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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병헌 “돌이킬 수 없는 애틋함 표현하고파”

등록 2006-11-23 13:28수정 2006-11-23 15:23

‘이병헌 답다’ -  영화 ‘그 해 여름’의 주연배우 이병헌. (연합뉴스)
‘이병헌 답다’ - 영화 ‘그 해 여름’의 주연배우 이병헌. (연합뉴스)
멜로 영화 '그해 여름'서 열연
배우는 변주를 원한다.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어하고 그게 또 바람직하다. 그런데 '천의 얼굴'의 배우에게도 '몸에 꼭 맞는 옷'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배우가 느끼기 전에 관객이 먼저 느낀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

배우 이병헌(36)에게는 그게 멜로 연기다. 연기력으로 신뢰감을 주는 몇 안되는 톱스타 중 한 사람인 그가 소화하지 못할 영역은 없다. 느와르 '달콤한 인생', 공포 '쓰리, 몬스터', 드라마 '공동경비구역 JSA' 등 그는 장르를 불문하고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멜로 연기를 펼칠 때였다. 그를 최고의 한류 스타로 만든 드라마 '올인'과 '아름다운 날들'을 비롯,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등이 그렇다.

그가 다시 한번 멋진 멜로 연기를 펼쳤다. 30일 개봉하는 '그해 여름'(감독 조근식, 제작 KM컬쳐)에서 이병헌은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목숨과도 같은 사랑을 포기해야 했던 주인공 윤석영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22일 시사회 직후 만난 이병헌은 쏟아지는 찬사에 다소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진짜 좋아요? 기분 좋네요. 시나리오를 덮을 때 영화 '노트북'이나 '시네마천국'과 같은 정서를 느꼈어요. 일반적인 멜로 혹은 휴먼 드라마와는 또 다른, 다시는 돌이킬 수 없고 찾아갈 수 없는 아련함, 애틋함, 향수 등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정서를 새롭게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1969년을 배경으로 한다. 삼선개헌 반대 시위가 드세게 일어날 무렵을 배경으로 여름 농촌봉사활동을 떠난 대학생 윤석영과 농촌 처녀 서정인의 풀꽃 같은 사랑이 펼쳐진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는 둘의 사랑을 영원으로 만들지 않는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빨갱이의 딸'이라는 딱지가 붙은 서정인과 세력가의 아들인 윤석영의 만남을 시대가 결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대학(한양대 불문과 89학번) 때 농촌활동을 가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석영의 캐릭터와 실제 제 모습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저도 대학 때 단체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클럽이나 동아리 활동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어 겉돌았죠. 석영이 친구 하나 바라보고 덥석 농활에 따라나섰지만 현장에서도 겉돌았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봐도 석영은 저랑 참 비슷한 친구입니다."

개인주의적 성향도 그렇지만 대학생 시절 구김살 없고 순수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닮았다. 반면 세상의 어둠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독기도 없다.


"석영처럼 대단한 집은 아니어도 저 역시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어요. 별 어려움 없이 큰 거죠. 그래서 커서도 때로는 아이처럼 순수할 수 있었구요. 그런데 그런 점이 어떤 면에서는 배우로서 약간의 콤플렉스가 됐어요. 다양한 연기를 펼쳐야 하는 배우에게는 밑바닥 경험도 필요하잖아요."

“연인처럼 보이나요” 22일 오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그해 여름’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주연배우 이병헌(왼쪽)과 수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인처럼 보이나요” 22일 오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그해 여름’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주연배우 이병헌(왼쪽)과 수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석영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두려움은 취조실에서 시작된다. 정인과의 만남으로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게 된 석영은 형사에게 혹독하게 뺨을 맞으며 자백을 강요당한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세트장에서 맞는 것만 이틀간 촬영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맞아본 적이 없어요. 200대 이상을 맞은 것 같은데 나중에는 볼이 너무 부어서 얼음찜질을 해도 소용이 없을 지경이었지요. 세트장도 음산한데 첫날 촬영하고 나니 두 번째 날은 촬영하러 가는 게 꼭 죽으러 가는 것 같더군요(웃음). 영화에 보여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정말 끔찍하게 맞았습니다."

이병헌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장면장면 다양한 아이디어로 연결됐다.

"어떤 때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서 감정이 북받쳐올라 주체할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교도소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먹먹한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는 것이 그랬죠. 그만큼 석영의 캐릭터와 영화의 내용에 푹 빠져 있었던 거죠."

