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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저공비행] 예술영화 1세대의 죽음

등록 2007-08-05 18:39

저공비행
잉마르 베리만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세상을 떠났다. 다들 애도를 표하는 분위기지만 솔직히 나는 부럽다고 해야겠다. 다들 참 오래 살았고 (베리만은 89살, 안토니오니는 94살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그들의 창의력을 거의 소진시킬 정도로 활동했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으며 그렇다고 지나치게 오래 세상에 남아 우릴 안쓰럽게 하지도 않았다. 안토니오니의 〈에로스〉는 좀 실망이었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노인네의 그 정도 실수도 애교로 봐주지 못할 정도로 야박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은 낯설고 아쉽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고 지금까지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어떤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몸담고 있었던 매체인 영화가 비교적 젊기 때문이다. 영화의 역사는 기껏해야 100년에 불과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거장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어 낸 뒤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죽어갔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거장들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건 몇십 년 되지 않는다. 처음엔 젊은이들만 모여 있던 작은 동네의 사람들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한 명씩 늙어가다가 결국 순서에 따라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죽음이 낯선 건 당연하다. 문학이나 미술과 같은 오래된 매체와는 달리 우리는 첫 죽음을 보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베리만과 안토니오니의 전성기는 60년대. 영화라는 예술에 몸담으면서도 동시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진지한 예술가로 인정받았던 거의 최초의 세대에 속해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오슨 웰스나 버스터 키튼과 같은 거장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은 베리만의 〈침묵〉이나 안토니오니의 〈정사〉 같은 영화들처럼 동시대 관객들의 스노비즘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베리만과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은 보고 있으면 정말로 폼이 났으며 관객들은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을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몇십 년 전까지 ‘과연 이것이 예술이야?’라는 무의미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매체가 드디어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건 한 시대의 종말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했다.

베리만과 안토니오니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 70년대 미국 영화들을 이끌었던 젊은 천재들인 루커스, 코폴라, 스필버그도 죽을 것이고 지금 방방 뛰며 전성기를 맞고 있는 피터 잭슨이니 마이클 베이니 하는 사람들도 죽을 것이다. 그들이 죽으면 그들이 생전에 했던 일들이 정리될 것이며 그들 세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영화라는 매체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 것이며 지금처럼 영화사 하나를 통째로 삼켜야만 영화광이라는 명찰을 달 수 있는 분위기도 사라져 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영화라는 매체도 유년기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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