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식스티 나인>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이상일 감독의 새 영화가 나왔다. 아오이 유우 주연의 <훌라 걸스>이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아오이 유우가 나온다고 하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휴머니즘을 담아 감동적인 내러티브와 결말을 만들었고, 필자 역시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감동은 어쩐지 ‘영화가 의도한’ 감동이겠다는 의심이 들었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FTA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영화는 FTA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실화를 다루고 있고, 볼거리를 제공하며, 등장인물간의 갈등과 해결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 낼 뿐이다. 그럼에도 난 영화 속에 분명히 FTA의 논리를 정당화 하는 여러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내용을 짚어 보면서 이야기를 더 해보도록 하자.
영화는 실화를 다루고 있다. 배경은 ‘훌라’ 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1965년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의 탄광마을이다. 탄광마을 어느 건물 벽에 ‘하와이언 댄서 모집’이라는 전단지가 붙게 되고 이를 본 마을의 젊은 처녀들이 호기심에 모여든다. 훌라 춤이 무엇인가를 홍보하기 위해 튼 비디오에서는 여자들이 배를 다 드러내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처녀들은 모두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1965년의 탄광마을 처녀들로선 당연한 일이다. 결국 훌라 댄서가 되겠다고 남은 사람은 단짝친구인 ‘키미코’와 ‘사나에’, 그리고 덩치가 우람하고 둔한 ‘사유리’, 마지막으로 이 훌라 댄서 모집을 맡은 기혼 아줌마까지 네 명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와키 시의 탄광마을에서 하와이언 댄서를 모집하는가? 그것은 폐광의 운명을 맞는 위기의 마을을 살리기 위해 탄광회사가 ‘하와이언 센터’라는 문화센터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1965년은 석탄의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마을의 성인들은 모두 2000명이 해고되어야 한다는 사측의 말에 광부 노동조합원들은 거세게 항의한다. 사측은 말을 계속 한다. 비록 탄광은 폐광이 되더라도 150억 엔을 들여서 만드는 하와이언 센터가 이 마을을 살릴 것이라는 설득이다.
그 때 한 노동자가 질문한다.
“몇 명이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사측 관계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노동자는 150억 엔을 들여서 만드는 하와이언 센터에 몇 명이나 취직할 수 있는 거냐며 소리를 지른다. “500명입니다.” 2000명의 광부가 해고되고 500명분의 하와이언 센터 일자리가 생긴다니, 나머지 1500명은 아무런 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폐광의 운명을 맞는 위기의 마을을 살리기 위해 탄광회사가 생각한 ‘하와이언 센터’는 마을의 평균 수입을 올릴지는 몰라도, 빈과 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할 뿐이었다. 탄광회사는 한국 정부와 같다. 탄광회사는 폐광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며, 하와이언 센터가 마을의 수요를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도 세계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자유 무역을 해야 하며, 한국 구성원들에게 큰 피해가 있겠지만 평균적인 GNP가 올라가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변할 필요는 없지. 세상이 변한 것뿐이야.” 라며 술을 들이키는 광부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탄광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부모들이 일자리를 잃자 결국 배를 드러내고 추는 훌라춤에 기겁하여 도망갔던 처녀들은 다시 훌라 댄서가 되겠다고 지원을 한다. 도쿄에서 잘 나가는 댄스 그룹 소속이었던 ‘마도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그들은 훌라 댄서가 되기 위해 맹연습을 한다.
키미코는 훌라 댄서들의 리더가 되었다. 키미코의 아버지는 광부였고, 광부 일을 하던 중 일찍 돌아가셨다. 키미코의 어머니 역시 탄광에서 일을 하며, 노조 여성 대표를 맡았다. 어머니는 하와이언 센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또한 폐광을 맞아 마을이 위기에 처했는데 자신의 딸이 훌라 댄스를 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키미코는 화가 났고, 집을 나와 연습실에서 살며 훌라 댄스를 열심히 연습한다. 댄서들은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이따금씩 자신의 부모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훌라 댄서로 성공하여 가족을 살려야 한다며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는 철저히 노동자의 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책도 없이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노동자들의 어두운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훌라 댄서가 된 처녀들 역시 해고된 부모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와이언 센터가 오픈을 앞두고 문제가 생기는 것에서부터 영화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수입해 온 야자수를 하와이언 센터에 여러 그루를 심었는데, 이와키 시는 워낙 추운 동네라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야자수들이 점점 시들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온을 할 수 있도록 온수를 흘려보낼 파이프들이 미처 도착하지 못해 일어난 일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와이언 센터 관계자들은 마을을 돌며 난로를 구하기 시작한다. 난로를 구하는 것도 엉뚱해 보이지만, 난로를 구하기 전에는 직원 하나가 자신의 옷을 벗어 나무를 감싸주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와이언 센터에 난로를 빌려줄 생각을 하지 않으며 직원들을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던 중, 키미코의 어머니가 우연히 키미코가 춤을 추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몸동작으로 키미코는 자신이 맡은 독무대의 안무를 연습하고,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에 몰두한다.
그런 자신의 딸에게서 어떤 감동을 받은 것일까? 키미코의 어머니는 그 때부터 마을을 돌며 난로를 모으기 시작한다. 탄광 노조원들이 달려와 말리며 “당신은 노조 여성대표 아닙니까?”라고 설득하는데 이에 키미코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어렵게 일해야만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키미코의 어머니의 말에 공감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난로를 내어 놓고, 결국 그 난로로 야자수들은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하와이언 센터는 성황리에 오픈을 한다. 엄청난 손님이 몰려들고, 훌라 댄서들의 춤은 관객들에게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는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분명 이 영화는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FTA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담고 있다.
혹자들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다. 댄서들이 자신들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해고된 부모들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여 훌륭한 무대를 만든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FTA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매몰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러한 반박은 일리가 있다. 댄서들이 춤을 추겠다고 결심한 계기와 마음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는 훌라 댄서들을 향해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보여주어 하와이언 센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고, 댄서들의 눈물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느껴지게 했기 때문에 영화의 모든 내용이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와이언 센터에 입장한 관객들의 환호에서 해고된 1500명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온갖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댄서들은 보이는데, 왜 센터에 입장할 수 있는 표를 끊지 못하는 가난한 광부의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가? 폐광의 위기를 ‘하와이언 센터’로 극복하려는 회사가 노동자들의 생존을 고려했는가? 기후에 맞지도 않는 야자수들을 심어 놓고 인위적으로 온도를 올리려는 생각은 현명한 생각인가? 2000명이 땀 흘려 어렵게 일하던 시대보다, 1500명을 제외한 500명만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시대가 과연 좋은 시대인가? 그렇지 않다. 위기의 상황이 닥쳤을 때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상의하고, 기후에 맞는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2000명이 땀 흘리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훨씬 좋은 시대라고 생각한다. 하와이언 센터의 유치로 많은 사람들이 이와키 시를 찾아왔듯이, 한국도 미국과 맺은 FTA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500명이 기뻐하고 성공하고 나머지 1500명은 눈물 흘리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 나는 기뻐하고 성공하는 사람보다 눈물 흘리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사측 관계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노동자는 150억 엔을 들여서 만드는 하와이언 센터에 몇 명이나 취직할 수 있는 거냐며 소리를 지른다. “500명입니다.” 2000명의 광부가 해고되고 500명분의 하와이언 센터 일자리가 생긴다니, 나머지 1500명은 아무런 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폐광의 운명을 맞는 위기의 마을을 살리기 위해 탄광회사가 생각한 ‘하와이언 센터’는 마을의 평균 수입을 올릴지는 몰라도, 빈과 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할 뿐이었다. 탄광회사는 한국 정부와 같다. 탄광회사는 폐광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며, 하와이언 센터가 마을의 수요를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도 세계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자유 무역을 해야 하며, 한국 구성원들에게 큰 피해가 있겠지만 평균적인 GNP가 올라가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변할 필요는 없지. 세상이 변한 것뿐이야.” 라며 술을 들이키는 광부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탄광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부모들이 일자리를 잃자 결국 배를 드러내고 추는 훌라춤에 기겁하여 도망갔던 처녀들은 다시 훌라 댄서가 되겠다고 지원을 한다. 도쿄에서 잘 나가는 댄스 그룹 소속이었던 ‘마도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그들은 훌라 댄서가 되기 위해 맹연습을 한다.

