리는 자신이 20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심장판막증 환자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삶은 오직 ‘심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을 향해 있었고, 학업도, 결혼도, 다른 어떤 것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보류돼 왔다. 평소 깐깐하게 굴기로 소문난 그는 어쩐지 나리스한테만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호의적이다. 나리스를 첫사랑으로 착각하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준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이다.

이누도 잇신은 〈조제…〉에서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이 서로의 경계에 발딛게 되는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또 〈메종…〉에서는 동성애라는 ‘다른 세계’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의미에서 〈금발의 초원〉은 이누도 잇신 ‘경계선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으로 꼽힌다. 80살 치매 노인과 18살 소녀의 범상치 않은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공감의 폭을 확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리스는 ‘20대’라는 환상 속에 갇혀 사는 닛포리를 동정하고, 보살펴 준다. 그리고 닛포리가 자신에게 청혼을 해오자, 나리스는 그동안 ‘불행이 무서워 행복에서 도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닛포리의 상상 속 풍경인 ‘금발의 초원’을 가만히 되뇐 뒤 청혼을 받아들인다. 의붓동생과 친구는 ‘동정’ 때문에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거칠게 만류한다. 하지만 닛포리의 상상과 동경, ‘금발의 초원’마저도 이해하게 된 나리스에게 ‘동정’은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서 서로 ‘공감’하고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금발의 초원〉에서 현실과 착각 혹은 환상의 경계는 모호하다. 자신을 20대로 착각한 80살 노인 닛포리는 영화 속에서 줄곧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닛포리를 대하는 나리스의 태도도 완전히 노인을 대하는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또 닛포리를 ‘영감탱이’라고 놀리던 꼬마조차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늙은이로 보지 않게 된다. 물론 ‘환상 같은 현실’ 속에서 나리스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 직전 닛포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닛포리의 의지와 선택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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