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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설경구 “날 틀어주는 감독을 만나고 싶다”

등록 2007-01-24 13:47

영화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영화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 지독한 연기 선보여
“연기하면서 한번도 ‘됐다’가 없었다”

독하다. '참 지독한 연기'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설경구가 사람의 가슴을 후벼파는 연기를 보인다.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 제작 영화사 집)에서다. 설경구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는 따라붙은 지 오래된 일. 그럼에도 새삼 그의 연기를 주목하게 하는 건 '과연 저기까지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라는 감성적 만족도와 함께 어느 순간 '늘 비슷한 톤의 연기 아닌가'라는 지적을 이번만큼은 탈피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라는 점 때문이다.

이 영화 홍보를 위해 난생 처음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그는 예의 툭툭 내뱉는 스타일의 표현 외에 연기에 대한 긴 설명을 보기 드물게 하기도 했다.

◇ 자학에 가까운 긴장감 =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랄 마지막 장면. 아이를 잃은 아버지인 설경구 연기의 압권이 펼쳐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보며 관객은 강한 주장을 담고 있는 영화의 목표에 공감하게 되고, 정신을 퍼뜩 차리면 설경구의 연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촬영했을까. 그는 촬영 당시의 상황을 정말 길게, 쭉 설명했다.

"모두 30번의 테이크를 갔습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찍으며 가장 많이 간 겁니다. 그랬는데도 '됐다'라고 느끼지 못했어요. 제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찜찜해했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더군요."


박진표 감독은 이 장면을 찍기 전 "몇 달이 걸려도 O.K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이 한방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다"라고 말했다. 설경구 역시 이 장면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갔지만 그 마지막 장면을 찍기 전 장례식 장면이 있었다. 제천 화장터에서 촬영됐는데 그는 아예 의상과 분장을 마치고 밤새 술을 마셨다. "애 아빠가 맨정신이었을까?"라는 박 감독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실내야구장에서 스윙도 했다. 혼이 나간 상태였을 것.

그런 독한 촬영을 하고 마지막 장면을 찍으러 서울로 왔다.

"어느 순간 대사가 입에서 익숙해지더니 머리로 연기하고 있더군요. 제 스스로 말린 거죠. '촬영 접자'고 했습니다. 그 길로 머리를 비우러 술 마시러 갔고, 새벽에 안세병원에서 촬영장이었던 목동 방송회관까지 걸어갔습니다. 촬영팀이 절 보더니 '하룻새 왜 이리 늙었냐?'고 묻더군요."

거의 자학에 가까운 긴장감이다. 다만 그는 그 긴장감을 즐겼다고 했다. 그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웃기도, 울기도 했다는 것.

"이 이야기는 절대 타협해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한 달 동안 22회차를 찍었죠. 몰아붙인 겁니다.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그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서."

세트와 야외촬영 스케줄이 달라 서서히 살을 빼지 못하고 '쌩으로' 굶어가며 촬영에 임했다는 건 정신적 긴장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박진표'니까… = "이 영화의 목표, 이런 걸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좋아'를 보고 나서 박진표 감독에게 관심이 있었고, 감독이 박진표니까, 박 감독이 하자고 하니까 했던 것일 뿐입니다."

박 감독이 그에게 이형호 군 사건과 관련한 사진과 기사를 보냈다. '너는 내 운명'을 찍기 전이다. 박 감독은 그것만 달랑 보내놓은 채 '너는 내 운명' 촬영을 시작했다. '그놈 목소리'의 시나리오는 커녕 시놉시스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냥 박 감독만 믿고 하기로 했다. 되레 박 감독이 놀랐다.

영화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영화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이 사람(박 감독)은 16년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겁니다. 형호 군을(박 감독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조연출 시절 첫 회인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취재했다). 형호 군 아버지가 '영화로 만들어줘 고맙다'가 아니라, '형호를 기억해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사람의 진정성이 전해져왔고, 형호 군 아버지를 만나고 내가 아이 잃은 아버지가 되면서 이 영화의 뜻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유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에 출연한다고 하니 '열혈남아'에 함께 출연했던 나문희가 "어쩌니. 욕 많이 먹겠다. 유괴범 연기하면…"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설경구가 당연히 유괴범 역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 감독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에 연기를 잡아갈 수 있었죠. 그저 지나치는 한마디가 (가슴을 툭툭 치며) 여기를 건드리는 감독이에요. 그래서 계속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내 마음을 울리는 감독인 거죠. 한편으론 은근히 부담을 줬습니다. 카메라, 조명, 동시녹음 등이 배우를 침범하지 못하게 했죠. 그렇게 절 담궈버린 겁니다. 신뢰죠."

◇"날 틀어주는 감독을 만나고 싶다" =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연기에 대한 매너리즘으로 흘렀다. 어느덧 영화마다 '설경구니까' '설경구식의 연기'라는 평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누구보다 답답하고, 신경쓰일 터다.

"데뷔해 서너 작품을 할 때까진 신선하죠. 그 다음엔 내가 나인데 뭐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배우는 핑곗거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항상 잘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노이로제로 인해 정신병에 걸릴 걸요."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참 많이 한다"고 했다. 결국 연기는 배우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간다면서.

"나를 틀어줄 수 있는 감독이 절실합니다. 배우의 이미지를 또 써먹지 않고, 조금만이라도 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감독 말이죠. 박 감독의 경우 늘 '난 몰라. 네가 알지'라고 말했죠. 전폭적으로 믿어준 거죠. 박 감독과 연기의 기술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쪼게 만들고, 내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줬죠."

그의 말을 들어보면 박진표 감독에게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은 것 같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뿌듯했던 적이 있었나"라고 자문하며 "없는 것 같다"더니 "아, '박하사탕' 들고 부산국제영화제 갔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답한다.

"웬 낯선 놈이 등장한 영화라고만 생각했을 텐데, 시쳇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영화 상영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대한민국에서 한다 하는 감독들이 제 앞에 줄줄이 서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2시간10분 만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죠. 그때뿐. 단 한번도 제 연기에 뿌듯했던 적도, 만족했던 적도 없습니다."

설경구는 배우로서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도대체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게 연기"라고 툴툴거리면서도 배우로서 갈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을 엿보았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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