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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선생님이 친구예요” 이상한 고3교실

등록 2007-03-14 18:24수정 2007-03-15 00:41

다큐 ‘우리학교’
다큐 ‘우리학교’

안녕하세요, 여긴 조선학교입니다
김명준 감독과 장지성 학생의 뒷얘기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감독 김명준)는 일본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고3 학생 22명의 삶을 1년 5개월 동안 담았다. 한 학년에 한 반뿐이라 학생들은 12년을 같은 교실에서 보낸다. 경쟁이라면 하루에 얼마나 오래 완벽하게 한국어로 말했느냐를 놓고 조나 반끼리 겨루는 정도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동무 같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레슬링하다 헤드록에 걸려 얼굴이 벌겋게 된다. 밤이면 아이들은 베개만 들고 기숙사 선생님 방으로 달려간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간식으로 경단을 빚는다.

특별한 기교도 기막힌 사건도 없지만 〈우리 학교〉가 뭉클한 까닭은 카메라가 그들의 체온과 진심이 전해질 만큼 바짝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김 감독이 이 학교에서 산 시간은 본격적인 촬영 기간을 포함해 3년 5개월이다. 지난 13일 김명준(37) 감독과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 한양대 무용과에 다니는 장지성(20)씨가 만나 이 다큐멘터리에 얽힌 기억을 씨줄 날줄로 엮었다.

장지성씨 / 김명준감독
장지성씨 / 김명준감독

학생은 베개들고 선생님 방으로
교사는 학생 위해 경단을 빚는
총련계학교 17개월간 카메라 담아
“죽은 아내 뜻따라 재일동포 삶 전할것”

인연을 맺다 김명준 감독과 이 학교를 연결시켜준 사람은 김 감독의 반려자였던 고 조은령 감독이다. 단편 영화 <스케이트>를 만든 조 감독은 2000년부터 재일동포 사회를 취재해 신뢰를 쌓았다. 김명준 감독은 원래 촬영감독으로 2002년부터 작업에 합류했다. 만난 지 여섯 달 뒤 둘은 결혼했다. 그리고 일곱 달 뒤 조 감독이 사고로 숨졌다. 홋카이도 조선학교 선생님들은 교원실 앞에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매화나무를 심었다. 이름은 ‘은령 감독 나무’인데 공들여 가꾼 덕에 여전히 잘 자란다. 김 감독은 동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해줄 사람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들과 조 감독의 소망이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김 감독은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이렇게 그는 첫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상한 학교다! 그는 감독 일이 처음이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일본어도 못해 암담했다. 이미 몇 차례 방문해 정이 들고 부부가 거쳐 온 과정을 알고 있는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안착했다. 선생님들은 기숙사 방 하나를 정돈하고 문 앞에 ‘김명준’이란 명패를 붙였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볼록 나온 배와 머리를 “귀엽다”며 쓰다듬는 걸 보고 김 감독은 “여긴 다른 학교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말을 붙이면 수줍게 웃으며 도망가 버렸다. 일본어가 섞인 아이들의 대화는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없었다. 표정만 보고 하염없이 찍었다. “카메라를 피하느라 바빴어요. 근데 만날 (명준 감독이) 있으니까…. 나중엔 호칭도 감독이 아니라 오빠로 바뀌더라고요.”(장지성)


정에 감복하다 그가 독감에 걸려 한달 동안 앓아누웠을 때 선생님들과 동포들은 먹거리를 챙겨주고 열을 쟀다. 무엇보다 김 감독이 가장 감동적으로 기억하는 순간은 아이들이 자신을 학급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을 때다. 운동회날, 커다란 깃발에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에 이어 김감독 이름도 수 놓아져 있었다. 물론 서운했던 적도 있다. 여섯 달 동안 찍었던 아이가 영화에서 빼달라고 했을 때다. 그래도 같이 밥 먹고 떠들다보면 이해하게 된다.

장지성씨 / 김명준감독
장지성씨 / 김명준감독
그래도 아이들은 웃는다 다큐멘터리 속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고 평범하다. 유성펜으로 몸에 낙서를 했다 지워지지 않아 울상도 된다. 하루에 한국어를 얼마나 썼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데 카메라에 대고 살짝 “사실 점수를 올려 적었다”고 털어놓는다. 아이들은 북한 방문 여행을 떠나며 함께 가지 못하는 김 감독에게 만경봉호 뱃머리에서 몸짓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엘오브이이(LOVE)”.

신바람 나 떠났던 아이들이 일본에 돌아왔을 때 부두에선 일본 우익 시위대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이 학교 역기부가 전국대회에서 처음 세운 신기록은 공인기록에서 빠졌다. 조선학교는 정식 학교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이들이 일본 대학에 들어가려면 여전히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한다. 한 학생은 인터뷰에서 “조선 사람인 게 싫었던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노래한다. “내 하나뿐인 이름을 불러주는 우리 학교가 기다립니다~.”(노래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아는 것만큼만 담는다 왜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는데 남학생들은 양복을 입는지를 놓고 아이들이 갑론을박 토론을 벌인다. 어른들은 치마저고리 위에 스웨터도 걸치지 말라고 하고 아이들은 춥다며 뾰로통하다. 이를 빼면 다큐멘터리에는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이나 동포 사회 안의 갈등은 거의 없다. “이 아이들은 유치원 때 자기들이 보통 일본 애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요. 저는 한글을 공기처럼 쓰며 살았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섣불리 갈등을 그리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조선학교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오해만 더 키울 수 있어요. 한국에선 조선학교는 총련계라고만 여기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본, 조선, 한국 등 여러 국적의 아이들이 섞여 있는 조선학교를 처음 소개하는 단계에요.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요.” 그는 완전히 이해한 것만 넣는다는 원칙으로 찍고 골랐다. 한 시간짜리 테이프로 500개를 보고 고르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우리 학교> 이후엔…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 상영회가 열린 날, 아이들은 홈비디오를 보듯 추억을 곱씹었다. “전 4번 봤어요. 우리 이야기니까 봐도 봐도 재밌어요.”(장지성) 다큐멘터리는 마무리했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까닭을 서울 생활 1년째 접어든 지성씨의 이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인데 한국 친구들은 저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제가 민족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그 존재 자체를 잘 모르더군요.” 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김 감독은 재일동포들의 문화와 1세대의 삶을 다큐멘터리에 계속 담을 계획이다. 29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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