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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가끔은 원작보다 영화로 보는 문학이 낫다

등록 2007-02-21 18:30수정 2007-02-21 19:43

저공비행
검시가 끝났고 주검이 화장되었는데도 인터넷에서는 ‘정다빈 타살 의혹 25가지’라는 게시물이 돌고 있다. 원래 이런 식의 게시물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뒤에도 수명을 유지하기 마련이니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다빈 사건의 진상은 아직 아무도 모르고 검시 결과 역시 완벽한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당히 그럴싸한 어조로 쓴 이 게시물이 오류투성이인 건 분명하다. ‘목욕타월 의혹’만 해도 실제 사용되었던 타월의 사진 한 장만 보여주어도 쉽게 풀린다. 언어는 참 불완전한 의사소통 도구이다. 하나씩 다리를 건너면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독서 경험을 동서추리문고에서 쌓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난 굉장히 진지한 추리소설팬이라서, 노트로 꼼꼼히 알리바이 체크를 하면서 글을 읽었고 탐정이 진상을 공표하기 전에 반드시 예상답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추리과정은 완벽하지 못했으니, 내 짧은 간접지식으로는 소설이 쓰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의 유한계급 사회를 정확히 시각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난 동시대 독자들에게는 당연했던 ‘자물쇠의 방향을 바꾼다’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추리소설 각색물들이 무척이나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각색 과정 중 몇몇 부분이 변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은 크리스티의 소설을 각색한 비비시 드라마를 한 편 보는 게 번역된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그 세계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문학 각색물’을 경멸하는 태도가 있다. 하긴 최근에 나온 비비시가 만든 〈제인 에어〉가 아무리 괜찮아도 샬럿 브론테의 원작을 읽는 것보다는 못하며 그 미니시리즈를 본 것으로 원작에 대해 아는 척하는 건 그보다 더 위험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문학 각색물은 여전히 유익하고 종종 번역서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제인 오스틴 작품들을 영화 각색으로만 본 관객들은 번역을 통해 오스틴의 작품들을 모두 접한 독자들보다 더 오스틴 세계에 대해 많이 알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그들은 오스틴 세계 사람들이 어떤 음악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했고 어떻게 생긴 세계에서 살며 무슨 춤을 추었는지 훨씬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오스틴은 당연히 독자들이 거기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던 것이다. 문학세계에서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무의미하지 않다.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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