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캐서린 패터슨의 동화 <테라비시아의 다리>(영화 개봉 제목은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리를 듣고 상당히 걱정했다. 특히 인터넷에 뜬 예고편을 본 뒤로는 더욱 그랬다. 여자 주인공 레슬리가 원작처럼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구별이 안 가는 말괄량이에서 예쁘장한 금발소녀로 탈바꿈한 것까지는 그러려니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컴퓨터 그래픽 특수 효과들이 많은가? 언제부터 <테라비시아>가 <나니아 연대기>의 아류작이었던가?
며칠 전에 시사회를 보고 왔는데, 사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대 배경이 21세기 초로 바뀌었고 레슬리는 더 예뻤지만 스토리와 주제는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컴퓨터그래픽이 걸린다. <테라비시아>의 스토리에서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특수효과가 나오는 할리우드 액션 장면이 등장한 건 순전히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 이후 등장한 판타지 팬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서였으리라.
여기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우리가 지금 별 어려움 없이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을 스크린 위에 그려 보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컴퓨터그래픽은 미완성 기술이고 들어가는 돈과 인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은 다를 게 없다. 질의 차가 조금 나긴 해도 우린 컴퓨터로 뭐든지 할 수 있다.
전능함 때문에 세상은 지루해진다. 지금과 같은 컴퓨터 그래픽 시대가 아니라면 <테라비시아>의 잠재적인 관객들은 두 어린아이들이 꿈꾸는 환상 세계가 그처럼 노골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영화를 보면서도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관객들은 다르다. 사실 영화가 그려 보인 테라비시아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기술보다 상상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이 영화의 테라비시아는 무언가를 절실하게 상상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일단 컴퓨터 기술이 있어서 그걸 사용하기 위해 급조된 것들이다.
좋건 싫건 우린 가정용 PC로도 극장용 장편 영화의 특수효과를 처리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기술이 우리의 상상력을 살려주는 쪽으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상상력을 할리우드 기성품의 수준으로 떨어뜨릴 것인가?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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