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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전쟁을 막아내려 전쟁터 휩쓴 ‘묵가병법’

등록 2007-01-04 01:57수정 2007-01-04 02:01

‘묵공’
‘묵공’
영화 <묵공>
어떤 순간에 역사는 물길을 바꾸는 것일까. 위대한 영웅의 탄생? 대중을 사로잡는 사상이나 종교의 범람? 아니면 그저 운명이나 우연? 혹은 80년대식으로, 민중의 힘?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10만 대군이 겨우 4천명이 살고 있는 양성으로 진군한다. 묵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도착한 사람은 달랑 혁리(류더화) 하나뿐이다. 그러나 모든 병권을 넘겨받은 혁리는 탁월한 병법으로 조군을 퇴치한다. 묵가는 ‘침략 전쟁을 비난하는 ‘비공’이라는 사상을 내세워 약소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에 맞서 평화를 지켰다. 결코 남을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으며, 다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만 전투에 임했다. 겸애와 평화를 주장하는 묵가는 강대국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언제든 지략을 빌려주었다. <손자병법>은 공격을 위한 병법으로는 최고이지만, 묵가의 병법은 전적으로 수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묵공>(감독 장즈량)은 원작의 서두인 양성을 둘러싼 공방전만을 영화화했다. 각색은 훌륭하다. 혁리가 양성을 위해 헌신하고 다시 배신당하는 과정은, 원작 이상으로 긴장감이 넘치고 의미심장하다. 혁리를 사랑하는 여성 장수 일열(판빙빙)과 사수대를 지휘하며 혁리를 따르는 자단 등 추가된 조연들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장지량 감독은 <묵공>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혁리는 양성을 구해낸 영웅이지만, 결코 초월적인 인간이 아니다. 혁리라는 인간은, 이겨내겠다는 정신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힘을 하나로 뭉쳐내는 존재일 뿐이다. 혁리가 사라지면, 무심한 대중은 그들을 살린 영웅을 한순간에 잊어버리지만. <묵공>은 비정한 역사의 순간을 진지하게 그려낸다. 어깨에 힘을 주거나, 과장하지 않고, 그저 혁리와 양성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신중하게 파고들어간다.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처절하게 ‘현실’ 그 자체를 목도한다.

강대국 침략 막기 위해 양성에 투입된 묵가의 혁리
조나라 이겨 평화를 지켜냈으나 그의 헌신은 배신당하고…

‘묵공’
‘묵공’
혁리가 맞서 싸우는 조나라의 장수는 항엄중(안성기)이다. 항엄중과 혁리는 서로를 인정하는, 공명정대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위인들도 ‘전쟁’이라는 엄혹한 현실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정당방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지략으로 죽어간 수많은 조나라 병사를 보면서 혁리는 한탄을 해야만 한다. 항엄중은 자신의 부족함으로 개죽음을 한 수많은 병사들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결국은 회군하라는 명까지 어기고, 목숨을 걸고 혁리와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 요즘의 전쟁은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마치 컴퓨터 게임 같은 장면들뿐이지만, 그것은 현실이 제거된 이미지일 뿐이다. 전쟁이란, 나의 눈앞에서 사람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피를 토하는 것이다. 적이 아니라, 실제로 죽어가는 것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혁리와 묵가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한 것은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다. 조나라 군사가 물러가자, 양왕은 바로 혁리를 배신한다. 그가 원한 것은 양성의 평화가 아니라, 권력의 안정이었다. 혁리는 배신당하고, 그를 따르던 자들은 반역죄를 뒤집어쓴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 약자를 돕는다고 하지만, 약육강식의 법칙뿐이었던 춘추전국시대에 그것이 가능했을까? 혁리는 양성을 조나라 군사에게서 구해냈지만, 양왕의 손에서는 구해내지 못했다. 포악하고 어리석은 왕은, 과거나 미래나 여전히 양성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조나라 군사가 들이닥쳤다면 남자는 노예로 끌려가고 여자는 능욕을 당했을 것이다. 혁리는 최악을 막았지만, 차악도 피하게 할 수는 없었다. 혁리, 아니 묵가가 던진 돌 하나로는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 연인이 된 일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애절하게 찾아 헤매던 혁리이지만, 결국은 그조차도 구하지 못한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묵가의 사상은 남았지만 묵가군은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영화는 깔끔하게 양성의 이야기만으로 마무리하지만, 원작은 장황하게 묵가의 고뇌를 말해준다. 약자의 편에서 수비를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무력으로 모든 이를 굴복시켜 평화로운 강대국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여전히 정답은 없지만, 영화 <묵공>은 의미심장한 결말을 보여준다. 혁리가 양성을 위해 그토록 애썼건만, 역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갈 길만을 간 것이다. 남은 것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여전히 논쟁적인 묵가의 평화사상뿐.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사진 보람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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