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리아나>
그리고 중동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영화 <시리아나>를 보고서
미국이 여러가지 방식으로 중동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실제로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1,2차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도, 그 사건의 본질이 석유를 둘러싼 이권의 문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서방의 주류언론이 떠들어 대는 테러와의전쟁, 종교갈등, 대량살상무기문제 등의 아젠다로 이 사건들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조금 특별한 영화가 한 편 나왔다. 그것이 바로, <시리아나>다.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를 함축한 영화를 생산하는 미국의 영화공장, 할리우드, 그 중에서도 주류에 해당하는 워너브라더스가 이런 종류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시리아나>는 미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미국의 다국적기업, 정보당국, 권력층의 행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또한 중동의 목소리가 비교적 중동적인 시각과 입장에서 등장한다. 현재 미국의 권력층과 다국적기업이 자국의 이익을 빙자하여 실제로는 이기적인 자신들의 이해를 얼마나 집요하게 관철시키는지와 중동의 권력집단 내부의 개혁집단과 매판수구집단이 어떻게 갈등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국에 대해서나 중동에 대해서나 마찬가지지만, 상층의 권력집단과 특권층의 동향위주로 영화가 제작되어 있고, 각 지역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국민중과 중동민중의 동향은 배제되거나 피상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중 파생금융전문가 브라인언 우드먼(맷 데이먼), 변호사 베넷 홀리데이(제프리 라이트) 그리고, 하층계급 출신의 자폭테러리스트인 파키스탄 청년정도가 비특권계층출신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이야기는 국제적인 권력놀음이며 그러한 권력관계와 기층민중들의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영화에서 빠져있다. 그래서, 아쉽고 영ㅇ화의 완성도에도 흠을 준다. 그러나, 어쩌면 주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당연한 이런 한계를 제외하고는 <시리아나>는 대단히 흥미롭다. 헐리우드 액션이 난무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의 끝까지 팽팽한 극적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재적으로 기존의 주류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소재를 정치스릴러라는 쟝르로 함초롬히 담고 있다. 영화 <시리아나>는 내포적으로 미국의 현 부시정권의 대중동정책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으로도 충분하고, 유수의 천연자원 재벌기업에 대한 비실명 비판이기도 하다. (조금 더 엄밀하게 표현하면 "드러내기"와 "보여주기"이다. 도덕적이거나 당파적인 판단없이, 그들의 행태를 픽션으로나마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권력층에서의 이권을 배경으로한 암투가 얼마나 비열하고 냉혹한지를 실감나게 감상해 볼수도 있다. 자본가들과 특권권력층들이 겉으로는 소비자와 국민을 기만하는 그럴듯한 광고와 선전을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이해에 얼마나 충실하며, 그 이해의 관철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을 세삼 알게 되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중 파생금융전문가 브라인언 우드먼(맷 데이먼), 변호사 베넷 홀리데이(제프리 라이트) 그리고, 하층계급 출신의 자폭테러리스트인 파키스탄 청년정도가 비특권계층출신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이야기는 국제적인 권력놀음이며 그러한 권력관계와 기층민중들의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영화에서 빠져있다. 그래서, 아쉽고 영ㅇ화의 완성도에도 흠을 준다. 그러나, 어쩌면 주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당연한 이런 한계를 제외하고는 <시리아나>는 대단히 흥미롭다. 헐리우드 액션이 난무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의 끝까지 팽팽한 극적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재적으로 기존의 주류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소재를 정치스릴러라는 쟝르로 함초롬히 담고 있다. 영화 <시리아나>는 내포적으로 미국의 현 부시정권의 대중동정책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으로도 충분하고, 유수의 천연자원 재벌기업에 대한 비실명 비판이기도 하다. (조금 더 엄밀하게 표현하면 "드러내기"와 "보여주기"이다. 도덕적이거나 당파적인 판단없이, 그들의 행태를 픽션으로나마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권력층에서의 이권을 배경으로한 암투가 얼마나 비열하고 냉혹한지를 실감나게 감상해 볼수도 있다. 자본가들과 특권권력층들이 겉으로는 소비자와 국민을 기만하는 그럴듯한 광고와 선전을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이해에 얼마나 충실하며, 그 이해의 관철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을 세삼 알게 되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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