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조국의 독립, 당신이라면 어찌할까

등록 2006-11-01 20:05

사진 동숭아트센터 제공
사진 동숭아트센터 제공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40년 동안 가난하고 핍박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온 켄 로치의 신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팔짱끼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 과정을 그렸는데, 민족과 계급 문제가 얽힌 현실을 차갑고 면밀하게 보고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끈질기게 묻는 뜨거운 영화다. 1920~22년 역사에 대한 기록이자 현재에 대한 성찰이다.

아일랜드인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의 앞날은 장밋빛인 듯 보인다. 의사인 그는 런던으로 떠날 참이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인 그의 형 테디(패드레익 딜레이니)는 영국에 맞서 싸우자고 설득하지만 데이미언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영국군의 폭력은 데이미언이 총을 들도록 만든다. 고함을 지르며 드잡이부터 해대는 영국군은 난데없이 출몰해 어머니 앞에서 아들을 때려죽인다.

투쟁과 잔혹한 고문, 동네 동생을 밀고자라는 이유로 처단해야 하는 데이미언의 고뇌는 전형적이다. 영화는 이들을 독립 투쟁의 영웅으로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마른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아일랜드의 척박한 땅을 비추듯 전투나 훈련 장면도 무심할 만큼 차분하게 보여준다. 다만 무엇을 위해 독립할 것인지 관객이 판단하도록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그래서 전투보다 되레 이런 논쟁 장면이 더 격정적이다. 아일랜드공화국군이 차지한 지역에서 재판이 열린다. 가난한 할머니가 빚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화국 법정은 고리대금업자에게 벌을 내리지만 테디가 풀어줘 버린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선 총 한 자루가 아쉬울 판인데 그들에게 무기를 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테디와 함께 독립 운동을 벌이면서도 때로 반대편에 서는 노동자 댄은 아일랜드 마르크스주의자 제임스 코놀리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당장 내일 영국군을 몰아 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아일랜드와 영국이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이런 대립은 더 날카로워진다. 테디는 북아일랜드를 뺀 자치를 허용한다는 영국의 타협책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미언은 투쟁의 기세를 몰아 완벽한 독립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땅을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도 여전할 것이라고 맞선다. 데이미언을 이상주의자라고 밀어붙이는 테디에게 데이미언은 소리친다. “나야말로 현실주의자다.” 영국의 회유책에 휘말려 계급에 따라, 현실 인식에 따라 아일랜드인들은 쪼개졌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형제의 운명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테디가 속한 아일랜드 해방군은 데이미언을 옛 영국군들이 자신들을 가뒀던 그 감옥에 집어넣는다. 누가 적이며, 무엇이 변했나? 약자의 현실은 여전히 복잡해 서로가 적이 되기 일쑤고 지배자는 이를 재빨리 이용한다.

이 영화로 켄 로치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탄압하는 방식은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과거를 비춰 현재의 이런 모순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11월2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동숭아트센터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