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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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다른 지역서 벌어지는
연결된 하나의 사건 통해
인간의 소통상실 비극 드러내
‘불신’이 위험 원인임을 보여줘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 뒤 사람들은 하늘에 닿을 큰 탑을 쌓기로 한다. 이때까지 그들의 언어는 하나였다. 이를 오만방자하게 본 신은 인간이 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만들어 버렸다. 소통의 단절은 이렇게 시작됐고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공포가 됐다. 미완성으로 남게된 탑의 이름이 바벨이다.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정치적인 주제부터 개인적인 문제까지 단절의 단층 여러 겹을 드러내 <바벨>에 담았다. 감독은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다른 말을 쓰는 4개 지역 사람들을 역설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엮어버린다. 모로코의 타자린 마을, 유세프 형제는 염소를 친다. 아버지가 자칼 따위를 쫓을 때 쓰라며 사냥총을 선물하자 두 소년은 신바람이 난다. 지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진 황무지에서 소년들은 총이 불량품인지 아닌지 실험하기로 한다. 관광버스 한대가 다가오자 아이들은 방아쇠를 당긴다. ‘탕.’ 여행 중인 미국인 수잔(케이트 블란챗)은 고꾸라진다. 그의 어깨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남편 리처드(브래드 피트)는 절규한다. ‘따르릉.’ 미국 로스앤젤리스의 한 가정집에 전화벨이 울린다. 멕시코인 보모 에밀리아(아드리아나 바라지)가 받는데 상대편은 아들, 딸의 안부를 물으며 울먹이는 리차드다. 이들의 귀국 일정이 늦어지자 아멜리아는 하는 수없이 리처드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러 고향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 국경을 넘으려는 아멜리아는 밀입국자로 몰린다. 줄행랑을 놓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막 한복판이다. 아멜리아 일행은 사막을, 일본 도쿄에 사는 청각장애인 치에코(기구치 린코)는 마천루 사이를 헤맨다. 엄마가 자살한 뒤 그는 아버지와도 껄끄럽다. 어느날 경찰이 그의 아버지(야쿠쇼 고지)를 찾아온다. 이슬람 지역을 향한 미국인들의 과도한 적대 의식과 두려움, 멕시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그들의 시선은 소통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되레 주인공들을 위험에 던져넣는다. “멕시코는 위험한 곳이랬어요.” 리처드의 아이들은 아멜리에게 말하지만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건 국경을 지키는 미국 경찰이다. 수잔은 여행 초기에 “오염됐을 것”이라며 물에 손도 대지 않지만 미국 정부가 테러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생명을 지켜준 건 모로코인 수의사다. 그리고 결국 비극의 주인공은 수잔이 아니라 유세프 가족이 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장벽은 상처를 재료 삼아 세워진다. 첫 장면부터 리처드와 수잔은 별로 오붓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얼마 전에 갓난 아기를 땅에 묻었다. 아내는 논쟁이라도 하고 싶어하지만 리처드는 나중에 이야기 하자며 뒤로 미룰 뿐이다. 치에코는 아버지한테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아버지는 딸에게 “왜 싸우려고만 하니”라며 서운해 한다. 사랑 받고 싶어하는 치에코가 수화를 하며 다가가면 남자들은 “재수 없다”고 떠난다.
논리적인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비극은 절망적이다. 주인공들의 의지가 사건에 개입할 여지는 없다. 모두 그저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그래도 희망은 찰라에 빛난다. 늙은 모로코 할머니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수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거대한 바벨탑이 빼곡히 들어찬 도쿄의 밤, 벌거벗은 채 베린다 난간에 기댄 치에코에게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딸이 울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는 것 뿐이다. 그래도 그 순간 그들은 위태로울지라도 함께 있다.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에 후보로 올랐다. 22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연결된 하나의 사건 통해
인간의 소통상실 비극 드러내
‘불신’이 위험 원인임을 보여줘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 뒤 사람들은 하늘에 닿을 큰 탑을 쌓기로 한다. 이때까지 그들의 언어는 하나였다. 이를 오만방자하게 본 신은 인간이 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만들어 버렸다. 소통의 단절은 이렇게 시작됐고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공포가 됐다. 미완성으로 남게된 탑의 이름이 바벨이다.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정치적인 주제부터 개인적인 문제까지 단절의 단층 여러 겹을 드러내 <바벨>에 담았다. 감독은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다른 말을 쓰는 4개 지역 사람들을 역설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엮어버린다. 모로코의 타자린 마을, 유세프 형제는 염소를 친다. 아버지가 자칼 따위를 쫓을 때 쓰라며 사냥총을 선물하자 두 소년은 신바람이 난다. 지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진 황무지에서 소년들은 총이 불량품인지 아닌지 실험하기로 한다. 관광버스 한대가 다가오자 아이들은 방아쇠를 당긴다. ‘탕.’ 여행 중인 미국인 수잔(케이트 블란챗)은 고꾸라진다. 그의 어깨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남편 리처드(브래드 피트)는 절규한다. ‘따르릉.’ 미국 로스앤젤리스의 한 가정집에 전화벨이 울린다. 멕시코인 보모 에밀리아(아드리아나 바라지)가 받는데 상대편은 아들, 딸의 안부를 물으며 울먹이는 리차드다. 이들의 귀국 일정이 늦어지자 아멜리아는 하는 수없이 리처드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러 고향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 국경을 넘으려는 아멜리아는 밀입국자로 몰린다. 줄행랑을 놓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막 한복판이다. 아멜리아 일행은 사막을, 일본 도쿄에 사는 청각장애인 치에코(기구치 린코)는 마천루 사이를 헤맨다. 엄마가 자살한 뒤 그는 아버지와도 껄끄럽다. 어느날 경찰이 그의 아버지(야쿠쇼 고지)를 찾아온다. 이슬람 지역을 향한 미국인들의 과도한 적대 의식과 두려움, 멕시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그들의 시선은 소통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되레 주인공들을 위험에 던져넣는다. “멕시코는 위험한 곳이랬어요.” 리처드의 아이들은 아멜리에게 말하지만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건 국경을 지키는 미국 경찰이다. 수잔은 여행 초기에 “오염됐을 것”이라며 물에 손도 대지 않지만 미국 정부가 테러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생명을 지켜준 건 모로코인 수의사다. 그리고 결국 비극의 주인공은 수잔이 아니라 유세프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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