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 음악감독
‘천년여우 여우비’ 양방언 음악감독
양방언(47)의 음악엔 국적을 붙이기 어렵다. 오케스트라와 마두금, 얼후, 장구, 백파이프 등 여러 나라 악기들이 어울린다. 다만 이미지 하나를 잡자면 그의 곡엔 아시아의 풍경이 스며있다. 그의 아버지는 제주도, 어머니는 신의주가 고향이다. 재일동포인 그는 일본과 중국에서 진즉 먼저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다. 음반 프로듀서이자 연주·작곡가로 성룡의 영화 <썬더볼트>, 홍콩 드라마 <정무문>, 일본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엠마>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가 음악 감독을 맡은 첫 한국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감독 이성강)가 25일 개봉한다. 이어 그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이자 <서편제>의 속편인 <천년학>에 음악을 입히고 있다. <천년여우 여우비>에 등장하는 100살 난 사춘기 구미호부터 영혼, 외계인, 그림자 인간 등 별별 캐릭터가 그의 음악 위에서 뛰놀았다. “소녀의 감성이나 자기 영혼을 희생해 남을 구한다는 발상이 재밌어요. 어느날 꿈에 제가 주제곡을 만들고 있는데 선율이 들렸어요. 일어나자마자 기억나는 대로 썼어요.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웃음)” 이 애니메이션에서 그는 서구 악기들만 썼다. 주제곡은 발랄하면서도 스산한 서글픔이 배있다.
<천년학> 작업에 대해 그는 “올라야 하는 산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배우 오정해씨의 소개로 만난 임권택 감독과 5년 전부터 함께 작업해 보자는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막상 <천년학>을 결정할 때는 둘 다 걱정이 많았다. “제가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깊이를 이해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판소리를 질펀하게 깔았던 <서편제>의 속편이니 그럴 법도 하다. 1994년 총련계인 이버지가 숨지고 그가 국적을 북한에서 한국으로 바꾸기 전까지 그는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천년학>의 곡 작업은 주거니 받거니 노동요를 닮았다. “촬영분을 보여주시면 제가 곡을 만들어 보내요. 그걸 듣고 감독님이 또 찍죠. 판소리가 중심이 되진 않을 거예요. 저보고 국악 하라고 하면 할 수도 없고 재미도 없겠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천년학>의 주제곡에는 대금, 가야금 등 한국의 악기와 서구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졌다. 곡을 만들기 전에 그는 해남, 장흥 등 촬영 장소에 갔다. “땅이 매력적이었어요. 민속적이라고 할까….”
중·일서 먼저 이름날린 재일동포 의사 출신 음악가
동·서양 악기 두루 녹여넣어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작업중 그는 “공간마다 소리의 질감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1집 <더 게이트 오브 드림>, 2집 <인 투더 라이트>에는 광활한 중앙아시아 초원의 스산한 바람 소리가 있다. “몽골의 초원은 너무 넓어서 아무리 달려도 경치가 똑같아요. 방향이나 위치를 잊게 되요. 처음엔 무서운데 나중엔 무척 자유로워지죠.” 그는 3집 <온리 헤븐 노우스>를 내고 “내 음악의 형태가 어렴풋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음반은 그가 말로만 듣던 제주도의 바다를 보고 난 뒤에 만든 것이다. “정체성만으로 사람이 이뤄지는 건 아니죠. 하지만 핵심이 지닌 어떤 에너지는 필요해요. 한국에 올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제겐 큰 의미였어요.” 그는 <온리…>에 이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음악 ‘프론티어’가 실린 음반 <파노라마>에서 원일 등 한국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장고, 태평소 등을 담았다. 그의 음악이 품고 있는 장르의 스펙트럼은 넓다. “다섯 형제 가운데 막내인데 형제들이 재즈, 보사노바, 클래식, 팝, 록을 들었어요. 민속 악기부터 컴퓨터 음악까지 소리에 관심이 많았죠.” 하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이 살아남으려면 의사만한 게 없다고 믿었던 의사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정말 엄격하셨어요. 저는 표면적으로는 착한 아들이었죠.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 거죠.(하하) 해보지 않고는 모르니까 일단 의사 자격증은 따자고 생각했어요.” 마취과 의사로 1년 일한 뒤 그는 집을 나와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음악으로 밥벌이하기는 녹록치 않았는데 퓨전 팝밴드 ‘샴바라’에서 연주하면서 활로가 보였다. 이어 그는 일본 대중음악 가수 하마다 쇼고와 홍콩의 록밴드 ‘비욘드’의 프로듀서를 맡으며 입지를 다졌고 솔로 음반 6장을 내놨다. “제일 싫어하는 게 예술한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하는 거예요. 유쾌하고 편안한 사람이고 싶고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죠.”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왕따 소년과 사랑에 빠진 구미호 <천년여우 여우비>(감독 이성강)에선 추한 것들이 귀여워지고 귀여운 것들은 괴기스럽다. 주인공 여우비는 100살 난 사춘기 구미호다. 인간의 간을 빼먹긴 커녕 단풍 곱게 든 나무 위로 미끄러지며 “야호”하는 발랄한 철부지다. 순한 토끼들은 뱀 꼬리를 달고 영혼을 지키는 존재가 돼 음산한 기운을 뿜어낸다. 첫사랑은 유치한 걸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개다리춤을 함께 추는 사이 찾아온다. 고정된 이미지를 뒤집는 악동 같은 상상력이 주는 활력이 <천년여우 여우비>엔 넘친다. 서정적인 <마리 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이 3년만에 내놓은 작품인데 그의 전작보다는 온갖 캐릭터가 왁자지껄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한다. 여우비(목소리 손예진)는 외계인들과 함께 산다. 어느날 말썽꾸러기 외계인 말썽요가 가출해 인간 마을로 가버린다. 