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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무간도’보다 비열하고 차가운

등록 2006-11-22 21:01수정 2006-11-22 21:03

디파티드
마틴 스코시지 감독은 홍콩 누아르의 진화라는 찬사를 받았던 <무간도> 1편의 줄거리 뼈대 위에 자신이 그려온 세계인 비열한 거리를 복원했다. 그래서 <무간도>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의 정신를 파고든다면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는 현실적 조건의 덫에 걸려든 인물의 몸부림을 그린다. <무간도>가 비장미를 멋처럼 두른 데 비해 비해 <디파티드>는 이를 싹 걷어내고 동물 같은 사람들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개싸움을 담는다.

무대는 중국으로 반환된 직후 스산한 홍콩에서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흑인 갱들이 밤낮 힘겨루기를 해대는 미국 보스턴 남부로 바뀌었다. 깡패 조직의 우두머리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컬슨)는 가난한 집 아들 콜린 설리반(맷 데이먼)을 어릴 때부터 돌봐 경찰청에 첩자로 심어둔다. 반대로 빌리 코스티건(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은 코스텔로의 부하 행세를 하는 경찰이다. 빌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퀴넌 경찰청 지서장(마틴 신)과 까칠한 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딕냄 경사(마크 월버그)뿐이다. 경찰과 갱단 모두 내부 첩자가 있다는 걸 눈치 채면서 상대를 먼저 알아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게임이 벌어진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리메이크
경찰·조폭 내부첩자 생존게임
슬픈 눈빛 대신 주먹 날리고
비장미 대신 갱스터식 한판

비슷한 줄거리에 <무간도>의 몇몇 유머나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도 <디파티드>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주요 인물의 성격이 변한 데 있다. 디캐프리오는 <무간도>의 량차오웨이가 보여줬던 스산한 슬픈 눈빛 대신 주먹을 날린다. 량차오웨이가 정적인 여백을 품고 있는 정신이라면 디캐프리오는 훨씬 동적으로 좌충우돌하며 안달하는 근육이다. 맷 데이먼도 냉철한 지성을 보여준 유더화보다 훨씬 촐싹맞은 속물이다. 두 인물이 역할 바꾸기 게임에 응한 까닭은 의리, 정의감, 복수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빌리는 아버지 쪽이 완전히 깡패 집안인 탓에 첩자 노릇을 하지 않으면 경찰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처지다. 콜린을 사로잡은 건 어릴 때 프랭크가 쥐어준 용돈 몇 푼과 빵, 음료수 등이다. 이 부분은 <무간도> 1편엔 없던 내용인데 <디파티드>에선 빠르고 유머 넘치게 담는다. 결국 두 인물이 바둥거려봤자 먹을 것과 핏줄의 손바닥 안이다.

우두머리 프랭크는 <무간도>의 한침(증지위)보다 비중 있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그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환경에 지배당하는 생산물이 아니라 환경을 생산하는 사람”이라고 주절대며 자신이 콜린이나 빌리와는 다른 인물인 척하지만 결국 다 헛소리다. 그는 한침보다 악당이며 동네 가게에서도 삥을 뜯는 웃기는 인물이다. 프랭크가 빌리를 의심하며 끌어가는 대화는 긴장감 넘치면서도 키득 거리게 만든다. 원작에서 에둘러 말하는 것과 달리 프랭크는 직설적으로 쥐그림을 그리고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빌리를 몰아붙인다. 량차웨이가 은근한 침묵으로 위기를 모면한 데 비해 빌리는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 많다, 노예처럼 부려먹지 않느냐”고 투정을 부린다.

폭력을 그리는 방식은 두 영화의 차이를 또렷이 드러낸다. 옥상에서 두 첩자가 만나는 장면을 <무간도>에서는 량차오웨이가 유더화의 등 뒤에 은근히 총부리를 들이대는 것으로 보여주지만 빌리는 콜린을 코피를 질질 흘리게 팬다. 대자로 뻗은 프랭크의 최후도 <무간도>의 우아한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결말이 <무간도>와 다르다. 인물들이 폼 잡을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어이쿠, 이런, 탕탕탕’ 이런 식으로 처리해버린다. 끝은 <무간도>보다 되레 스코시지의 전작인 <갱스 오브 뉴욕>을 닮았다. 빌 더 부처(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암스테르담 발론(리오나도 디캐프리오)의 결전은 총과 포탄의 시대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설치는 우스꽝스러운 패싸움이었다. <디파티드>는 끈끈이 덫에 발이 달라붙어버린 쥐가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리는 걸 쳐다보는 것처럼 웃기면서도 냉정한 영화다. <케이프 피어>에 이어 스코시지가 두 번째로 선보인 리메이크 작품. 23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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