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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속 ‘콩가루 집안’ 현실보단 좋지 아니한가

등록 2007-03-14 18:35

저공비행
〈미스 리틀 선샤인〉, 〈괴물〉, 〈좋지 아니한가〉의 공통점은? 모두 ‘콩가루 집안’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홍보물이나 관련된 기사에서는 그들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다. 그런데 콩가루 집안이란 무엇인가? 사용한 표현만 따서 검토해 본다면 콩가루처럼 흩어져 있고 뭉치기 어렵고 분열된 가족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표현이 위 영화들에 모두 해당이 되나?

〈미스 리틀 선샤인〉은 어떤가? 그들은 과연 분열된 그룹인가? 천만에. 그들은 세상 많은 사람들처럼 그냥 업고 있는 문제가 많을 뿐이다. 그들은 가끔 서로 싸우기도 하고 형편없는 상황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긴 하지만 결코 덜 뭉쳐 있지는 않다. 그들은 그들이 타고 가는 구닥다리 폴크스바겐 미니버스처럼 계속 간다. 콩가루 집안의 가입 조건은 흩어져야 한다는 것이지 문제가 많다는 건 아니다. 서로를 견디며 같은 목적으로 냉방도 안 되는 미니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다면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가족은 결코 콩가루 집안이 아니다.

〈괴물〉은 어떤가? 그 사람들도 문제는 많다. 아내는 가출했고 경제상태도 그렇게 좋지는 않으며 대학까지 졸업한 남자 동생은 취직을 못해 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괴물이 한강에 나타나기 전에 분열되어 있는가? 그렇다고는 영 말할 수 없다는 거다. 그들은 딸과 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대회에 출전한 가족 구성원에게도 꾸준한 관심을 보인다. 괴물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그들은 꽁꽁 뭉쳐 있었다. 단지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나마 〈좋지 아니한가〉의 가족이 콩가루 집안에 가깝다. 그들은 모두 개인적인 관심사나 고민에 빠져 있고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해 피상적인 관심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뭐? 그래도 그들의 가족은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고 문제도, 싸움도, 성폭력도, 배우자의 부정도 없다.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매일 접하는 가족보다는 훨씬 멀쩡하다. 아니, 대부분 한국 가족보다도 낫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들에게 ‘콩가루 집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어느 순간부터 콩가루 집안의 뜻이 그만큼 확장된 건가? 아니면 우린 소위 ‘정상적인’ 교과서 모델에서 벗어난 형태의 가족은 절대로 분열되고 파괴되어 있다고 미리부터 선언하고 있는 걸까? 세상엔, 그리고 텔레비전과 영화에서는, 겉으로는 멀쩡한 가족 모델에 충실해 보이면서도 속이 썩은 가족들이 얼마든지 존재하는데, 왜 그들에겐 콩가루 집안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는가? ‘콩가루 집안’이라는 표현을 건성으로 쓰면서 우린 벌써 그 의미를 무시하고 왜곡하는 게 아닐까? 왜 우린 진짜 콩가루 집안에 이 명칭을 돌려주지 않는가?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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