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찰스와 토머스 가드 형제의 장편 데뷔작 〈두 자매 이야기〉(A Tale of Two Sisters)가 곧 촬영에 들어간다. 대부분 생전 처음 들어볼 신인 감독들의 신작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건 바로 이 작품이 김지운의 히트 호러 영화 〈장화, 홍련〉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이다. 〈어 테일 오브 투 시스터스〉는 이 영화의 영어판 제목이기도 한데, 인터넷의 팬들은 간단히 약자를 따서 〈ATOTS〉라고 부른다.
이 리메이크 계획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은 많지 않다. 특히 팬들은 부정적이고, 국내보다는 해외 팬들이 더 민감하다. 다들 이 작품을 오리지널의 진짜 의미를 날려버린 할리우드 기성품 영화로 다시 만들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하긴 크레이그 로젠버그가 썼다는 각본은 나도 좀 믿음이 안 간다.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하프 라이프〉는 정말 시시한 영화였다.
그러나 기대를 그렇게 낮출 필요는 없다. 일단 리메이크 버전은 캐스팅이 썩 좋은 편이다. 엘리자베스 뱅크스, 데이비드 스트러세언, 에밀리 브라우닝, 에어리얼 키젤은 모두 좋은 배우들이고 자매 역을 맡은 브라우닝과 키젤은 모두 호러 영화의 경력도 풍부하다. 게다가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쟁이들의 경력을 무시해야 할 이유는 뭔가? 〈시월애〉 팬들은 여전히 투덜거릴지 몰라도 리메이크 버전 〈레이크 하우스〉는 매력적인 소품이었다. 〈무간도〉 팬들을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디파티드〉는 아카데미 작품상도 받지 않았는가? 〈장화, 홍련〉은 나름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전혀 새로운 문화적 배경에서 새로운 의미와 미적 효과를 찾아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리메이크에 알러지 증상을 보여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원작의 재해석은 연극에서는 늘 있는 일이다. 영화에서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내 관심을 끄는 건 이 원론적인 이야기들이 아니다. 난 정말 이 리메이크 계획이 재미있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아는 전래 동화 〈장화홍련전〉의 주인공이 남부 고딕 소설 분위기를 풍기는 미국의 배경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원작 〈장화홍련전〉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김지운의 영화 역시 원작에 충실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수백 년 전 한국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에 바탕을 둔 고전 소설이 몇 백 년 뒤에 만들어진 현대 영화를 건너 미국으로 넘어가 유럽 문화권에 이식되는 과정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이는 중국의 〈양시엔〉 이야기가 세상으로 흩어져 전세계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의 모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한국어권 고전 문화는 세상에 준 게 별로 없다. 〈두 자매 이야기〉는 그 특별한 예외가 될 수도 있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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