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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무심한 가족의 유쾌한 가족애

등록 2007-03-05 17:49수정 2007-03-05 19:20

‘좋지 아니한가’
‘좋지 아니한가’
좋지 아니한가
〈좋지 아니한가〉는 〈말아톤〉을 만든 정윤철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말아톤〉에서 자폐증을 앓는 초원이의 곁을 엄마는 떠나지 않지만 초원이를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한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초원이의 세계를 자신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인정해주는 것뿐이다. 〈좋지 아니한가〉는 〈말아톤〉의 고갱이를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좋지 아니한가〉의 심씨네 가족 4명이 모이는 공간은 밥상머리가 거의 전부다. 거기서도 꾸역꾸역 각자 입에 밥 밀어넣기 바쁘다. 전체를 관통하는 드라마의 줄기는 없다. 이야기는 캐릭터에서 캐릭터로 콩튀듯 경쾌하게 돌아다닌다. 가족은 서로는 모르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바쁘다. 영어교사인 아버지 창수의 수업 시간은 학생들의 취침 시간이다. 어머니 희경(문희경)은 노래방 총각(이기호)에게 홀딱 반했다. 그가 건넨 커피를 음미하며 혼자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켜다가 최첨단 커피제조기만 덤터기 써버린다. 백수 이모 미경(김혜수)은 경리를 하다가 무협작가로 전환했는데 애인을 ‘진짜 작가’한테 뺏겼다. 독백의 주체인 용선(황보라)은 “네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라고 주장하는 희한한 임시 교사(박해일)에게 끌려 미스터리 추적 동아리에 든다. 아들 용철(유아인)은 원조교제하는 초등학교 동창 하은에게 순정과 함께 욕설도 바친다.

드라마가 끌어가는 응집된 긴장감은 미미하다. 웃기는데 웃기는 방식은 낯설다. 캐릭터들이 무심하게 내뱉는 예측을 빗나간 대사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충돌이 키득거리게 한다.

달은 내내 거대하게 과장돼 중요한 구실을 한다. 달과 지구가 그리 오래 같이 있는 까닭은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 때문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비록 보여주는 면밖에 볼 수 없더라도 굳이 들출 것까지 또 뭐 있겠나. 창수는 말한다. “덤덤하게 좀 살자.”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25년 연기하니 이제 조금 알 거 같다”
‘좋지 아니한가’의 아버지역 천호진

천호진
천호진
〈좋지 아니한가〉(감독 정윤철)의 심씨 가족은 서로 소 닭 보듯 한다. 웃음은 이 심드렁함에서 기어 나온다. 아버지 심창수(천호진)는 말과 말, 행동과 행동 사이 잠깐 멈춰 묘한 엇박자를 만든다. 멈춤의 순간, 별 변화 없는 표정 위로 천호진은 약간의 피로와 권태, 쓸쓸함 등을 수정과에 잣 띄우는 양 살짝 얹어낸다.

천호진은 가랑비에 옷 젖듯 스크린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수더분한 아들 등으로 텔레비전에서 10여년을 보내더니 2001년 이후로는 매년 3~4편씩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그 이전에도 조연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중년 배우들은 항상 있었지만 대부분 감초용 코믹연기자였다. 비슷한 이미지로 중복 출연하다가 빨리 생명력을 잃기 일쑤였다. 천호진은 다르다. 극의 안정감을 심어주는 조연에서 극을 끌어가는 무게중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비열한 거리〉 〈주먹이 운다〉 〈말죽거리 잔혹사〉 〈혈의 누〉 〈범죄의 재구성〉…. 맡은 역마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연기생활 25년차,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달 22일 만난 천호진(48)은 〈좋지 아니한가〉를 고른 까닭을 “개그가 코미디로 여겨지는 상황을 깨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개그가 즉각적으로 웃어 없어진다면 코미디는 뒷덜미에 뭔가 남는 거예요. 행간의 의미를 느끼게 해줘야죠.” 심창수는 감정이나 행동이나 진폭이 작은 인물이다. 여학생을 도우려다 원조교제로 몰려도 ‘나 억울하다’고 떠벌리지 않거나 못한다. “오만가지를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려야 해요. ‘어, 우리가 뭐 했지, 끝났나?’ 그럴 때가 맞아요.”

〈좋지 아니한가〉 가운데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도서관에 있어야 할 딸 용선(황보라)을 엄마 희경(문희경)이 노래방에서 발견하고 추격전을 벌이다가 엄마가 넘어지는 장면이다. “그때 펑퍼짐한 엉덩이가 떡 보이잖아요. (‘문희경씨 화내겠네요’라며 웃는다.) 지금 40대 중후반 아줌마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거의 없어요. 그런 배우 찾기가 힘들죠.”

그는 문화의 색깔은 “회색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흑으로도 백으로도 가며 다양해지죠.” 또 “허리”를 강조한다. “제 나이가 허리인데 멜로나 액션 주인공으로 나서면 한국에서 한 작품도 하기 어려울 거예요. 영화 크기도 그래요. 수출을 많이 못하는 상황에서 제작비 어마어마하고 천만명 드는 영화가 나오면 다른 영화들이 죽어요. 〈좋지 아니한가〉 정도면 젊은 좋은 감독들이 시도할 수 있잖아요.”

‘즉석웃음’ 개그가 ‘깊은 웃음’ 코미디로
여겨지는 상황 깨고 싶었다
감정 두터운 멜로 하고싶네요

그는 배우 이력의 반을 영화 밖에서 보냈다. 원래부터 꿈은 영화배우였다. “고등학교 때 〈디어 헌터〉를 보다 ‘영화가 이런 거구나’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일단 1983년 문화방송 공채 탤런트로 합격했다. 1990년까지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 2〉 등 11편에 나왔는데, 이때부터 영화 출연을 멈췄다. “생활이 안됐어요. 텔레비전 쪽엔 기회가 많으니까 쌀은 떨어지지 않겠구나 했죠.”

2001년, 〈2009 로스트메모리즈〉의 후레이센진 역을 맡은 배우가 빠지면서 그 역이 그에게 왔다. 그 뒤 6년 동안 영화 14편, 그는 게걸스러울 만큼 배역을 탐식했다. 그런데 그가 맡은 인물의 색깔은 겹치는 법이 좀처럼 없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아버지도 〈좋지 아니한가〉의 심창수처럼 피로하고 무뚝뚝하지만 좀더 고전적인 정을 보여준다.

배우 천호진은 깐깐하다. 사진을 찍는 것도 진정으로 싫어한다. “거의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싫어해요. 배우는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배우는 작품으로 말해야죠. 그냥 천호진은 ‘길치’에 허점투성이죠.(웃음)” 인터뷰 장소까지 나오는 데도 한참 헤맸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거 하나는 멜로예요. 감정의 두께가 두터운 게 진짜 멜로죠. 40대가 외롭다고들 하는데 그들을 달래줄 데가 없어요.”

글 김소민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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