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한국영상자료원장
“영화는 곧 우리의 삶과 문화”
‘오래된 필름’ 보존·복원 협력
‘오래된 필름’ 보존·복원 협력
제60회 칸 국제영화제는 전도연의 여우주연상이란 기쁜 소식과 함께, 의미깊은 영화계 소식 또하나를 남겼다. 오래된 주요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하자는 뜻으로 세계영화재단(WCF)이 25일 비영리기구로 칸에서 공식 출범했다. 출범식에 참석했던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세계 영화계의 영화 보존·복원 노력과 의미를 소개한다.
13년 만에 다시 찾은 칸영화제는 레드 카펫을 둘러싼 야단법석이나 하얀 요트들이 점점이 떠있는 바다나 뜨거운 햇볕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1994년에 개막작 <허드서커 대리인>을 들고 왔던 코엔 형제나 그 해에 <펄프 픽션>으로 그랑프리를 가져갔던 쿠엔틴 타란티노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13년전엔 30대의 신예였던 그들이 이제는 칸영화제의 페르소나가 되었고 중견, 심지어 거장의 풍모마저 풍기고 있었다. 로버트 알트만이 사라진 지금 미국 대표선수 라인업에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국영화의 자리다. 당시는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없었고, 아니 한국영화가 있었던 적이 없었고, 영화진흥위원회 부스도 없었고, 기자를 출장 보내는 신문사도 없었다. 영화기자로서 나는 자비출장을 갔었다. 그때 칸영화제에 오는 한국인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영화순례여행을 오는 영화광 내지 영화학도들, 그리고 하명중 이광모 감독 같은 ‘예술영화 수입업자’들이었다. 하지만 올해, 한국영화가 두편이나 경쟁부문에 나간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영진위가 주최한 ‘한국영화의 밤’에는 내외국인 5백여명이 몰려 350명분의 음식이 동났고, 마켓에는 구역마다 한국의 영화배급사 부스가 눈에 띄었다.
나는 올해 두 가지 용건으로 칸영화제에 갔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처음으로 디지털 복원한 신상옥 감독의 1962년작 <열녀문>이 ‘클래식’부문에 초청, 소개된 것이 첫 번째, 그리고 영화 보존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영화재단’(World Cinema Foundation)의 출범을 보러가는 것이 두 번째 용건이었다. 세계영화재단의 출범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은 22일 오후에 열렸는데 이 작업을 주도하는 마틴 스코세이지가 기다란 테이블의 중앙에 앉고 좌우양쪽으로 월터 살레스(브라질), 왕자웨이(홍콩), 파티 아킨(독일), 그리고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의 스티븐 프리어즈까지 12명의 감독이 앉아있는 모습 자체가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는 한 폭의 장관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영화보존운동가이자 필름수집가인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미 1990년 스필버그, 루카스, 코폴라, 이스트우드 등과 함께 필름재단을 만들어 이끌어왔고 이제 그 작업을 세계적인 규모로 확장하는 참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앞으로 매년 10편씩 영화를 선정해 복원할 계획이며 이 영화들을 DVD든 영화관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든 많이 보급하는 것이 세계영화재단의 목표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왕자웨이 감독의 이야기는 특히 우리 입장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2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한 창고에서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중국 필름 수백 편을 찾아냈고 이것을 홍콩에 가져와 복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 ‘고아필름’들은 2차 세계대전 전에 혈혈단신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유일한 오락거리였을 것으로 그는 추측했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영국의 BFI(British Film Institute)도 필름보관고를 유지하는데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문화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충분히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칸에서 세계영화재단의 복원작품 1차분 세편이 소개됐는데, 스코세이지 감독이 복원을 주도한 1981년작 모로코영화 <트랜시스>가 시작되기 전 아르마니, 카르티에 등 후원업체들의 이름이 큼직하게 화면에 떴다. 스코세이지 감독을 무대로 불러낸 뒤 사회자는 객석을 보면서 “이 중에 돈 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했다. 감독들의 명망성이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세계영화재단의 미래가 걸려있다. 결국 문제는 ‘예산’이다.
조선희/한국영상자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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