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을로' 제작보고회 열려
영화제작사 영화세상은 9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가을로' 제작보고회를 열었다.
'가을로'는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로 주목받은 김대승 감독의 세번째 연출작.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가을로'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이달 26일 개봉에 앞서 12일 영화제 관객과 먼저 만난다.
'가을로'는 결혼을 앞두고 백화점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은 민주(김지수)와 민주를 잃고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아파하는 현우(유지태)의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 민주가 죽은 뒤 어느 날 현우에게 한 권의 일기가 배달되고, 현우는 민주가 작성한 일기 속 지도를 따라 가을 여행을 떠난다. 현우는 가는 곳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 세진(엄지원)과 마주치게 된다.
'가을로'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현우의 여정을 따라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의 아픔다운 풍경을 담아냈다.
제작보고회에는 주연배우 유지태ㆍ김지수ㆍ엄지원 등과 김대승 감독이 참석했다.
김 감독은 "큰 움직임으로 깊은 감동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고, 유지태는 "이곳저곳에서 영화에 대해 너무 자랑했더니 허풍쟁이가 됐다"면서 "오늘은 말을 줄이겠다"며 웃었다.
다음은 주연배우ㆍ감독과의 일문일답.
--연출 소감은.
▲'가을로'는 멜로 영화면서 로드무비다. 사랑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는 주인공들이 여행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잃어버린 연인의 부재를 절감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담을지를 고민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가 영화를 찍는 내내 내게 숙제였다.(김대승 감독. 이하 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한국 현대사를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염치없이 (사건ㆍ사고를) 덮는데 급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용서하는 자는 없고 스스로 용서받고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가을로'가 멜로 드라마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이를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영화를 통해 "염치없이 덮고 지나가지는 말자. 덮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끄집어내 상처를 치유하자"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김)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임 감독의 영향이 느껴지는데.
▲내 영화에 조금이라도 장점이 있다면 그건 다 임 감독님에게 배운 것이다. 길을 찍고 자연을 담는 것이 임 감독님의 특기다. 일부러 임 감독님을 따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님의 조감독으로 일 하면서 만났던 산천들을 영화 속에 담으려고 했다. '가을로'의 연출을 제의받았을 때 7번 국도(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길)의 아름다움이 먼저 떠올랐다. 7번 국도는 영화 '창'을 찍을 때 감독님을 따라서 헌팅을 다니며 알게 된 곳이다. 이후 혼자 이 길을 따라 여행하기도 했다. 정말 어려운 것이 자연을 담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정점에서 자연을 찍는 것이 나의 숙제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감독님께 어떻게 찍어야 하느냐고 여쭤보고 싶었다.(김)
--'가을로'는 '번지점프를 하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나리오 때부터 유사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비슷하면 어떤가'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무엇이 다를까가 문제인데 어떤 식으로 '번지점프를 하다'를 극복했고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어떤 장애가 있어도 끝까지 사랑을 지켜가는 이야기이고, '가을로'는 상처를 안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김)
--촬영기간이 짧지 않았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부담스럽지 않았나.
▲제작기간이 1년 가까이 걸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가을로'에는 우리 배우들 외에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연배우가 있어 좋은 날씨, 아름다운 풍경을 기다리다보니 오래 걸렸다.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감독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 영화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긴 촬영기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엄지원. 이하 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나.
▲어머니가 당시 전화를 해 "어디냐?"라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 내게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고급아파트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 더 머리에 남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도 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당사자들에게는 큰 아픔일 텐데 그 아픔 위에 탑을 쌓았다는 것이 가슴 아플 따름이다.(유지태)
▲영화를 통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간접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는 죽기 전 민주의 모습도 등장한다. '가을로'를 찍으면서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땅에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로'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분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영화는 마지막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피해자들이 조금이라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에 참여했다.(김지수. 이하 지)
--멜로 연기를 자주 하는데.
▲멜로라는 장르를 좋아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멜로 아닌 멜로 연기를 하게 됐다. 김대승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멜로는 줄다리기와 같아서 너무 당기면 과해지고, 너무 느슨하면 긴장감을 잃게 된다"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가을로'가 좋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말 때문에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엄)
--올 가을 두 편의 멜로 영화로 관객과 만난다. '멜로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데.
▲'가을로'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감독 변승욱, 제작 오브젝트필름) 두 편의 멜로 영화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우연히 느낌이 좋았던 시나리오 두 편이 모두 멜로 영화였다. 두 영화의 색깔과 영화 속 사랑의 느낌은 다르다. 앞으로 멜로 영화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 작품 이외에 또 다른 색깔의 멜로 영화가 있다면 다시 하고 싶다. 두 영화의 느낌이나 색깔이 달라 걱정은 안 하고 있다.(지)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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