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칸’ 수상 흥분한 언론, 신뢰는 ‘탈락’

등록 2007-05-31 21:29

저공비행
전도연의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관련 기사들을 끄집어내어 영화제를 올림픽으로 착각하는 언론의 순진무구한 태도와 국가주의적 태도, 어이없는 설레발을 놀려대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관대해지기로 하자. 전도연은 칸에서 결국 상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고 그건 정말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다. 아무리 칸에서 상을 주는 것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전도연이라는 개인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 사람이 우리들 중 한 명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린 그렇게까지 여유롭지 않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충분히 여유 있어도 좋은 미국의 〈타임〉이 칸 영화제 결산 특집으로 내세운 제목이 ‘칸에서 거의 냉대당한 미국’(The U.S. Mostly Snubbed at Cannes)이었다는 걸 잊지 마시길. 아무리 우리가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고 싶어도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정말 그러고 싶은가?

그러나 아무리 관대하고 싶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에서 ‘우리들 중’ 누군가가 상을 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흥분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때문에 조금 수다스러워져서 불필요하게 말이 많아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도 언론에게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읽기 전에 모르고 있을) 사실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기초적인 의무가 있고 또 그러는 동안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는 게 있다.

전도연과 〈밀양〉 관련 기사들이 작정하고 사실을 왜곡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짜내는 태도나 제목을 뽑아내는 방식은 거의 만만치 않게 우스웠다.

가장 말이 많았던 기사 제목인 ‘〈밀양〉, 평점 4점 만점에 4점 받아’를 보자.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대중문화비평지 〈포지티브〉의 미셸 클레망이 만점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심사위원들의 평점도 아니고 리뷰어들의 의견 종합이 아닌, 그냥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독자들은 제목을 읽고 들어가 기사를 읽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사실 칸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꼭 한국 언론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세계 모든 신문 잡지들의 기사들을 읽을 수 있고, 〈밀양〉의 수상 가능성에만 집착하는 한국 언론보다 더 객관적이고 폭넓은 정보들을 제공한다. 게다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밀양〉 관련 한국 기사 절반 정도가 그 기사들의 요약이다. 요약 번역 이외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 결과 독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되고 그들이 무슨 정보를 보내오건 무조건 회의하기 시작한다. 그게 습관화되면 건성 기사 작성만큼이나 고치기 힘든 기계적인 냉소와 무조건적 불신의 버릇이 생긴다. 이쯤 되면 누군가를 지목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된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