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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멀티플렉스엔 없는 영화관의 향수

등록 2007-06-14 17:50

저공비행
〈트랜스포머〉 국내 시사회가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반에 있었다. 이 말은 이 시사회에 도착해 좋은 좌석을 받으려면 일곱 시 반에는 일어나 직장인들과 함께 출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 늦잠꾸러기인 프리랜서들에겐 짜증나는 일이다.

그래도 그날 경험은 괜찮았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괜찮다. 영화 보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매번 겪으면 귀찮아지겠지만 가끔 한 번이라면 생활에 신선한 활력이 된다. 아마 내가 그날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 것도 그런 경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보려 긴 줄을 서본 것도 꽤 오래 전의 일이니까.

최근 몇 년 동안 영화 보기는 무척 편해졌다. 인터넷과 전화 예약이 가능해졌고 번호표를 받으면 사람이 많아도 줄을 설 필요가 없다. 멀티플렉스들이 늘어나 영화를 보려고 꼭 시내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영화관은 엔드 크레디트를 끊어먹지 않고 ‘대한늬우스’나 문화 영화를 상영하지도 않으며 애국가가 나올 때 일어날 필요도 없다. 여전히 불만은 많지만 적어도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불편함은 늘 향수의 대상이 되고 거기엔 이유가 있다. 어떤 영화 감상 체험이 기억에 남으려면 그 감상 조건 역시 기억에 남아야 한다. 사람들이 영화관을 둘둘 휘어감으며 길게 늘어선 줄이나 암표 장수들과 극장의 쥐들을 기억하는 것도 그들이 영화 감상의 기억에 분명한 고유의 각인을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각인을 남기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난 죽을 때까지 〈제국의 역습〉을 최상의 상태로 보여준 명보극장에 감사할 것이다) 그래도 아무 기억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물론 그들은 우리에게 정겨운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그런 불편함을 제공했던 건 아니다. 단지 영화 감상에 대한 개념이 깜깜했고 위생 관념이 치졸했으며 시설을 보수할 돈이 없었을 뿐이다. 고로 난 그들에게 추억을 남겨주었다고 고마워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냥 그 추억만을 즐길 것이다. 멀티플렉스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통조림’이라는 단어 이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멀티플렉스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출근하는 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더 편리해졌지만 규격화되어 있고 좀 재미가 없다. 수도권 사방을 돌아다녀도 늘 똑같은 인테리어를 한 같은 상표의 극장을 마주치는 것도 소름 끼치는 일이고.

아마 홈시어터가 본격적으로 발전한다면, 멀티플렉스화된 극장들 대신 친구나 친척들의 집이 다양한 추억을 남겨주는 기능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극장은 영화를 보여주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기능을 집 안 가전제품에 빼앗기게 될 수도 있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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