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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거룩한 계보’, 힘깨나 쓰는 우정

등록 2006-10-11 20:02수정 2006-10-12 11:52

조폭조직에 들어간 세 죽마고우
탈옥과 복수 둘러싼 갈등·화해
장진 감독, 역설 대신 직설화법
영화 속 인물이 ‘나 슬프다’고 울면서 직설적으로 슬픔을 전달하는 방식이 있고, 상황은 슬퍼 보이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확실한 채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슬프게 하는 방식이 있다. 장진은 후자의 방식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에선 슬픔뿐 아니라 분노나 열정, 욕망의 발현이 의지에 좌우되기보다 우연에 의해 좌초되거나 성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무거운 얘기를 가볍게 하되 그 무게감은 잃지 않는 게 장진의 특장이었는데, 근작으로 올수록 역설은 줄고 직설이 늘어나는 듯하다.

19일 개봉하는 〈거룩한 계보〉는 진지한 상황을 순간적으로 하찮아 보이게 하는 유머가 있고, 결정적인 한 국면을 난데없는 해프닝이 개입해 바꿔버리는 설정도 있다. 그러니까 장진의 낙관이 찍혀 있기는 한데, 그게 의리, 우정, 배반 등등 한국형 누아르의 전형적 정서를 직설적으로 길게 드러내는 연출 속에 묻힌다.

이야기도 전형적이다. 어릴 때부터 붙어다녔던 세 친구(정재영, 정준호, 류승룡)가 한 폭력조직에 들어가고, 그 중 둘이 보스의 오른팔이 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조직의 적을 해치우고 감옥에 간다. 그런데 보스가 적과 담합해 둘을 차례로 제거하려 한다. 이를 알게 된 둘은 복수를 위해 탈옥을 시도하고, 조직에 남아 마지막으로 보스의 오른팔이 된 이는 우정과 조직 사이에서 갈등한다.

〈친구〉 〈짝패〉 〈비열한 거리〉를 섞어놓은 듯한 구도에, 교도소에서 탈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에피소드가 삽입돼 있다. 전형적인 설정은 그대로 빌려오더라도, 연출은 장진식으로 경쾌하게 내달릴 수 있을 것같은데 뒤로 갈수록 영화는 무거워지면서 진부해진다. 수시로 인물들은 클로즈업된 얼굴로 분노하고 슬퍼하며, 어릴 때 셋이 환하게 웃으며 뻘밭을 뒹구는 느린 화면의 회상장면은 식상하다.

물론 맛깔나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구속된 한 친구와 검사 사이에 오가는 대사엔 농익고 세련된 유머가 가득하고, 조폭 일행이 공군 장교들과 패싸움을 벌이고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받는 장면도 감칠맛이 있다. 또 액션이 난무함에도 다른 한국형 누아르 영화에 비해 마초적인 냄새가 덜 풍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이유 없이 무겁고 늘어지며, 에피소드들은 겉돈다.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 듯하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필름있수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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