말썽요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따로 공부하는 학교에 기어들어간다. 여우비는 말썽요를 데려오려고 그 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를 잃은 뒤 싸움질을 일삼는 황금이(류덕환)를 만난다. 둘은 우정 같은 첫사랑에 마음이 발그레해진다. 여우비를 구하려던 황금이가 실수로 영혼이 다른 몸으로 태어나려고 머무는 곳, 카르마에 빠지자 여우비도 따라 들어간다. 빛이 여울지는 사이로 울긋불긋 덩굴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여우비의 집이나 회전목마 모양 우주선 등은 수채화 같은 화면 안에 푸근하게 자리 잡았다. 낙엽 하나에도 깊이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외계인, 영혼을 훔치는 기계, 여우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대야 등 기발한 캐릭터의 배치가 되레 큰 줄거리가 흘러가는 걸 방해하며 샛길을 만든다. 여우비와 황금이의 정서적 교감을 정교하게 쌓아올리지 않아 큰 줄거리를 밀고나가는 데 힘이 부쳐 보인다. 너무 많은 상상력을 한정된 시간 안에 넣다 보니까 이야기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속도와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 글 김소민 기자 사진 사진 옐로우필름 제공
동·서양 악기 두루 녹여넣어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작업중 그는 “공간마다 소리의 질감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1집 <더 게이트 오브 드림>, 2집 <인 투더 라이트>에는 광활한 중앙아시아 초원의 스산한 바람 소리가 있다. “몽골의 초원은 너무 넓어서 아무리 달려도 경치가 똑같아요. 방향이나 위치를 잊게 되요. 처음엔 무서운데 나중엔 무척 자유로워지죠.” 그는 3집 <온리 헤븐 노우스>를 내고 “내 음악의 형태가 어렴풋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음반은 그가 말로만 듣던 제주도의 바다를 보고 난 뒤에 만든 것이다. “정체성만으로 사람이 이뤄지는 건 아니죠. 하지만 핵심이 지닌 어떤 에너지는 필요해요. 한국에 올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제겐 큰 의미였어요.” 그는 <온리…>에 이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음악 ‘프론티어’가 실린 음반 <파노라마>에서 원일 등 한국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장고, 태평소 등을 담았다. 그의 음악이 품고 있는 장르의 스펙트럼은 넓다. “다섯 형제 가운데 막내인데 형제들이 재즈, 보사노바, 클래식, 팝, 록을 들었어요. 민속 악기부터 컴퓨터 음악까지 소리에 관심이 많았죠.” 하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이 살아남으려면 의사만한 게 없다고 믿었던 의사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정말 엄격하셨어요. 저는 표면적으로는 착한 아들이었죠.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 거죠.(하하) 해보지 않고는 모르니까 일단 의사 자격증은 따자고 생각했어요.” 마취과 의사로 1년 일한 뒤 그는 집을 나와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음악으로 밥벌이하기는 녹록치 않았는데 퓨전 팝밴드 ‘샴바라’에서 연주하면서 활로가 보였다. 이어 그는 일본 대중음악 가수 하마다 쇼고와 홍콩의 록밴드 ‘비욘드’의 프로듀서를 맡으며 입지를 다졌고 솔로 음반 6장을 내놨다. “제일 싫어하는 게 예술한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하는 거예요. 유쾌하고 편안한 사람이고 싶고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죠.”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천년여우 여우비
왕따 소년과 사랑에 빠진 구미호 <천년여우 여우비>(감독 이성강)에선 추한 것들이 귀여워지고 귀여운 것들은 괴기스럽다. 주인공 여우비는 100살 난 사춘기 구미호다. 인간의 간을 빼먹긴 커녕 단풍 곱게 든 나무 위로 미끄러지며 “야호”하는 발랄한 철부지다. 순한 토끼들은 뱀 꼬리를 달고 영혼을 지키는 존재가 돼 음산한 기운을 뿜어낸다. 첫사랑은 유치한 걸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개다리춤을 함께 추는 사이 찾아온다. 고정된 이미지를 뒤집는 악동 같은 상상력이 주는 활력이 <천년여우 여우비>엔 넘친다. 서정적인 <마리 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이 3년만에 내놓은 작품인데 그의 전작보다는 온갖 캐릭터가 왁자지껄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한다. 여우비(목소리 손예진)는 외계인들과 함께 산다. 어느날 말썽꾸러기 외계인 말썽요가 가출해 인간 마을로 가버린다. 말썽요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따로 공부하는 학교에 기어들어간다. 여우비는 말썽요를 데려오려고 그 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를 잃은 뒤 싸움질을 일삼는 황금이(류덕환)를 만난다. 둘은 우정 같은 첫사랑에 마음이 발그레해진다. 여우비를 구하려던 황금이가 실수로 영혼이 다른 몸으로 태어나려고 머무는 곳, 카르마에 빠지자 여우비도 따라 들어간다. 빛이 여울지는 사이로 울긋불긋 덩굴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여우비의 집이나 회전목마 모양 우주선 등은 수채화 같은 화면 안에 푸근하게 자리 잡았다. 낙엽 하나에도 깊이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외계인, 영혼을 훔치는 기계, 여우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대야 등 기발한 캐릭터의 배치가 되레 큰 줄거리가 흘러가는 걸 방해하며 샛길을 만든다. 여우비와 황금이의 정서적 교감을 정교하게 쌓아올리지 않아 큰 줄거리를 밀고나가는 데 힘이 부쳐 보인다. 너무 많은 상상력을 한정된 시간 안에 넣다 보니까 이야기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속도와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 글 김소민 기자 사진 사진 옐로우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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