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 (오른쪽) 소다 마모루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당신의 청춘은 어떤 빛깔인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길목, 첫사랑은 쌉쌀하고 어스름한 미래는 불안과 기대로 가슴 뛰게 한다. 그 파릇한 순간을 섬세하게 세공한 일본 애니메이션 두 편이 잇따라 개봉한다. 11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이기도 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6월 21일 개봉)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6월 14일 개봉)다. 두 감독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등을 잇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비슷한 소재를 담은 두 작품의 분위기는 대조적이다. <초속 5㎝>가 일상을 곱씹는 정적인 시라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모험을 그리는 동적인 에스에프다. <초속 5㎝>가 그 시절의 추억을 애잔하게 읊조린다면 후자는 ‘순간을 맘껏 누리라’며 명랑하게 외친다.
감독의 이력도 사뭇 다르다. 일문학을 전공하고 그림을 따로 배운 적 없는 신카이 마코토(35)는 5년 동안 다니던 게임회사에 사표를 낸 뒤 홀로 단편 <별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신카이 마코토가 혜성처럼 등장했다면 호소다 마모루(40)는 애니메이션 제작 말단 스태프부터 한발짝씩 전진한 감독이다. 14년 동안 도에이애니메이션에서 일하며 극장판 <세일러문> 등에 참여했고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쳐> 등을 연출했다. 프리랜서가 된 뒤 지난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일본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지난 24일과 25일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주목하는 두 감독을 만났다.
쉿, 청춘이 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초속 5㎝’ 〈초속 5㎝〉의 첫 장면에선 숨죽여야 한다. 자동차 유리창 위로 벚꽃이 소복소복 쌓인다. 햇무리는 초등학교 졸업 뒤 멀리 헤어진 다카키와 아카리의 추억에 아롱졌다. 잠깐 멈춤. 장면은 순간을 지그시 응시한다. 눈이 쏟아지는 날 다카키는 아카리를 찾아가 첫 키스를 나누며 읊조린다. “너무 큰 인생이, 시간이 우리 앞에 남아 있어 두려워.” 시간과 거리를 이길 수 없는 어린 연인은 누구의 탓이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놓았다. 어른이 된 뒤 다카키는 벚꽃이 쏟아지는 길에서 낯익은 여성을 스쳐지나가며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이별이나 망각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시간을 이길 수 없더라도 추억은 언제나 빛으로 남을 거예요.”(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실제 장소에서 따왔다. 마코토 감독(왼쪽 사진)은 한달 반 동안 사진 2만장을 찍었다. 〈초속 5㎝〉 1천컷 가운데 400개는 사진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실적인 그림은 모두 손으로 그린 것이다. 큰 장면은 그가 직접 그린다. 스태프 13명이 거친 그림을 다듬는다. 〈초속 5㎝〉에서 다카키는 어느 순간 아카리에게 휴대폰 문자 보내길 멈춘다. 마코토 감독의 실질적 데뷔작 〈별의 목소리〉에서도 휴대폰이 주인공 사이의 매개체였다. 우주로 파견 나간 여자 주인공이 멀어질수록 메시지가 연인에게 닿는 시간은 길어진다.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가 항상 제 주제예요. 휴대폰은 참 흥미로워요. 생활 속에 스며 있으면서 관계를 보여줘요.” 그는 “작품을 만들며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둘 때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영상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목 끝까지 차 있어서 어쩔 줄 몰랐죠.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별의 목소리〉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을 권하진 않아요.(웃음)”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은 거의 보지 않고 8비트 컴퓨터를 벗삼아 그림을 그렸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자신이 완벽하게 전 과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소규모 제작진을 유지할 계획이다.
으랏차차, 청춘!
