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개봉작이 올해 처음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3년 65편, 2004년 74편, 2005년 83편으로 꾸준히 올랐다가 올해 108편으로 사상 처음 100편을 돌파했다.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자료를 보면 64%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괴물>이 1300만명을 넘기는 경사도 있었다. 외형상으로 보면 스크린쿼터 축소 등의 난제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가 전성기를 맞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반기기보다 오히려 거품이 빠질 것이란 우려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영화 100편 시대 이면의 고민을 살펴본다.
108편 가운데 이익낸 영화는 13편뿐-수익성은 떨어져=영화진흥위 조사를 보면 올해 11월까지 서울 기준 한국 개봉 영화 관객수는 모두 2359만834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356만8096명)에서 0.1% 느는 데 그쳤다. 쏠림 현상도 심한 편이다. <괴물>, <타짜>, <투사부일체>, <한반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상위 5개 영화가 서울 관객의 38.2%(1134만9218명)를 몰아 가져갔다. 1230만명을 기록한 <왕의 남자>와 410만명을 모은 <태풍>은 지난해 말 개봉해 올해 통계에서 빠졌는데, 이들 영화말고 관객 300만명을 넘긴 영화는 6편뿐이었다. 올해 개봉작 108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13편에 불과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가장 많은 작품을 제작한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는 “12편 가운데 <타짜> 등 3편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밝혔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올해 개봉한 85편만을 대상으로 추정한 투자수익률은 -29.7%로 2002년 이후 가장 나쁜 수치를 나타냈다.
치열해진 경쟁, 제작비만 부풀어=한주에 두 편 꼴로 한국 영화가 극장에 걸리다보니 마케팅 등에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제작비도 올라갔다. 영진위 조사를 보면, 한국 영화 한편당 평균 제작비는 25억원(2001년), 37억원(2002년), 41.7억원(2003~2004년), 39.9억원(2005년)으로 비교적 완만하게 상승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그 액수가 급격하게 뛰어올랐다. 업계에서는 한국영화 제작비가 순제작비 16~18억원, 마케팅 비용 14~15억원을 합쳐 대략 50억~52억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영화는 늘었는데 수출 실적은 뚝 떨어졌다. 영진위가 발표한 올해 1~6월 상반기 수출 현황을 보면, 국외 수출액은 1741만달러로 지난해에 비해 58.3%나 줄었다. 특히 일본 수출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71.8% 떨어졌다. 2005년 일본에서 개봉한 61편이 거의 흥행에서 실패한 탓이다.
왜 영화제작 갑자기 늘었나=이승재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 편수가 과도하게 늘어난 건 내부 역량이 축적됐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 환경 변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도 “계획이 뒷받침 되지 않은 채 경쟁이 붙어 마구 영화가 만들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초까지 우회상장 열풍이 불어 매니지먼트회사·제작사들이 줄줄이 주식시장에 들어왔는데, 몇몇 업체들은 매출을 올리려고 역량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동통신사도 올해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해 목돈을 풀었다. 에스케이티는 올해 7월까지 471억원을 투자해 아이에이치큐의 최대주주가 됐고 케이티와 케이티에프도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의 지분 51%를 샀다.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는 지난해보다 두배 많은 편수를 올해 제작했다.
100편 시대, 투자위축으로 올해로 그칠 전망=100편 넘는 개봉은 내년까지 이어지지 못할 거라는 게 제작자나 투자·배급사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태성 쇼박스 홍보 팀장은 “내년엔 지난해 수준인 80편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재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새로운 대안이 생기지 않는 한 내년엔 찬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유치에 먹구름이 끼었기 때문이다. 개봉 편수가 늘면서 올해 장편 극영화 가운데 46편을 신인 감독들이 연출했을 정도로 신예들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갔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적었던 것도 2006년의 특징이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쇼박스 등 거대 투자·배급사는 배급 편수는 올해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지만 위험분산을 위해 주요 투자자로 참여할 때 50% 정도를 부담하던 것을 30%대로 낮출 작정이다. 부분투자자들도 움추리고 있다.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는 “자기 영화 깨져도 다른 영화 잘되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니까 투자 환경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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