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14살짜리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하러 떠나는 날, 그는 국경에서 발가벗겨진다. 오스트리아 것은 실오라기 하나 가져갈 수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커스틴 던스트의 뒷모습은 천진하고 짠하다. 자기 자신에게마저 낯선 모습이 돼 그는 타인의 세계에 던져진다.
핑크빛과 록으로 치장한 〈마리 앙투아네트〉(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시대극이 아니라 청춘물이다. 낯선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소녀의 외로운 성장기로, 질서에 개인이 어떻게 부닥치고 깨지는지 관찰하는 데 관심을 둔다.
관습은 우스꽝스럽고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소년 티를 못 벗은 남편 루이는 부인 보길 돌같이 하고 열쇠 만드는 취미에 열중한다. 첫날 밤, 정말 잠만 자고 일어났는데 괴상한 착복식이 앙투아네트를 기다리고 있다. 방안엔 한껏 치장한 귀족부인들이 가득한데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이 그에게 옷을 건네주는 게 법도다. 잠옷을 벗은 그가 새 옷을 받아 입으려 할 때마다 더 지체 높은 귀족이 계속 나타나는 바람에 앙트와네트는 알몸으로 인사를 하며 서 있어야 한다. 아기가 안 생기자 친정어머니는 우아하고 준엄한 문장의 편지를 보낸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를 달아오르게 하라.” ‘석녀’, ‘촌년’이라는 프랑스 황실의 숙덕거림에 둘러싸여 앙트와네트는 케이크와 구두, 50㎝도 넘게 머리장식 세우기로 허기를 채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단점은 영화가 자신을 너무 쉽게 배신하는 데 있다. 중반까지 앙투아네트의 외로움과 혼란에 초점을 맞춰가더니 이후엔 앙투아네트의 심리 속으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핑크빛 이미지가 주제를 잡아먹어버린다. 규제하는 제도의 에너지와 일탈하고픈 청춘의 힘 사이 충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말아버린다. 뮤직비디오처럼 감각적인 화면으로 앙투아네트의 30대까지 보여주는 데 급급할 뿐이다. 그래서 군중이 쳐들어오는 날 밤, “불안해하지 말라”고 시녀를 다독이고 위험하더라도 남편 곁에 남겠다는 그의 성숙한 모습은 갑작스럽다. 앙투아네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주인공과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국민이 굶주리는 사이 사치를 일삼았던 앙투아네트의 변론기가 돼버렸다. 이 탓에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프랑스 관객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그해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17일 개봉.
김소민 기자, 사진 소니 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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