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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리가 숨은 주인공이다

등록 2007-06-10 17:17수정 2007-06-11 16:01

무술 연습을 하고 있는 무술연기자들. 
<한겨레> 자료사진
무술 연습을 하고 있는 무술연기자들. <한겨레> 자료사진
무술·재연·단역 배우 활동 활발
주연 떠받치고 극완성도에 기여
열악한 처우 개선·재평가 시급

드라마는 공동작업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 뒤에는 그들을 뒷받침해주는 배우들이 있다. 무술연기자(스턴트맨), 리허설 배우, 보조출연자(엑스트라) 그리고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다. 스타 위주의 브라운관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배우 뒤의 배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주몽〉 〈연개소문〉 등 사극이 인기를 끌면서 무술연기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현재 활동하는 무술연기자는 450여명. 그들은 주인공을 대신해 매를 맞거나 현란한 무술 솜씨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무술연기를 지도하거나 조언도 한다.

‘대조영’ 촬영중인 단역배우들.
‘대조영’ 촬영중인 단역배우들.
그러나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무술연기자노조 김범석 지부장은 “현재 활동하는 무술연기자 중 3분의 1 정도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이 부상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촬영하다가 다쳐도 일감이 떨어질까봐 쉬쉬하고 외주제작사나 방송사와 주먹구구식으로 보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 지부장은 “방송 분량에 따라 30만~6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문제는 경력이 오래되고 아무리 위험한 장면을 찍더라도 모두 똑같이 이 정도 선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허설 배우도 생겨났다. 배우 박신양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리허설 배우를 도입한 것이다. 지난 5월에 열렸던 〈쩐의 전쟁〉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박신양은 “촬영 장면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 위해 리허설 배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리허설 배우는 조명을 잡고 상대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을 때 주인공을 대신해 리허설을 한다. 주인공과 체격 조건이 비슷해 롱테이크 장면에서는 대역으로도 출연한다. 지금은 국내에서 단 1명뿐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여러 배우들이 리허설 배우를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이 고용하기 때문에 연기의 자유가 없고 화면에서는 철저히 가려진 배우들이다.

재연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는 가장 오랜 ‘배우 뒤의 배우들’이다. 얼마 전에 여재구씨가 목숨을 끊은 일로 재연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처지와 상황에 새삼 관심이 쏠렸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솔로몬의 선택〉 〈트릭〉 〈형사〉 등이 이들의 연기 무대다. ‘여인극장’ ‘가교’ 등의 극단에서 활동한 연극배우 출신의 변신호씨, 드라마 〈스타트〉 〈정 때문에〉, 영화 〈강력3반〉 〈잠복근무〉 등에 출연했던 박재현씨 등 연기파 배우들이 많지만 일단 재연 드라마에 출연하면 ‘재연배우’라는 억울한 문패를 지고 가야 한다.

출연 시간과 비중에 비하면 처우도 매우 나쁘다. 방송사는 출연료를 산정할 때 성인 배우 등급을 6등급에서 18등급으로 나눠 기준으로 삼는다. 재연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 중 주인공을 도맡는 한 배우도 7등급으로, 회당 35만~45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에이전시를 통해 출연했을 경우에는 수수료도 줘야 한다. 25~30%를 떼는 게 관례다.

재연 드라마에 주로 출연하는 한 배우는 “재연 드라마의 제작비가 일반 드라마보다 너무 적어서 악순환이 거듭된다. 스타 진행자나 패널들의 출연료에서 조금만 제작비에 투입해도 훨씬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스타 위주 제작시스템 속에서 몸으로 먹고사는 나머지 배우들은 큰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학과 전규찬 교수는 “소수의 에이급 스타만 최고로 대접받고 기회를 갖는 극단적인 스타 사회”라며 “스타 이외의 배우들을 잉여적 존재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 없이는 주인공이 빛나지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없다. 무명이라는 이유로 소외받는 그들의 가치가 재평가받아야 할 때다.


허윤희 남지은 기자 yhher@hani.co.kr


무술연기자계 맏언니 조주현씨
‘공중부양’하던 다모, 실은 저예요

무술연기자계 맏언니 조주현씨
무술연기자계 맏언니 조주현씨
15층 건물에서 떨어지고, 몸에 불을 붙이고, 공중을 날아다니고…. ‘스턴트우먼’ 조주현(37)씨는 이런 힘들고 위험한 장면만 찍는다. 요즘에는 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 〈키드갱〉 등에서 여주인공을 대신해 무술 연기를 한다. 우리나라에 단 3명 있는 스턴트우먼 중 맏언니뻘인 그는 경력 14년차다. 학창 시절 기계체조를 하고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한 그는 〈다모〉 〈작업의 정석〉 〈투캅스 3〉 등 수백 편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얼굴은 알려져 있지 않다. “완성된 작품에선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메이킹 필름에는 자주 등장해요.(웃음)”

14년 동안 스턴트로 살아온 그의 온몸에는 멍과 수술 흔적이 남아 있다. 〈다모〉를 찍을 때 높은 곳에서 내려오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다.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또 있다. “예전에 맥주잔으로 머리를 맞는 장면을 찍었는데 상대 배우가 일반인 보조출연자라 때리는 요령을 잘 몰랐어요. 두번째 촬영 때 급기야 머리에서 피가 났는데 이 악물고 참고 연기를 했죠. 그런 뒤에 다음 촬영을 하러 갔어요.” 아무리 심한 부상을 입어도 저절로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그이기에 이런 일은 참고 견딘다. 주인공들은 다르다. “여주인공들은 살짝 팔이 긁혀도 촬영이 중단되고 난리가 나죠. 너무 몸을 사릴 때가 있어요.”

