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철 감독
첫 축구다큐 영화 ‘비상’ 임유철 감독
축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 만하다. 〈비상〉이 스크린 데뷔작인 임유철(34·사진) 감독은 속이 꽤 썩었다. 영화 개봉을 목표로 삼은 다큐멘터리가 거의 없다 보니 투자를 받을 수가 없었고, 주머니 사정이 “신용불량자 수준이 됐다”고 한다. 임 감독은 독립영화제작집단인 푸른영상 등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월간지와 인터넷신문 기자를 거쳐 문화방송에서 피디로 일했다.
-축구 팬이라서 기획하게 된 건가?
=야구 팬이다(웃음). 인간을 상품으로 다루는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배경이 프로 구단이다. 아이엠에프가 한국 사회에 남긴 큰 폐해는 사람을 생산성을 기준으로 “얼마짜리”로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표본을 찾고 싶었다. 상대적으로 몸값이 낮은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함께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선수 대부분을 담아 주인공이 없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다.
-텔레비전용으로 만들면 더 많이 봤을 텐데 투자 받기 힘든 영화로 만든 까닭은?
=좀더 관객들이 집중해서 봐주길 바랐다. 에이치디(고화질) 디지털카메라로 〈비상〉을 찍으면서 소리가 앞뒤 양옆으로 들리는 5.1사운드를 이용해 관객이 마치 운동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 했다. 다큐멘터리의 힘이 배가 될 듯했고 극장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극장에 걸리는 작품들도 장르가 다양해져야 한다.
-카메라 8대로 찍은 테이프만 600개라고?
=촬영에 1년반, 후반 작업에 1년이 걸렸다. 카메라 8대로 한 경기 촬영하는 데 1천여만원이 든다. 그것도 클로즈업 잘 되고 안정적인 카메라는 값이 억대라서 못쓰고 700만원짜리를 빌렸다. 편집 때도 하드디스크를 5번 날렸다. 하드디스크 장비를 빌렸는데 돈을 못 주니까 장비 업체가 회수해 가버렸다. 그 안에 데이터도 다 지우겠다고 했을 땐 정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살려달라고. 다큐를 좀 보여줬더니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이런 과정 때문에 올해 월드컵 때 개봉하려던 게 늦어졌다.
-밀착 취재가 돋보인다.
=장외룡 감독은 협조적이었는데 미디어에 노출된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은 달랐다. 이 다큐멘터리로 팬이 생기면 당신들이 슬럼프를 이기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달랬다. 1년여 동안 계속 쫓아다니니까 나중엔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친해지면 선수들이 힘들 때 제작진도 지치겠다. =김이섭 골키퍼가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5골을 내주는 바람에 마지막 경기에서 골키퍼 자리에 서지 못했다. 일년에 한두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잡으려고 선수들이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하는지 아니까 마음이 아팠다. 김 선수는 한번도 성질을 부린 적이 없는데 이때는 화를 내더라. 편집하다 보니 이 부분이 들어가 김 선수가 나쁜 인상으로 남을까봐 걱정된다. 임중용 선수가 피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니까 몸으로 부딪치며 수비하는 걸 보고 제작진도 울었다. 김소민 기자, 사진 이모션픽처스 제공
꼴찌의 꿈은 이루어진다
“맨날 꿈을 꿔요. 우승하는 꿈.” 인천유나이티드 주장 임중용 선수의 말로 축구를 다룬 첫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감독 임유철)은 시작한다. 2004년 창단한 인천유나이티드는 자타 공인 꼴찌다. 시민이 주인이라 돈도 없다. 전용구장이 없어 연습 한번 하려면 오고 가는 데만 5시간씩 걸리기 일쑤다. 스타도 없다. 다른 팀에서 방출당한 설움을 겪은 선수들이 꽤 모였다. 그나마 수도 적다. 다른 팀엔 40명씩 있는데 인천유나이티드엔 고작 29명, 그중 주전은 15명뿐이다. 그러니 쉬질 못한다. 이 구단 팬인 서울 서문여고 학생과 선생님은 응원을 시작하게 된 까닭을 “동정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상〉은 이들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꿈을 이루는 과정, 그 1년6개월을 쫓는다.
2005년 이들은 케이리그에서 전·후기 통합 1위, 챔피언 결정전에서 골득실차로 준우승을 올린다. 꼴찌의 눈물겨운 승리이니 감동은 따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이를 진국으로 우려낸 비결은 성공 스토리만 전하는 게 아니라 땀냄새가 느껴지도록 사람에 밀착한 데 있다. 땀, 눈물뿐만 아니라 욕설까지 담았다. 훈련을 받다 다같이 골대를 옮기는데 외국인 선수 라돈치치가 꾀를 부린다. 손가락만 슬쩍 대고 있다. 주장은 화났다. “이봐, 라돈, 이 새끼야. 투게더(함께) 오케이, 새끼.”
이들이 눈부신 성과를 기록한 데는 장외룡 감독의 공이 컸다. 그는 일본 프로축구팀 감독을 맡았던 첫 한국인이기도 하다. 신문 기사들을 이리저리 오리고 붙이며 “선수들이 어떤 걸 더 좋아할까”라고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이 숙제하는 초등학생처럼 보인다. 선수들 용기 북돋우려 흰판에 “우리는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영어로 썼는데 문법이 틀렸다. 라돈치치가 살짝 고쳐놓는다. 그가 “목표는 7승3무2패,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밝히자 선수들은 가당키나 하냐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스타도 돈도 없고 선수마저 부족한 축구팀
준우승 거두기까지 가슴 뭉클한 땀과 눈물
축구장의 살풍경도 생생하다. 여긴 전쟁터다. 모든 경기를 다 뛰고 대타도 없다 보니 주장은 피로 탓에 눈앞이 흐릿하다. 경기에 지면 땀에 절고 다리에 멍이 든 선수들이 서로에게 말로 생채기를 낸다. 김이섭 골키퍼는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5골을 내주는 바람에 마지막 경기를 성경모 골키퍼에게 내준다. 자신을 방출한 구단을 이겨 설욕한 선수는 눈물을 흘린다. 축구장에서 살아남으려니 일상도 전쟁이다. 김학철 선수는 훈련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 집에 들어간다. 아빠가 그리운 딸은 편지만 받고도 울음을 터뜨린다.
〈비상〉은 영웅담이 아니다. 미처 경기 장면을 찍지 못해 텔레비전 중계를 가져다 쓴 화면도 있지만 몸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잡아내 관객을 긴박한 축구 현장으로 안내한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모션픽처스
제공
=장외룡 감독은 협조적이었는데 미디어에 노출된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은 달랐다. 이 다큐멘터리로 팬이 생기면 당신들이 슬럼프를 이기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달랬다. 1년여 동안 계속 쫓아다니니까 나중엔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친해지면 선수들이 힘들 때 제작진도 지치겠다. =김이섭 골키퍼가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5골을 내주는 바람에 마지막 경기에서 골키퍼 자리에 서지 못했다. 일년에 한두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잡으려고 선수들이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하는지 아니까 마음이 아팠다. 김 선수는 한번도 성질을 부린 적이 없는데 이때는 화를 내더라. 편집하다 보니 이 부분이 들어가 김 선수가 나쁜 인상으로 남을까봐 걱정된다. 임중용 선수가 피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니까 몸으로 부딪치며 수비하는 걸 보고 제작진도 울었다. 김소민 기자, 사진 이모션픽처스 제공
꼴찌의 꿈은 이루어진다
준우승 거두기까지 가슴 뭉클한 땀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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