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낙랑클럽’ ‘모던보이’ 등 제작
충무로가 한국 근대사의 암흑기로 분류되는 1930년대에 사로잡혔다.
올해 한국 영화계에는 때아닌 복고바람이 불면서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를 배경으로 한 대작 영화들이 잇따라 제작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등 '영화계 캐스팅 1순위'로 꼽히는 남성 톱스타 3명을 한꺼번에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화제를 모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조국을 등지고 만주에서 살인청부업자와 열차강도,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세 남자를 다룬 작품이다.
이른바 '만주 웨스턴'을 표방한 이 영화는 아편 향기 감도는 화류계와 마적 소굴, 증기기관차 등 무정부주의적 다국적 문화가 판쳤던 1930년대 만주의 풍경을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해 고스란히 재현해낼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종원 감독의 '낙랑클럽'은 '한국의 마타하리'라 불렸던 1930~40년대의 여간첩 김수임의 비극적 생애를 조명한 영화. 최근 연기파로 변신에 성공한 손예진이 일찌감치 김수임 역으로 캐스팅된 상태다.
'낙랑클럽' 역시 100억 원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될 예정이며 '괴물'의 제작사인 청어람이 제작을 맡았다.
'해피엔드' '사랑니'로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정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모던보이'는 2000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이지형의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역시 1930년대가 배경이다.
엄혹한 일본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친일파인 아버지 덕에 경성 한복판에서 신문물의 혜택을 누리던 한 '모던보이'의 미스터리한 연애담을 그린다.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물 '기담'과 최초의 방송국이 세워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라듸오 데이즈' 역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이처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 잇따라 제작되는 현상을 두고 많은 영화 전문가들은 그 동안 우리 영화계가 애써 외면해왔던 시기에 대해 제작자와 감독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방증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재작년 말 개봉됐던 영화 '청연'의 흥행 참패에서 볼 수 있듯 한민족에게는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를 섣불리 다뤘다가는 미처 예상치도 못했던 비판이나 구설수에 휘말려 개봉도 되기 전에 좌초할 위험성이 늘 상존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그 동안 이 시기를 다뤘던 몇 안 되는 영화들도 독립운동가의 영웅적 투쟁이나 식민지 치하 유명 예술인의 고뇌같이 여론의 비판을 받을 소지가 비교적 적은 소재에만 매달렸왔던 게 사실이다.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지금까지 일제강점기는 충무로가 섣불리 다루기를 꺼려하는 시대적 배경이었으나 우리 사회가 많이 성숙되고 인식도 달라지면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올 들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면서 "현대물에서 추구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상력 발휘가 가능해 영화 소재의 다양성 제고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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