그래도 일거리가 없던 때에 비하면 한 달에 보름 정도 일을 하고, 50분 드라마에 출연하면 50만원 정도 받는 요즘은 행복하다. “배우 임금 등급으로 따지면 중간 정도인 10등급이에요. 일 시작할 때부터 계속 그랬어요. 등급이 올라가면 써주지 않아요.” 2~3일만 쉬어도 몸이 쑤셔 일거리를 찾게 된다는 그의 걱정은 이거다. “내년에는 아기를 가질 생각인데 애 낳고 나면 누가 나를 써줄지 모르겠어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허윤희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재연배우계 ‘스타’ 이중성씨
사인회에 팬미팅까지 ‘바쁘다 바빠’

재연배우계 ‘스타’ 이중성씨
재연배우계 ‘스타’ 이중성씨
이름보다 얼굴이 낯익은 배우 이중성(32)은 재연 프로그램이 낳은 스타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솔로몬의 선택〉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팬카페 회원 수만 2만여명에, 개인 블로그 방문자도 하루 수백명이다. 사인회에 팬미팅까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골수 팬도 꽤 있다.

그가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주목받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깬 것은 오랜 경력만큼 쌓은 연기력 덕분이다. “재연 프로그램은 시간에 쫓겨 연기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번이라도 촬영해서 좋은 컷을 내보내는 것이 옳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요. 대부분 첫 번째 슛이 마지막 슛이죠.(웃음)”

배우가 되기 전 이중성은 안무가로 명성이 높았다. 아무로 나미에, 재닛 잭슨을 가르친 안무가에게 춤을 배우고 뮤지컬 팀의 안무 지도를 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도 한 달에 400만원은 족히 벌었다는 그가 재연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출연한 일은 배우 전환의 기회인 동시에 걸림돌이 됐다. 재연 드라마에 나왔다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촬영 전날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차라리 연기가 안 돼서 떨어졌다고 말하면 이렇게 서운하진 않을 것 같아요.(웃음)”

그는 브라운관 뒤편에서 받는 설움을 본격적인 연기로 푼다. 〈배드보이즈〉 〈방황하는 별들〉 〈밴디트〉 등 뮤지컬에 꾸준히 출연했다. 8월쯤에는 〈뉴 보잉보잉〉으로 연극무대에도 선다. 그가 이처럼 꾸준히 무대를 찾는 까닭은 “편견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극드라마로 가지 못해 발버둥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연기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연기하니 언론에서도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 문계순 초대위원장
“인간적 대우 필요합니다”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 문계순 초대위원장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 문계순 초대위원장
 
“12시간 꼬박 일하고 3만7천원 벌어요.”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 문계순(52) 초대위원장의 하소연이다. 식당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온 그는 새로운 일을 찾다가 지난해 6월 생활정보지에 실린 ‘엑스트라 월 200만원 보장’이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광고와 달리 임금도 낮고, 노동 환경도 열악했다.

“처음 드라마 <서울 1945>를 찍으러 경남 합천에 갔어요. 하루 종일 30도가 넘는 땡볕 더위 속에서 털모자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물 한모금도 못 마시고 촬영했어요.”

지방에 있는 세트장에서 촬영할 때에는 자비로 숙박비를 낸다. 돈을 아끼려고 1인당 5천원을 모아 한 방에서 10명씩 잠을 잔다. 5천원이 없어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는 이들도 있단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버티기도 힘겨운 데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때에는 더욱 서럽다. “반장(보조출연자 인력공급업체의 현장 지휘자)들이 보조출연자들을 나이에 관계없이 ‘야!’, ‘어이’ ‘저기’ 등 반말로 불러요. 욕을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점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 하면 다음부터 일하러 오지 말라고 해요. 그러니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죠.” 현재 보조출연자들은 대부분 보조출연자를 캐스팅하고 관리하는 용역업체에서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위원장은 “파견업체에서 작성한 ‘보조출연 검수조서’를 봤는데 우리에게 지급하는 것과 완전히 달라요. 동절기(11~3월)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동안 일하면 5만4백원의 임금을 주고, 출장여비로 한사람당 1박 숙박비로 3만2천7백원이 따로 책정돼 있더군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조에서는 보조출연자 파견업체인 월드캐스팅, 한국예술, 태양기획 등 3개사에 △1일 8일 근로 △연장근로시간외 근로수당과 주휴일 근로수당으로 50%이상 가산 지급 △화장실 설치 △숙박시설 제공 등을 골자로 한 공동 임·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을 네차례에 걸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4월 이들 회사측을 서울지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 불법노동행위로 고발했다. 문 위원장은 “보조출연자들에게는 최소한 일한 만큼 대접받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이 절실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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