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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너무나도 통속적인 남자들의 사랑

등록 2006-11-08 21:59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감독 이송희일) 이전에도 <로드무비> 등 동성애를 다룬 한국 영화들은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 영화만 ‘본격 퀴어 멜로’라고 강조해 부르는 까닭은 그야말로 진한 연애를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인권 보호를 대놓고 주장하거나 동성애를 미화하지 않고 직설화법으로 그저 ‘여기 징그럽도록 끈질긴 사랑이 있다’고 말하고 거기에 골똘하다.

<후회하지 않아>는 진부해서 파격적이다. 1970~80년대 유행했던 호스티스를 주인공 삼은 멜로 형식에 두 남성을 던져 넣었다. 수민(이영훈)은 고아다. 공장에 다니는데 이유없이 잘린다. 결국 게이바에 취직해 접대부가 된다. 손님 시중을 들고 2차까지 뛰고 난 뒤 그는 도시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술을 게워내야 한다. 부잣집 아들 재민(이한)은 수민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재민은 사랑을 얻지만 재민의 부모는 그를 다른 여성과 결혼시키려 한다.

재민과 수민의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도 통속적이다. 서로에게 귓속말을 속삭이며 바닷가를 거닌다. 떠나려는 재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수민은 “형만 보고 살께”라고 말한다.

영화는 연인과 사랑을 방해하는 사회 사이 갈등을 다루기보다는 수민과 재민 사이 계급적 불화에 더 관심을 갖는 듯하다. 주인공들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생략하고 바로 갈등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서울은 항상 휘황찬란한데 그 속에 수민은 왜소하다. 떠나려는 재민에게 수민은 쏘아붙인다. “당신은 부자여서 달아날 곳이 있겠지만, 나는 아무 곳도 없어.”

논쟁이 일만한 사랑을 오래된 방식으로 풀어놓은 셈이다. 덕분에 사회적 금기를 뛰어넘는 애절한 사랑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고, 동성애를 사랑에서 떼어내 특별하게 보는 시선에 대한 야유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 통속적 격정 멜로는 힘이 세다. 투박하지만 솔직해 보인다. 게이 사회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 성매매 현장도 날것 그대로다. 게이 바에서 접대부들이 “이년 저년” 성을 바꿔 부르며 놀고 그들 세계에서만 통하는 은어들을 뱉어낸다. 수민과 재민의 정사 장면도 꾸밈 없이 강도가 세다.

후반부 반전으로 갈수록 감정의 비약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 낯선 듯 익숙한 이야기는 두 주연의 물 오른 연기와 어우러져 절절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관객의 호응은 뜨거운 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예매 시작 30분만에 매진됐다. 개봉하기도 전에 인터넷에 <후회하지 않아> 팬 카페가 생겼고 800여명이 가입했다. 팬 카페에 가입한 누리꾼 ‘아나하라’는 게시판에 “퀴어 영화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사랑 그 자체를 강조한 듯하다”며 “이성애자지만 그들의 사랑에 아파했다”고 썼다. 16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청년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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