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강혜정 “‘인간극장’ 아닌 성장 드라마”

등록 2006-12-29 13:33

영화 ‘허브’에서 장애우 연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배우 강혜정. (연합뉴스)
영화 ‘허브’에서 장애우 연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배우 강혜정. (연합뉴스)
영화 '허브'에서 장애우 연기

'올드 보이'와 '웰컴 투 동막골'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까. '연애의 목적' '도마뱀' 등 그리 튀지 않은 역을 잇달아 했음에도 희한하게 강혜정의 이미지는 여전히 강하다. 그런 그가 쉽지 않은 장애우 연기로 또 다시 깊은 인상을 준다. 스무 살이지만 일곱 살 지능에서 멈춰버린 정신지체 장애우의 사랑을 그린 영화 '허브'(감독 허인무, 제작 KM컬쳐)에서다.

어떤 캐릭터든 배우에게는 도전이겠지만 좀체 만나기 어려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순수하고, 밝고, 감동이 있었어요. 안할 수 없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제가 맡게 된 거예요. 하하."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그는 차상은과 영화를 소개했다.

"상은의 모델이 없으니까 처음엔 막연했습니다. 대본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잡아나갔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았어요. 그래도 힘든 만큼 해내고 난 이후 감정도 짜릿했죠."

상은이가 어떤 감정일까 늘 고민됐다. 일곱 살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지만 20년 동안 몸으로 습득한 것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창고도 잘 붙일 수 있고, 청소도 잘하며, 포장으로 직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특별해 보이지 않고 되레 평범한 아이예요. 다만 좀 엉뚱할 뿐이죠."

영화는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뉜다. 엄마와의 사랑과 종범이라는 한 남자와의 사랑.

"모녀라는 관계는 가장 평범한 사이지만 그 무엇보다 특별한 관계죠. 그렇다고 현숙이 특별한 엄마로 남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만 상은을 독립적으로 키우고자 했을 뿐이죠. '내가 없어도 잘살아'라며."

이 영화가 그저 '인간극장'류로 장애우의 일상을 담는 게 아닌 '성장 드라마'로 보이는 건 종범과의 사랑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

"멜로 코드가 있다는 게 다른 장애우 영화와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잘 표현돼야 상은이 성숙해가는 과정이 잘 표현되는 거죠."

상은이 종범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더디지만 멈춰 있는 건 아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한 순간 상은이가 부쩍 자랐다는 걸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찍으며 내 사람, 내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단다.

"제가 이만큼이나 컸어도 여전히 절 걱정하는 아버지가 생각났고, 제가 사랑하는 단 한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자식의 심정도 느껴졌어요. 효도해야죠. 근데 지금도 잘 안되네요."

장애를 갖고 있는 딸과 죽음을 앞둔 엄마 이야기. 그 이야기의 전개가 다분히 예측 가능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하다는 게 나쁘지는 않잖아요. 진정성만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감정을 거르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상은이 고통을 극복한 후의 감정이 더 깨끗해질 수 있으니까."

단순명쾌한 답이다.

"우리 영화의 강점은 밝다는 거예요. 웃기다는 게 아니라 밝은 거죠. 영화속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찌들어 있지 않아요. 장애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해서 소외된 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평범한 사랑을 할 만큼 충분히 독립적이라는 걸."

상은이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한 인간으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듯 강혜정 역시 배우로서 참 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연인 조승우와 찍었던 '도마뱀'을 빼고는 흥행도 작품성도 인정받은 영화를 해왔다.

"정말 다행인 건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필모그래피가 내 역사다'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던 거예요. 제가 선택한 작품에 대해서는 목숨만 빼고 다 줄 정도로 쏟아부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결과물은 항상 아쉬웠지만요. 앞으로 더 잘해야겠죠."

자기가 하는 일에 목숨만 빼고 다 줬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데서 이미 강혜정은 특별하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