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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검은 화려함

등록 2007-05-24 18:10수정 2007-05-24 21:36

‘황진이’  송혜교
‘황진이’ 송혜교
‘황진이’ 눈으로 즐기기
기생=붉은색, 검정=상복 공식 깨고
옷·공간·소품·스토리까지 현대적 각색
세상 질서 아랑곳않는 ‘황진이 세계’

평소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 사극 영화의 재미로 영화 속 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볼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황진이〉(감독 장윤현)는 옷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한복은 시대의 굴레를 벗었다. “사내나 계집이나 거리에 돋아난 풀과 뭐가 다르겠냐”고 계급 사회를 쏘아붙이는 여성 황진이에게만 복무한다.
‘황진이’
‘황진이’
옷과 공간은 시대를 거스르는 황진이의 시각적 상징이다.

북한 작가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가 원작인데 줄거리 뼈대도 익숙한 황진이 이야기와는 다르다. 황진이의 연인은 화담 서경덕이 아니라 혁명을 꿈꾸는 노비 ‘놈이’다. 그렇게 영화 〈황진이〉는 기존의 황진이를 깨고 그 파격은 시각적으로도 오롯하다.

한복을 새롭게 해석해 시각적 쾌감을 줬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를 꼽을 수 있다. 이후 영화 〈음란서생〉, 드라마 〈황진이〉 등이 한복을 얽맨 색감과 형태의 금기를 깨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캔들〉에 이어 〈황진이〉의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정구호씨는 “황진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데 기존 사극과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했다”며 “〈스캔들〉은 고증에 무게를 뒀다면 〈황진이〉는 어느 사극과도 다른 현대적인 느낌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장윤현 감독은 “자유로운 상업도시인 송도라는 공간의 민속적인 색깔을 줄이고 도회적인 느낌을 살리려 했다”며 “서구적인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한복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검은색의 반란 “붉은색이 이제까지 기생의 상징처럼 여겨졌어요. 이 힘이 센 색깔을 빼고도 화려하고 여성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이었죠. 검정색 한복 하면 상복만 떠올리는 고정관념도 깨고 싶었어요. 현대에 검은색은 어떤 파티에도 어울리는 화려하고 세련된 빛깔이죠. 이를 한복에서 풀 수 있지 않을까? 황진이는 조선 시대를 살아가는 신여성이에요. 그는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지 않을 듯했어요.”(정구호) 붉은색은 황진이의 옷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에서 솎아내졌다. “관군들의 창끝에 달린 붉은 술도 검은색으로 염색했어요.”(미술감독 김진철) 화담을 유혹하러 떠나는 길에 황진이는 검은 베일을 늘어뜨린다. 고을 수령 김희열과 담판을 지으러 가며 그는 위아래 모두 검은색으로 휘감았다.

색깔을 제한했지만 화려함이 줄지 않은 까닭은 분방한 소재 때문이다. 검정 치마·저고리에는 자잘한 꽃이 어른거리는데 인조견직물 샤 위에 검은빛 레이스가 넘실거리는 모습이다. “흔히 쓰는 공단 대신 서양 로코코 시대의 특징을 담은 옷감들을 응용했어요.”(정구호)

황진이(송혜교)의 한복은 하늘로 솟아 쭉 떨어지는 에이치(H)형이다. “16세기와는 관련 없는 일제 강점 직전 조선 말기 기생들의 사진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저고리는 짧고 소매는 좁죠. 치마를 돌려 잡으면 몸매에 맞는 일자에 가깝게 떨어져요.”(정구호)

보통 30㎝ 남짓한 노리개는 1m 이상 길게 빼 일자형 옷과 어우러지게 했다. 머리꽂이도 산호·호박 등 흔히 쓰는 소재가 아니라 소뿔을 검게 칠해 만들었다. “황진이는 선이 굵은 여성이에요. 알록달록한 느낌은 어울리지 않죠.” 가채(덧얹는 머리)는 곡선의 향연이다. 장면마다 다른 머리를 올렸다. 때때로 깃털을 꽂고 천을 늘어뜨렸다. “자유롭게 날아오르고픈 마음을 표현해 본 거예요. 문헌에 간략하게 소개된 내용을 단초 삼아 상상력을 보탠 거죠. 조선 전기에는 가채가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후기의 것보다 더 과감한 형태가 많았다고 해요.”(한필남 헤어메이크업 팀장) 5㎏짜리 가채가 구름처럼 부풀어 오를 때 황진이는 권력자들을 눈 아래 두고 보는 중이다. 그렇게 한복 25~30벌, 50여점의 액세서리는 황진이라는 인물을 요약한다.


공간, 인물의 확장 제작진은 송도를 자유분방한 도시로 꾸미려 했다. 특히 황진이가 남장을 하고 처음 엿보는 청교방에는 레이스가 흩날리며 머리 위로 천들이 너울거린다.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온 황진이의 감정을 담은 공간이에요.”(김진철 미술팀장)

황진이가 기생이 돼 머무는 집은 ‘우물 정(井)’자의 폐쇄적인 형태다. “외부 세계와 분리돼 황진이가 구축한 세계”(정구호)다. 창문에는 창호지가 없다. 대신 레이스 등 천을 달았다. 겹겹이 막혀 있지만 또 뚫린 공간인 셈이다. 집도 고집스럽게 검은빛이다. 벽지뿐 아니라 거문고 등 소품도 모두 검은색 칠을 했다. 미술팀은 병풍을 치웠다. 대신 화려한 가구인 개성장의 장식을 다 떼어내 검은 칠을 한 뒤 백동 장식을 새로 만들어 붙여 배경에 놓았다. 황진이가 지닌 부의 상징이자 깔끔하면서 화려한 이미지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 네모난 공간 안에는 연못이 있다. “황진이가 물 위를 걷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김진철) 그렇게 황진이는 세상의 질서 따위는 아랑곳 않고 붕 떠올라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황진이’  송혜교
‘황진이’ 송혜교


‘황진이’  송혜교
‘황진이’ 송혜교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시네마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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