호소다 마모루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17살 고등학생 마코토는 선머슴 같다. 학교까지 자전거로 질주할 때 짧은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날린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 치아키, 고스케와 야구를 한다. 그들의 머리 위엔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다. 어느날 마코토는 시간을 건너 뛸 수 있는 장치를 발견한다. 치아키가 사귀자고 어렵사리 말하자 마코토는 어색해 그만 시간을 돌려버린다. 시간을 건너 뛸 때마다 꼬이는 일들 때문에 마코토는 달리고 또 달린다. 마코토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때쯤 그는 이별을 견딜만큼 부쩍 자랐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쓰츠이 야스다카가 1965년에 쓴 소설로 일본에서 이미 영화, 드라마, 만화로 장르를 바꿔가며 큰 인기를 누렸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원작 속 주인공의 조카를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원작의 주인공은 어른스럽고 절도 있어요. 요즘 일본 10대는 목표도 없고 활달하지도 않아요.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고 방황하죠. 머리 속 생각이 지나치게 너무 많아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끙끙거려요. 그런 아이들에게 생명력 넘치는 씩씩한 여학생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스태프들이 모였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미술감독 야마모토 니조, <신세기 에반게리온> 캐릭터를 디자인한 사다모토 요시유키 등이 합류했다. 마코토의 학교나 마을은 안개에 안긴 듯 포근하다.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설계도를 좋아하다 애니메이션의 밑그림에 빠지게 된 그는 “중학교 때부터 동경하던 사람과 일하게 됐다”며 웃었다. “사람의 바보같고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을 담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게 사람의 진짜 매력이고 아름다운 점이니까요. 마코토도 잘난 사람이 아니에요. 인생의 단면을 그리는 게 영화라면 저는 사람의 좋은 점을 잘라 취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도록 돕는 게 감독의 구실이라고 생각해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신카이 마코토 사진 서지형 <씨네21> 기자 호소다 마모루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
신카이 마코토 감독 ‘초속 5㎝’ 〈초속 5㎝〉의 첫 장면에선 숨죽여야 한다. 자동차 유리창 위로 벚꽃이 소복소복 쌓인다. 햇무리는 초등학교 졸업 뒤 멀리 헤어진 다카키와 아카리의 추억에 아롱졌다. 잠깐 멈춤. 장면은 순간을 지그시 응시한다. 눈이 쏟아지는 날 다카키는 아카리를 찾아가 첫 키스를 나누며 읊조린다. “너무 큰 인생이, 시간이 우리 앞에 남아 있어 두려워.” 시간과 거리를 이길 수 없는 어린 연인은 누구의 탓이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놓았다. 어른이 된 뒤 다카키는 벚꽃이 쏟아지는 길에서 낯익은 여성을 스쳐지나가며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이별이나 망각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시간을 이길 수 없더라도 추억은 언제나 빛으로 남을 거예요.”(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실제 장소에서 따왔다. 마코토 감독(왼쪽 사진)은 한달 반 동안 사진 2만장을 찍었다. 〈초속 5㎝〉 1천컷 가운데 400개는 사진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실적인 그림은 모두 손으로 그린 것이다. 큰 장면은 그가 직접 그린다. 스태프 13명이 거친 그림을 다듬는다. 〈초속 5㎝〉에서 다카키는 어느 순간 아카리에게 휴대폰 문자 보내길 멈춘다. 마코토 감독의 실질적 데뷔작 〈별의 목소리〉에서도 휴대폰이 주인공 사이의 매개체였다. 우주로 파견 나간 여자 주인공이 멀어질수록 메시지가 연인에게 닿는 시간은 길어진다.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가 항상 제 주제예요. 휴대폰은 참 흥미로워요. 생활 속에 스며 있으면서 관계를 보여줘요.” 그는 “작품을 만들며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둘 때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영상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목 끝까지 차 있어서 어쩔 줄 몰랐죠.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별의 목소리〉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을 권하진 않아요.(웃음)”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은 거의 보지 않고 8비트 컴퓨터를 벗삼아 그림을 그렸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자신이 완벽하게 전 과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소규모 제작진을 유지할 계획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호소다 마모루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17살 고등학생 마코토는 선머슴 같다. 학교까지 자전거로 질주할 때 짧은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날린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 치아키, 고스케와 야구를 한다. 그들의 머리 위엔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다. 어느날 마코토는 시간을 건너 뛸 수 있는 장치를 발견한다. 치아키가 사귀자고 어렵사리 말하자 마코토는 어색해 그만 시간을 돌려버린다. 시간을 건너 뛸 때마다 꼬이는 일들 때문에 마코토는 달리고 또 달린다. 마코토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때쯤 그는 이별을 견딜만큼 부쩍 자랐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쓰츠이 야스다카가 1965년에 쓴 소설로 일본에서 이미 영화, 드라마, 만화로 장르를 바꿔가며 큰 인기를 누렸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원작 속 주인공의 조카를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원작의 주인공은 어른스럽고 절도 있어요. 요즘 일본 10대는 목표도 없고 활달하지도 않아요.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고 방황하죠. 머리 속 생각이 지나치게 너무 많아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끙끙거려요. 그런 아이들에게 생명력 넘치는 씩씩한 여학생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스태프들이 모였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미술감독 야마모토 니조, <신세기 에반게리온> 캐릭터를 디자인한 사다모토 요시유키 등이 합류했다. 마코토의 학교나 마을은 안개에 안긴 듯 포근하다.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설계도를 좋아하다 애니메이션의 밑그림에 빠지게 된 그는 “중학교 때부터 동경하던 사람과 일하게 됐다”며 웃었다. “사람의 바보같고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을 담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게 사람의 진짜 매력이고 아름다운 점이니까요. 마코토도 잘난 사람이 아니에요. 인생의 단면을 그리는 게 영화라면 저는 사람의 좋은 점을 잘라 취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도록 돕는 게 감독의 구실이라고 생각해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신카이 마코토 사진 서지형 <씨네21> 기자 호소다 마모루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