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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름다운 공포영화 ‘기담’

등록 2007-07-29 23:06

아름다운 공포영화 ‘기담’
아름다운 공포영화 ‘기담’
보이나요, 갇힌 영혼들의 절규가…
일제~70년대말까지 뒤섞인 시간 속
병원에서 일어난 기괴한 이야기 3편
대조적 이미지들이 빚는 낯선 쓸쓸함

붉은 꽃잎이 스산하게 떨어지면 파르스름한 얼음판이 갈리며 소녀의 주검이 드러난다. <기담>(감독 정범식·정식)의 섬뜩한 순간들은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결합해있다. 공포와 매혹이 부닥쳐 만든 낯선 정서가 <기담>의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기담>은 ‘이미지만 혼령처럼 떠도는 텅 빈 이야기’라는 비판부터 ‘독특한 정서를 밀어붙이는 매혹적인 시’라는 찬사까지 껴안을 만하다.

<기담>은 시·공간적 배경 자체가 모순된 이미지를 품는다. 1942년 경성은 서구 문물과 일본식 생활 양식이 섞여있다. 이국과 한국,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엮여 똬리를 틀었다. 안생병원은 익숙한 서양식 병원이지만 고전적인 주사기, 청진기 하나 하나가 기묘하게 눈에 설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불안감이 배경에 떠돈다. 시체안치실은 목재로 마감돼 있고 놋쇠로 만든 문고리엔 섬세한 무늬를 주조했다. 해부실 투박한 욕조의 수도꼭지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매끈한 유선형 모양이다. 정식 감독은 “고증을 원칙으로 삼았다”며 “일제 시대와 지금은 벽돌을 쌓는 방법도 다른데 그런 작은 묘사를 제대로 해야 큰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공간이 여유있고 품격 넘치게 표현돼 참혹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마저 부르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다. 안생병원의 외부는 일본식 건물인 목포문화원을 찍고 내부 세트는 ‘와이(Y)자’ 형태로 지었다.

아름다운 공포영화 ‘기담’
아름다운 공포영화 ‘기담’
이야기는 세트 구조처럼 모아진 듯 흩어져있다. 세 에피소드는 논리적 인과 관계로 엮여있지 않고 정서와 발생 시기만 공유할 뿐이다. 의대 실습생 박정남(진구)은 얼굴도 모르는 병원장 딸과 결혼할 예정이라 심란하다. 그런데 선녀처럼 예쁜 소녀의 주검이 병원에 들어온다. 정남은 소녀의 주검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고 병원장은 이미 숨진 딸과 정남의 영혼 결혼식을 몰래 추진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에선 교통사고로 가족이 모두 숨졌는데 소녀 아사코(고주연)만 외상도 없이 병원에 실려온다. 소녀는 자신이 부모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 정신과 전문의 이수인(이동규)은 소녀를 치료하는 데 집착한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외과의 김인영(김보경)과 남편 김동원(김태우)이 안생병원으로 부임해온 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원은 아내 인영에게 그림자가 없고 아내의 죽음을 자신이 애써 잊으려했다는 걸 깨닫는다. 동원은 인영의 혼령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라 믿지만 문득 소매를 걷어보니 자기 팔뚝에 피해자가 긁어놓은 상처가 가득하다. 전개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상징을 징검돌 삼아 생략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분위기는 유지하지만 이야기 흡입력은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이야기 속에 달팽이가 자주 등장한다. 한마리씩 확대해보면 귀엽고 우아한 달팽이가 수십마리씩 주검의 얼굴에 달라붙으면 섬뜩한 냉기를 뿜어낸다. 비명을 질러대는 악몽 속에는 포근한 눈발이 흩날린다. 반대 이미지들이 부닥쳐 흩뿌리는 정서는 오롯이 쓸쓸함이다. 마음을 거스르지 못한 사람들은 낙엽이 지듯 어쩔 수 없이 파멸을 맞는다. 일제의 폭압이 심해질 무렵에 시작한 이야기는 1979년도 10월에 마무리 되는데 실제 형제인 두 감독 중 형인 정범식 감독은 “근·현대사에 대한 은유를 욕심냈다”고 설명했다. “순응하기 때문에 도리어 더 비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인 것 같아요. 그 비극의 끝에 남은 ‘출구없는 무덤 속에 갖혀있는 외로운 영혼들’을 그리려 했는데 그들이 보였나요?”(정범식 감독). 1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도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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