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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임상수 “멜로로 80년대 말하고자 했다”

등록 2006-12-22 17:38

영화 '오래된 정원'으로 현대사 3부작 완결

임상수 감독은 영화 '오래된 정원'을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 3부작'이라고 표현한다. 황석영 원작의 '오래된 정원'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운동권 남자와 그를 사랑한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사랑조차 죄처럼 느껴졌던 시대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임상수 감독의 전작 '그때 그 사람들' 개봉 당시 일었던 여러 논란 때문에 이는 단순한 러브 스토리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무리 그가 "사랑 이야기로 봐줬으면 한다"고 강조해도 말이다.

원작을 임상수식 재해석으로 내놓은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둘의 사랑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다가도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느낄 때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임 감독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70년대, 80년대를 관통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 것 아닌가 혼자서 자평한다. '오래된 정원'으로 한국 현대사를 살펴보는 작업을 털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꾸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선에 대해 "이 영화 배경의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못박으며 "'그때 그 사람들'이 한국을 20년간 지배한 지배층을 살펴보았다면 '오래된 정원'은 그들에게 저항했던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살펴보되, 비판적으로 살펴보게 되는 거죠. '비판적'이라는 뜻은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아닌 것은 아닌 대로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인데, 'so what?', 그래서 어떻다는 겁니까. 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이나 비판해서는 안되는 사람인가요?"


80년대 운동권, 즉 386세대들이 권력의 주요 위치로 자리 변동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요즘과 겹쳐지니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음에도 그는 인터뷰 내내 "그런 비판적 요소는 이 영화의 러브 스토리를 흥미롭게 깔아놓은 요소 중 일부분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의 바람대로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를 주요한 관점에서 살펴보자. 수배 중인 오현우와 그를 숨겨준 한윤희는 6개월간의 짧은 사랑을 나눈 후 다시는 만나지 못한 슬픈 운명을 맡는다. 감옥에 갇힌 오현우는 그 나름대로 세월을 보내지만 남겨진 한윤희의 고통은 더 컸을 터. 윤희는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에 당신뿐이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한윤희는 죽어가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6개월간의 사랑이 가장 강렬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만 가능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누가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는지 생각하지 않을까요? 염정아 씨와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나눴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쓸쓸하지만 쓸쓸한 척하지 말고 때론 독해 보이자. 관객은 그런 모습을 보다가 마지막에 이 여자가 정말 쓸쓸하고 외롭게 보여 안쓰러울 수 있다고."

그렇다면 오현우의 입장에서 그 사랑은 어떠했을까.

"출소 후 광주에서 젊은 시절 신념을 가졌던 이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걸 보게 됩니다. 빛나는 신념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난 뒤 그 모든 신념이 우화가 돼버린 막막한 입장에 놓였죠. 그러나 윤희가 남겨준 노트와 딸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었을 겁니다. 죽은 한윤희가 그를 치유해요."

임 감독은 오현우를 통해 저항의 시대, 저항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한 삶인지조차 잊고 있었던 게 아닌지 반문한다. 현우를 떠나 보낸 후 후배 영작과 미경 등 윤희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

원작에서는 교복 입은 은결이 영화에서는 '날티'나는 신세대 젊은이로 그려진다. 은결을 통해 그는 젊은 세대를 보듬어 안으려는 의도를 담았다.

"은결이가 걸어나오는 신 하나로 어려운 시대, 어려운 사랑이어서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벗어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날티나는 요즘의 신세대로 표현했는데 이는 기성세대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보이는 애들도 얼마나 속 깊은 인간이, 딸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은 요즘 젊은 애들도 부모 세대의 일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친구들을 이 영화에 초대하는 의미이기도 하다"라며 웃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도움을 받았던 79학번 운동권 선배들의 반응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나 보다.

"운동권이었던 두 선배 부부를 시사회에 초대했는데 얼굴이 상기됐더군요. 무의식 속에 꽁꽁 숨겨뒀던 아픔을 드러냈기 때문이에요. 아픈 기억을 숨겨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꺼내서 정면으로 마주봐야만 치유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치유해야만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로 남지 않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린 맞는 비판을 쓸쓸하게 웃으며 받아들이는 데 참 인색한 것 같아요."

아무리 '오래된 정원'을 멜로 영화로 봐달라지만, 그저 멜로 영화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임 감독 스스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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