훌라 댄서들의 리더 키미코. 영화의 주인공이다.

춤을 추는 키미코와 그 장면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런 자신의 딸에게서 어떤 감동을 받은 것일까? 키미코의 어머니는 그 때부터 마을을 돌며 난로를 모으기 시작한다. 탄광 노조원들이 달려와 말리며 “당신은 노조 여성대표 아닙니까?”라고 설득하는데 이에 키미코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어렵게 일해야만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키미코의 어머니의 말에 공감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난로를 내어 놓고, 결국 그 난로로 야자수들은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하와이언 센터는 성황리에 오픈을 한다. 엄청난 손님이 몰려들고, 훌라 댄서들의 춤은 관객들에게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는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분명 이 영화는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FTA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담고 있다.

공연을 마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키미코.
혹자들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다. 댄서들이 자신들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해고된 부모들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여 훌륭한 무대를 만든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FTA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매몰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러한 반박은 일리가 있다. 댄서들이 춤을 추겠다고 결심한 계기와 마음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는 훌라 댄서들을 향해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보여주어 하와이언 센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고, 댄서들의 눈물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느껴지게 했기 때문에 영화의 모든 내용이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와이언 센터에 입장한 관객들의 환호에서 해고된 1500명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온갖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댄서들은 보이는데, 왜 센터에 입장할 수 있는 표를 끊지 못하는 가난한 광부의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가? 폐광의 위기를 ‘하와이언 센터’로 극복하려는 회사가 노동자들의 생존을 고려했는가? 기후에 맞지도 않는 야자수들을 심어 놓고 인위적으로 온도를 올리려는 생각은 현명한 생각인가? 2000명이 땀 흘려 어렵게 일하던 시대보다, 1500명을 제외한 500명만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시대가 과연 좋은 시대인가? 그렇지 않다. 위기의 상황이 닥쳤을 때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상의하고, 기후에 맞는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2000명이 땀 흘리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훨씬 좋은 시대라고 생각한다. 하와이언 센터의 유치로 많은 사람들이 이와키 시를 찾아왔듯이, 한국도 미국과 맺은 FTA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500명이 기뻐하고 성공하고 나머지 1500명은 눈물 흘리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 나는 기뻐하고 성공하는 사람보다 눈물 흘리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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