그의 아이디어는 영화의 제목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졌다. 애초 '여름 이야기'였던 제목 교체에 제작사는 50만 원의 상금을 내걸었는데 이병헌이 '그해 여름'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

"그런데 나중에 상금을 10만 원밖에 안 주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같은 의견을 낸 사람이 다섯 명이라 나눠줬다나요? (웃음)"

화면에 울려퍼지는 로이 클락의 '예스터데이 웬 아이 워스 영(Yesterday When I Was Young)'이 지나간 시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세월이 흘러 백발의 노교수가 된 석영은 평생 가슴에 묻고 산 정인의 발자취를 좇는다.

이병헌은 관객이 그런 석영을 따라 가슴 터질 듯한 사랑의 희열과 슬픔을 함께 느끼게 한다. 더불어 배우 이병헌의 진가를 확실히 증명해보였다. 그의 가슴 떨리게 하는 연기가 한동안 가물었던 스크린에 단비가 될 듯하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 (서울=연합뉴스)

■ 평생 간직한 그리움 ‘그해 여름’

영화 ‘그해 여름’의 한장면 / 씨네21
영화 ‘그해 여름’의 한장면 / 씨네21
1969년 '그해 여름', 평생에선 찰나였으나 영원한 그리움을 품게 하는 사랑이 싹텄다.

이병헌과 수애의 멜로 영화 '그해 여름'(감독 조근식, 제작 KM컬쳐)은 그리움으로 가슴 한켠에 간직한 소중한 추억을 넘어 사랑이 삶 자체를 이룬 두 남녀의 '그 한때'를 담아낸다. 남녀의 사랑이 싹트는 시골 풍경은 정겹고, 둘의 사랑이 점점 커가는 과정은 흐뭇하며,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할 때 관객은 함께 아프다.

이병헌과 수애의 진가가 새삼 확인되는 작품. 이병헌은 그가 소화해냈던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역시 멜로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그 자신에게조차 일깨워준다. 스펙트럼이 넓은 그의 캐릭터 소화 능력은 관객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애는 스크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여배우로 다시 한번 평가받게 됐다. '가족' '나의 결혼 원정기'에 이어 처음으로 본격적인 멜로 영화에 출연한 수애는 이 영화가 깨끗하고 맑은 느낌을 갖게 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전작 '품행제로'에서 과거를 배경으로 코미디를 풀어냈던 조근식 감독은 '그해 여름'으로 복고 색채를 아름답게 재현했다.

작년 멜로 영화 최고 흥행작 '너는 내 운명'과 올해 흥행 성공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낙착 큰 감정의 진폭으로 몰입을 유도했던 것과 달리 '그해 여름'은 빙그레 미소지으면서도 애잔하다. 연기 잘하는 어여쁜 배우가 시골의 어여쁜 풍광을 배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감정 고조를 향해 간다.

감독과 배우가 숱한 토론 끝에 만들어낸 장면들과 그 장면의 리얼리티 또한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배우들은 섬세한 터치로 자칫 상투적일 수 있는 화면을 깨끗한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또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정감 있다.

인간이 달에 착륙했던 1969년,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시대의 아픔으로 되새김질할 수 있게 한 것도 멜로 영화에서 보기 드문 시도.

그러나 신파적 멜로를 경계해 결코 공급 과잉을 하지 않으려 애쓴 까닭에 갑작스레 호흡을 멈춘 듯한 장면 전환은 때론 아쉽다.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한 방송 프로그램 작가가 매력적인 독신남 윤석영(이병헌 분) 교수를 찾는다. 병 때문에 학교도 그만둔 윤 교수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누군가를 부탁한다.

대학 시절 세력가의 아들 석영은 학교에서 겉도는 인물이었다. 삼선개헌 반대 투쟁으로 연일 휴교령이 내려지는 학교와 치열한 정치적 번민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주변인물이 돼간다. 그를 유일하게 친구로 대해주는 균수(오달수)를 따라 수내리라는 시골 마을로 농촌봉사활동을 간다.

그곳에서 석영은 '빨갱이의 딸' 정인(수애)을 만난다. 정인은 글을 못 읽는 동네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 야한 소설을 읽어주며 얼굴이 빨개지고, 편백나무 잎사귀로 편지지를 만들며 세상을 떠난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맑고 순수한 여자.

석영은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정인 역시 자신의 주변에서 맴도는 석영이 싫지 않다. 몸담고 있는 곳에서 겉돌았던 석영과 정인은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읍내 장에서 로이 클락의 '예스터데이 웬 아이 워스 영(Yesterday When I Was Young)'을 눈을 감은 채 들으며 석영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정인과 정인을 위해 두 사람만의 영화관 객석을 만드는 석영.

그러나 세력가 아들과 빨갱이 딸의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온 시대의 격랑에 맞부딪히며 거센 풍파를 겪는다. 간첩죄를 뒤집어쓰게 된 석영은 평생을 회한 속에 살아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하며, 정인은 그런 석영을 감싸 안는다.

환하게 미소지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볼 수 있는 멜로 영화다.

3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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