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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요리 신동’ 쥐, 쥐죽은 듯 못살아!

등록 2007-07-15 21:23

라따뚜이
라따뚜이
라따뚜이
레미는 존엄한 쥐다. 이 쥐는 음식으로 작곡하는 예술가다. 살려고 아무거나 훔쳐 먹지 않고 꿈꾸려고 살기 때문에 그는 다른 쥐들보다 배를 곯는다. 그러나 탁월한 재능은 쥐라는 운명 앞에선 쓸 데 없다. 반면 링귀니는 인간이라 레스토랑에 취직할 수는 있는데 요리엔 젬병이다.

이 모자란 둘이 짝패를 이뤄 뭉근하게 끓인 스프는 입뿐만 아니라 마음을 휘젓는다. 픽사의 3차원 애니메이션 <라따뚜이>(감독 브래드 버드)는 상식을 정반대로 뒤집은 색다른 설정에 희망과 도전, 우정 등 고전적인 감동의 요소를 솜씨 좋게 버무렸다.

성공담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레미 이야기가 매력적인 까닭은 “당신이 누구건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인 맥락을 감춘 채 오로지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에 실은 보수적인 최면을 살짝 비껴간다는 점이다. ‘찌질이’ 링귀니가 없다면 레미의 후각과 미각을 하늘이 내렸던들 레미는 ‘더러운 쥐새끼’일 뿐이다. “소중한 가족”이라는 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살짝 틀어 그래도 집단에 매몰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토를 단다.

라따뚜이
라따뚜이
‘절대 미각’ 생쥐와 초보 요리사
용기·우정 양념 특제 수프 끓여
160가지 표정·3만개 털 ‘생생’

레미의 우상은 주인집 할머니네 텔레비전에서 본 프랑스 파리의 요리사 구스토다. 레미 아빠 장고는 쥐면 쥐답게 살라고 레미를 다그치지만 레미는 구스토의 요리책을 외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음식평론가 이고가 구스토의 레스토랑에 대해 최악의 혹평을 하는 바람에 구스토는 충격으로 숨지고 만다. 레미와 동료 쥐들은 주인 할머니에게 발각돼 대탈출을 벌이고 하수구에 휩쓸려 들어가는 북새통에 레미만 동떨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파리의 하수구, 기어 올라가 보니 꿈만 같게도 구스토의 레스토랑이 레미의 코앞에 있다. 바로 그날 청소원으로 구스토 레스토랑에 처음 취직한 링귀니는 그만 스프를 망쳐놓고 만다. 그걸 보다 못한 레미가 나서 스프를 바로잡아놓는데, 이게 손님들을 사로잡는다. 다시 만들라는 주방장의 독촉에 새파랗게 질린 링귀니는 레미에게 도움을 간청한다.

‘깨끗한 주방을 차지하고픈 더러운 쥐’, 꿈이 가당찮으니 험난한 고난이야 따 놓은 당상이다. 주인공에게 강력한 행동 동기와 넘기 힘든 고난을 주는 건 드라마에서건 영화에서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검증된 보증 수표이니 존재 자체가 걸림돌인 설정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 게임인 셈이다. 게다가 고난을 해결하는 방식이 기발하게도 인간을 쥐의 로봇으로 삼는 것이다. 레미는 링귀니의 주방장 모자 속에 쏙 들어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철이가 ‘태권V’를 다루듯 링귀니를 조정한다. 링귀니는 인간으로서 기분 나쁘긴커녕 고마워할 따름이다. 구스토 레스토랑의 가장 황홀한 요리들은 베테랑 인간 요리사들이 아니라 쥐떼가 만든다. <라따뚜이>에서 빛나는 존재는 가장 미천한 것들이다.

라따뚜이
라따뚜이
<라따뚜이>는 뒤집은 설정 안에 익숙한 재미들도 녹였다. 레미가 링귀니를 조정할 때 자빠지고 엎어지는,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나 속도감 넘치는 추격 장면들을 매끈하게 요리해낸다. 레미의 자아 찾기를 못마땅해 하던 가족들은 구원투수로 나오고, 링귀니와 레미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좁혀가는 과정은 인간끼리 우정과 다를 바 없다. <라따뚜이>는 색다름과 보편적인 공감대 사이를 재빠르고 영리하게 오고 간다.


레미의 눈에 비친 파리는 가벼운 안개에 쌓인 듯 포근하다. 음식은 따뜻한 질감을 품었고 모락모락 김을 피어 올린다. 제작진은 요리 강습을 받고 파리의 하수구와 레스토랑을 뒤졌다. 레미에게 160가지 얼굴 표정을 줬고 쥐마다 털 3만개를 심었다. 솜털 보송한 레미의 복숭앗빛 콧방울을 본다면 3차원 입체(3D) 애니메이션이 투박하고 차갑다는 생각을 고쳐먹을 것이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잡탕 야채 스튜이자 ‘쥐(rat)’와 ‘휘젓다(touille)’를 섞어놓은 말이다. 26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소니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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