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
악마의 방에서 마주한 ‘마음의 지옥’
투숙하면 죽음 맞는 호텔 객실
주인공 내면 어둠이 현실로 살아
원작 강점 잘 살려 빚어낸 수작 마이크 엔슬린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유령 호텔 10선’, ‘유령 등대 10선’ 등의 책을 쓰는 작가다. 하지만 정작 엔슬린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 사랑하는 딸이 죽은 후, 사후 세계를 알고 싶어 귀신 추적에 나섰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회의론자가 된 엔슬린에게 기이한 엽서가 도착한다. 95년간 56명이 죽었다는 뉴욕 돌핀 호텔의 1408호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호텔 매니저는 악마의 방이라며 내줄 수 없다고 하지만, 엔슬린은 기어코 투숙에 성공한다. 그리고 끔찍한 악몽을 만나게 된다. <1408>을 보게 하는 힘은 역시 스티븐 킹이란 이름이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공포소설의 1등급에 속한다. 자연히 영화와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진 작품만도 수십여 종에 이른다. <캐리> <미저리> <샤이닝> <공포의 묘지> 등 수많은 공포영화의 걸작이 스티븐 킹 원작이고, <스탠 바이 미> <쇼생크 탈출>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등 초자연적인 현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따뜻한 작품 역시 스티븐 킹에게서 나온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단지 무서운 것이 등장하는 공포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총망라하면서 누구나 감탄하는 기발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다. 무엇보다 스티븐 킹 최고의 매력은 역시 이야기 그 자체에 있다. 단순하게 본다면 <1408>은 그저 귀신들린 방의 공포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상실한 남자가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다. 아이를 잃은 고통 때문에 아내에게서도 떠났던 남자가, 고통의 근원과 맞닥뜨리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이것은 가장 전형적인 스티븐 킹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면에 깃든 어둠을 찾아가는 것, 성인이 된 주인공이 다시 유년의 악몽과 부닥치는 것, 순수하고 강한 믿음과 팀워크로 악을 물리치는 것, 평화로운 소도시의 이면에 얼마나 짙은 어둠이 깔려있는지 드러내는 것 등이 킹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반복되는 주제다. 스티븐 킹의 작품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다른 세상이 아니라 우리 주변 일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공포소설이 아닌 <돌로레스 클레어본>이나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등은 더욱 그렇다. “나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싶다. 그러나 그건 적당한 수준이다. 왜냐하면 당신도 그것이 상상의 공포라고 믿기 때문이다. 흡혈귀, 초자연적인 모든 것들.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안전하다. 그러나 <제랄드의 게임>이나 <돌로레스 클레어본>은 다르다. 독자를 안전지대 바깥에 있다고 느끼게 했고, 그것이 더욱 공포를 준 것이다. 그것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스티븐 킹은 여전히 최고의 공포소설 작가이지만, 영화 부분에서는 약간 침체기였다. <드림 캐처> <라이딩 더 불릿> <시크릿 윈도우> 등 근작들이 모두 졸작, 범작으로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1408>은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1408>에서 중요한 것은 방 자체가 아니다. 귀신 들린 방에 들어가는 마이크 엔슬린이란 인물의 이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가 누구인지에 따라, 방이 보여주는 공포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마이크를 괴롭히는 환영과 소음, 추위는 참을 수도 있다. 진짜 참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도망쳐온 딸의 죽음이란 현실이다. 스티븐 킹은 결코 귀신이나 악마의 만행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의 격랑에 빨려들지 않고, 면밀하게 일상과 초자연적인 상황을 엮어내면서 ‘상상’ 가능한 악몽을 선사한다.
<1408>은 공포물로서만이 아니라, 한 남자의 마음 속 지옥을 보여주는 드라마로서도 일품이다. 그 남자는 지옥을 통과해 온 후에, 자신의 진실을 만난다. 스티븐 킹의 대부분의 공포소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바로 그 진실과 순수함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공포를 통해, 우리가 진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1408>은 스티븐 킹의 원작을 가장 잘 각색한 영화의 하나이며, 탁월한 공포영화로서 부족함이 없다.
김봉석/영화평론가 사진 태원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인공 내면 어둠이 현실로 살아
원작 강점 잘 살려 빚어낸 수작 마이크 엔슬린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유령 호텔 10선’, ‘유령 등대 10선’ 등의 책을 쓰는 작가다. 하지만 정작 엔슬린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 사랑하는 딸이 죽은 후, 사후 세계를 알고 싶어 귀신 추적에 나섰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회의론자가 된 엔슬린에게 기이한 엽서가 도착한다. 95년간 56명이 죽었다는 뉴욕 돌핀 호텔의 1408호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호텔 매니저는 악마의 방이라며 내줄 수 없다고 하지만, 엔슬린은 기어코 투숙에 성공한다. 그리고 끔찍한 악몽을 만나게 된다. <1408>을 보게 하는 힘은 역시 스티븐 킹이란 이름이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공포소설의 1등급에 속한다. 자연히 영화와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진 작품만도 수십여 종에 이른다. <캐리> <미저리> <샤이닝> <공포의 묘지> 등 수많은 공포영화의 걸작이 스티븐 킹 원작이고, <스탠 바이 미> <쇼생크 탈출>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등 초자연적인 현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따뜻한 작품 역시 스티븐 킹에게서 나온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단지 무서운 것이 등장하는 공포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총망라하면서 누구나 감탄하는 기발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다. 무엇보다 스티븐 킹 최고의 매력은 역시 이야기 그 자체에 있다. 단순하게 본다면 <1408>은 그저 귀신들린 방의 공포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상실한 남자가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다. 아이를 잃은 고통 때문에 아내에게서도 떠났던 남자가, 고통의 근원과 맞닥뜨리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이것은 가장 전형적인 스티븐 킹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면에 깃든 어둠을 찾아가는 것, 성인이 된 주인공이 다시 유년의 악몽과 부닥치는 것, 순수하고 강한 믿음과 팀워크로 악을 물리치는 것, 평화로운 소도시의 이면에 얼마나 짙은 어둠이 깔려있는지 드러내는 것 등이 킹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반복되는 주제다. 스티븐 킹의 작품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다른 세상이 아니라 우리 주변 일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공포소설이 아닌 <돌로레스 클레어본>이나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등은 더욱 그렇다. “나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싶다. 그러나 그건 적당한 수준이다. 왜냐하면 당신도 그것이 상상의 공포라고 믿기 때문이다. 흡혈귀, 초자연적인 모든 것들.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안전하다. 그러나 <제랄드의 게임>이나 <돌로레스 클레어본>은 다르다. 독자를 안전지대 바깥에 있다고 느끼게 했고, 그것이 더욱 공포를 준 것이다. 그것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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