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모에〉
다마모에
〈다마모에〉(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첫 장면은 벚꽃이 흐드러진 호수다. 거기서 고교생 도시코와 합창반 친구 등 4명은 보트를 저으며 신바람 나게 노래하곤 했다. 세월이 지나도 호수는 변한 게 별로 없는데 도시코는 59살이 됐다. 그해 갑작스레 남편이 죽은 것도 모자라 그가 10년 동안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아이들은 유산에 눈독을 들인다.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도시코는 세월과 세상에 속아버린 듯하다.
〈다마모에〉는 도시코의 좌충우돌 홀로 서기를 따라간다. 아들을 피해 방 하나가 캡슐만한 호텔에 들어간 도시코는 어떤 할머니의 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줬다가 “남의 고통을 공짜로 듣는 법이 어딨냐”는 핀잔에 순순히 돈을 내준다. 남편의 동우회 사람과 연애도 해보지만 “자신감 없어 보이는 주부라 좋다”는 상대 말에 정이 뚝 떨어진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도시코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읊조린다. “세상….”
쓸쓸한 이야기인데 〈다마모에〉는 경쾌하다. 도시코에겐 여전히 손을 잡아줄 친구들이 있다. 이제는 밥값을 두 번씩 낼 정도로 기억력은 쇠했지만, 고등학생 때 성깔은 간직한 사람들이다. 한 친구는 여전히 연예인 동우회의 열성적인 회원이고 그 열의 탓에 다른 친구한테 변함없이 놀림을 당한다. 도시코는 ‘캡슐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노숙자의 등도 토닥여준다. 영화의 발랄한 기운은 “사회의 뒷면”같이 취급당하는 그들의 느슨한 연대에 기댄다. 현재의 불행에 주저앉아 궁상떨지 않는, 여린 듯 강한 도시코의 캐릭터도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는 변화하고 싶은 욕망을 솔직하게 따를 만큼 용감하며, 영사기사가 돼 영화를 마음껏 보는 꿈도 아직 버리지 않았다. 다만 도시코의 방황기가 중언부언 늘어지는 듯한 게 흠이라면 흠이다.
마지막 장면 즈음, 친구 넷은 다시 보트를 탄다. 젊은이 둘이 탄 배와 충돌하는 바람에 욕을 먹자 이 초로의 일본판 〈섹스 앤 더 시티〉 멤버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젊은이들과 대거리한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다마모에’는 ‘육체는 점점 쇠약해져 가지만 영혼은 갈수록 불타오른다’는 뜻으로 작가가 만든 말이다. 14일 개봉.
김소민 기자, 사진 씨네콰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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