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극장’의 전계수 감독
<삼거리극장>을 제작하려면 배짱이 꽤나 두둑해야 할 듯싶다. 한국에선 거의 만들어지지도 않고, 만들어져도 망하기 십상인 뮤지컬 영화다. 그것도 모자라 달콤한 사랑이야기는커녕 아웃사이더 혼령들의 엽기적이고 발랄한 한판 쇼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며 정신을 쏙 빼놓는다. 으스스하고 웃기며, 신나고 서글프다.
그런데 전계수(34·사진) 감독은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느릿느릿 말한다. 다만 “〈록키 호러 픽쳐쇼〉의 관능, 팀 버튼 감독이 〈비틀쥬스〉 등에 창조한 캐릭터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하트 여왕이나 담배 피우는 쐐기 벌레, 〈오페라의 유령〉의 이미지 따위가 섞여 들어간 괴물”이라고 설명했다. 뭔 소리인가? 하여간 확실한 건 여러 장르의 묘미를 버무린 듯한 이 영화가 예상 가능한 관습에는 “메롱” 하고 혀를 내밀 악동 뮤지컬이라는 점이다. 전계수 감독을 지난 17일 만나 영화의 정체와 탄생 과정을 들어봤다.
마음 둘 데 없는 소녀와 혼령들
낡은 극장서 저녁마다 한판 놀음
록·발라드 등 화려한 노래 9곡
“하고픈 영화 일주일마다 달라요” 이야기의 뼈대=소단(김꽃비)이 집 나간 할머니를 찾아 삼거리극장에 간다. 밤이 찾아오니 매점 아줌마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라고 주장하는 에리사(박준면), 청소부는 엉뚱한 광대 모스키토(박영수), 경리는 자신을 찬 연인에게 욕설을 퍼붙는 완다(한애리), 영사기사는 일본 중위 히로시(조희봉)로 변신한다. 이들은 모두 유랑극단 단원이기도 했는데 옛 흥과 한을 못 이겨 밤마다 쇼를 벌인다. 그 극장 귀퉁이엔 죽고 싶어 안달하는 사장 우기남(천호진)이 있다. 그가 만든 영화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이 혼령들과 할머니, 소단의 사연이 연결된 고리다. “근대 농업을 위해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미노수는 인간의 머리에 소의 몸통을 가지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서글프게도 그 반대로 붙어버린 생물이다.
씨앗=감독도 “진짜 영화로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2002년 이탈리아 록밴드 ‘데빌돌’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막 60분씩 이어지는 음산한 노래들이죠. 이렇게 산만한 영화에 맞는 대표적인 장르가 뮤지컬이었어요.” 그러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됐고 그러다 보니 모자란 제작비 투자 받으려 충무로 제작사를 두루 찾아다니게 됐다. “딱 한 곳 빼놓고는 ‘재밌지만 시기상조’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이승재 대표가 “시나리오 믿고 도박하는 셈 치고” 투자한 돈까지 합쳐 9억원을 제작비로 마련하게 됐다.
성장=지갑은 얄팍해도 노래는 화려하다. 9곡이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실어 나른다. “이게 웬 똥 싸는 소리야”라며 변심한 애인을 저주하는 데는 록이 딱이고 “바람이 불고 꽃잎이 떨어지고”라며 신세를 한탄하는 데는 애잔한 발라드가 제격이다. 〈발레교습소〉 등에서도 솜씨를 선보인 김동기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대학 다닐 때부터 전 감독이 쓴 글에 김 감독이 음악을 붙이며 친해진 사이다. “노랫말 나오는 대로 여러 버전으로 곡을 만들었죠. 한곡당 4~5개씩. 동시녹음은 기술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녹음을 하고 촬영 현장에서 입을 맞췄어요.”
노래는 현란하고 안무는 투박하다. “잘 모르니까 막 한 거죠.”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에서 안무를 맡았던 서병구씨가 감각을 보탰다. “그런데 춤이 지나치게 예뻤어요. 더 우스꽝스럽고 엉성하게 바꿨죠. 그게 어울리니까요. 콘티도 없이 현장에서 여러가지 동선을 만들기도 했어요.” 감독을 가장 괴롭힌 건 경험 부족이 아니라 돈 부족이었다. 야외 촬영은 줄이고 줄였다. 영화의 대부분인 극장의 내부는 이 영화 촬영을 끝으로 62년 만에 문을 닫은 부산 삼일극장이고, 외부는 전라남도 곡성극장이다.
이야기의 옛 이야기=데뷔작 〈삼거리극장〉이 애초에 큰 결심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어찌어찌 흘러 완성된 것과 비슷하게 전계수 감독 자신도 영화판에 들어왔다. 대학 다닐 때는 연극을 만들었다. 졸업하는 해 아이엠에프 딱 걸려서 먹고 살려고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취직했다. 일본으로 발령 나 2년 동안 혼자 살 때 누릴 수 있는 게 비디오밖에 없던 터라 집중적으로 영화를 봤다. 돈이 궁해 하나 빌리면 여러번 봐서 그 영화에 대해서는 저절로 빠삭하게 알게 됐다. 공모하면 연극 쪽보다 수입이 짭짤할 듯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쓴 김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단편영화 〈어 퍼펙트 데이〉를 찍었다. 그 작품을 계기로 영화 〈싱글즈〉 제작 때 연출부를 맡았다.
그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일주일마다 바뀌는데 여하튼 이번주엔 대형마트에서 조직적으로 물건을 슬쩍 훔치는 깜찍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을 닮아 볼 때마다 뒤바뀐 모습을 보여줄 듯한 〈삼거리극장〉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요약했다. “그러니까… 마음 둘 데 없는 소녀가… 마음 둘 데 없는 혼령들과 (낱말을 한참 고른다) 비록 유폐됐어도… 흥겹게 논다는 이야기죠.” 23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낡은 극장서 저녁마다 한판 놀음
록·발라드 등 화려한 노래 9곡
“하고픈 영화 일주일마다 달라요” 이야기의 뼈대=소단(김꽃비)이 집 나간 할머니를 찾아 삼거리극장에 간다. 밤이 찾아오니 매점 아줌마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라고 주장하는 에리사(박준면), 청소부는 엉뚱한 광대 모스키토(박영수), 경리는 자신을 찬 연인에게 욕설을 퍼붙는 완다(한애리), 영사기사는 일본 중위 히로시(조희봉)로 변신한다. 이들은 모두 유랑극단 단원이기도 했는데 옛 흥과 한을 못 이겨 밤마다 쇼를 벌인다. 그 극장 귀퉁이엔 죽고 싶어 안달하는 사장 우기남(천호진)이 있다. 그가 만든 영화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이 혼령들과 할머니, 소단의 사연이 연결된 고리다. “근대 농업을 위해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미노수는 인간의 머리에 소의 몸통을 가지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서글프게도 그 반대로 붙어버린 생물이다.
그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일주일마다 바뀌는데 여하튼 이번주엔 대형마트에서 조직적으로 물건을 슬쩍 훔치는 깜찍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을 닮아 볼 때마다 뒤바뀐 모습을 보여줄 듯한 〈삼거리극장〉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요약했다. “그러니까… 마음 둘 데 없는 소녀가… 마음 둘 데 없는 혼령들과 (낱말을 한참 고른다) 비록 유폐됐어도… 흥겹게 논다는 이야기죠.” 23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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